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Curated by: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87 videos)


Currently Playing: 제54장. 예수님이 유다는 돌려보내시고 토마스는 받아주신 이유; 카리옷 사람 유다와 토마스를 만나시다. 하.사.시.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54장. 카리옷 사람 유다와 토마스를 만나시다. 나병에서 낫는 열혈당원 시몬 예수님이 유다는 돌려보내고 토마스는 받아 주신 이유; 원하는 것에 진실하고 끈질긴 이를 받아주신다 같은 저녁, 같은 설교를 듣고, 같은 충동으로 두 사람이 올리브밭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은 말을 잘했고 한 사람은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말 잘하는 이에게 "지금? 당장? 아니오" 하시고, 두려워하는 이에게 "당신 이름을 기억하겠다" 하십니다. 그 밤 제자들이 묻습니다. "어째서 그 두 사람을 다르게 대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답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덜 완전해 보이는 이가 실은 더 완전하다. 그에게는 인간적 영광의 불씨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나이기에 나를 사랑한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54장으로 들어갑니다. 올리브밭의 나병 환자부터 봅니다. 성전이 보이는 건너편 언덕, 올리브나무 층층 밭의 집. 집주인이 손님 둘이 부엌에서 기다린다 하고, 머뭇거리며 덧붙입니다. 온몸이 헌 데투성이인 사람도 하나 있다고.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먼저 가자" 하십니다. 담에 기댄 사람이 소리칩니다. "물러나십시오! 그러나 자비도 베풀어 주십시오!" 제자들과 집주인과 낯선 두 사람은 역겨움을 대놓고 드러내며 멀찍이 서고, 예수님만 다가가십니다. "그것은 그때가 되면 들어 올려질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이르니, 일어나라! 나아라. 내가 그것을 바란다. 그리고 나를 알아야 할 이 도성에서 네가 그 표징이 되어라." 어제 성전에서 들어 올리겠다 하신 표징이 오늘 저녁 한 사람의 깨끗해진 몸으로 먼저 들어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명하십니다. "사제에게 가거라." 돌처럼 굳은 이들에게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그것은 육신의 나병일 뿐이었다. 그러나 너희는 마음에서 나병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의 나병을 앓는 두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다음은 말 잘하는 사람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시오?" "스승님의 영광에 한몫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름의 값을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는 것은 끊임없이 싸운다는 뜻이오. 우리 안에 있는 원수와 싸우고 원수인 세상과 싸우고 원수 그 자체인 사탄과 싸우는 것이오." 그가 "벗이 되고 싶습니다" 하자 예수님이 한숨을 쉬시고 뚫어지게 바라보십니다. 겉옷을 흘러내리게 한 그 사람, 카리옷 사람 유다입니다. "저는 유다인들의 임금을 기다리며 꿈꿉니다. 말씀에서 임금을 들었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도 같은 것을 청했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20장 22절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예수님이 유다에게 하신 답입니다. "나는 당신의 충동은 믿으오. 그러나 당신의 한결같음은 믿지 않소. 몹시 가파른 길에 들어서기 전에 스스로를 저울에 달아 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오." 저울에 달아 보라는 이 말씀을 뒷날 비유로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 14장 28절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충동은 탑의 주춧돌을 놓고, 한결같음은 탑을 끝냅니다. 집회서 2장 1절입니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유다는 영광에 대비했고 시련에는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스승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두렵습니다." "자만은 물론 파멸이오. 그러나 두려움은 겸손에서 온 것이면 도움이 될 수 있소." 잠언 16장 18절입니다.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고 멸망에 앞서 오만한 정신이 있다." 그가 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그토록 거룩하십니다! 저는 제가 그만한 자격이 없을까 봐 두렵습니다. 제 사랑을 두고는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두렵지 않고 자격만 두렵다, 이것이 겸손의 두려움입니다. 시편 131편 1절입니다.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저는 거창한 것을 따라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습니다." "당신 이름이 무엇이오?" "토마스입니다. 디디모스라고들 합니다." "당신 이름을 기억하겠다." 