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Curated by: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87 videos)


Currently Playing: 제34장. 동방 박사들의 경배; 왜 동방박사들에게만 별의 은총이?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34장. 동방 박사들의 경배. 이것은 "믿음의 복음"이다 (마태 2,1-12) 왜 동방박사들에게만 별의 은총이?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서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막을 건너올 때는 앞서 가던 별이 거룩한 도성 위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왜였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그 까닭을 밝혀 주십니다. 그 별은 "예루살렘의 타락한 자들이 하느님의 별을 볼 자격이 없기" 때문에 숨었다고요. 32장에서 누가 구원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는가를 물었는데, 오늘 그 물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갑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4장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환시를 "