유다는 임금을 보았고 토마스는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같은 설교를 듣고 한 사람은 영광을 바라고 한 사람은 자격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밤에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같은 충동이라도 나무마다 즙이 다르듯 속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덜 완전해 보이는 이가 실은 더 완전하다. 그에게는 인간적 영광의 불씨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은 한몫을 세고 지혜는 사랑만 셉니다. 다음은 베드로의 "저는 별로입니다"입니다. 사촌이 오지 않은 까닭을 묻자 예수님은 두 가지 돌을 대십니다. 총독 관저의 대리석은 산의 품에서 힘겹게 뜯겨 나왔고, 키드론의 돌들은 스스로 강바닥으로 내려와 누구든 원하면 곧바로 잡히도록 몸을 내어 준다고. "내 사촌은 첫 번째 돌들과 같다. 산의 품이, 곧 가족이 그를 두고 나와 다툰다." 베드로가 "저는 개울의 돌처럼 되고 싶습니다" 하고, 유다 이야기가 나오자 "저는 별로입니다. 투박하고 거칠어도 속임수 없는 갈릴래아 어부가 도시 사람보다 낫다는 거야" 합니다. 49회차에서 보신 그 솔직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솔직함에 금을 그으십니다. "그러나 심판하지 마라. 땅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착한 이들은 들판의 꽃처럼 악한 이들과 섞여 있다. 독미나리가 몸에 좋은 아욱 곁에 있는 것처럼." 마태오 복음 13장 29절부터 30절입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유다는 돌려보내시되 "유다도 올 것이다" 하시고, 베드로에게는 심판하지 말라 하십니다. 저울에 다는 것은 저마다 제 몫이고 심판은 수확 때 주인의 몫입니다. 다음은 율법과 기적입니다. 안드레아가 묻습니다. 율법의 의무를 먼저 채우지 않고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다면서 어찌하여 카나에서는 그러셨느냐고. "기적은 하느님과 하나 되었다는 증거이며 하느님께서 자애롭게, 뜻을 같이하시며 함께 계신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기적들을 잇달아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내 의무를 다하고자 하였다." "스승님께서는 거룩하십니다." "거룩함은 순종에서 면제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순종을 완전하게 한다." 마지막은 문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돌아가라던 토마스가 밤에 돌아와 발치에 몸을 던집니다. "저는 스승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는 흠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 하나만은 있으니 크고 참되며 저의 보물입니다. 그것은 스승님의 것이고 스승님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머리에 손을 얹으십니다. "남아라, 디디모스야. 나를 따라라. 원하는 것에 진실하고 끈질긴 이들은 행복하다.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이보다 더 가까운 친척은 나에게 없다." 마태오 복음 12장 50절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토마스는 뒷날에도 끈질겼습니다. 요한 복음 11장 16절입니다.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요한 복음 20장 28절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두려워서 돌아갔던 사람이 돌아와 문을 두드렸고, 말 잘하던 사람은 오순절에 왔다가 끝내 다른 문을 두드렸습니다. 둘을 가른 것은 충동이 아니라 뿌리였습니다. 영광의 불씨냐, 오직 그분이기에 사랑하는 사랑이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만은 물론 파멸이오. 그러나 두려움은 겸손에서 온 것이면 도움이 될 수 있소." "원하는 것에 진실하고 끈질긴 이들은 행복하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015항은 완덕의 길이 십자가를 거치며 극기와 영적 싸움 없이 성덕이 없다고 가르치고, 2559항은 겸손이 기도의 바탕이라고 가르칩니다. 유다에게 없고 토마스에게 있던 것이 그 둘이었습니다. 1766년부터 네 해 동안 프랑스 북부의 젊은이 브누아 조제프 라브르는 트라피스트와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문을 차례로 두드렸고 번번이 돌려보내졌습니다. 몸이 약하고 마음이 너무 여리다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길에 남았습니다. 누더기 차림으로 로마의 콜로세움 폐허에서 자며 날마다 성체 앞에 앉아 열세 해를 살다가 1783년 성주간에 서른다섯으로 죽었습니다. 수도원이 돌려보낸 사람이 끈질겨 성인이 되었습니다. 토마스가 두드린 그 문입니다. 오늘 하느님께 청하는 것 하나를 저울에 달아 보십시오. 그것이 한몫을 바라는 충동인지 오직 그분이기에 바라는 사랑인지. 그리고 자격이 없어 두렵거든 돌아가지 말고 토마스처럼 그 두려움째 문을 두드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같은 충동이라도 뿌리가 다르면 열매가 다릅니다. 영광의 한몫을 바라는 충동은 돌려보내지고, 자격 없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오직 그분이기에 사랑하는 끈질김은 받아들여집니다. 다음 회차 제55장 '토마스에게 맡기신 임무'에서는 받아들여진 그날 밤 토마스가 받은 첫 심부름과, 예수님이 왜 그 일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맡기셨는지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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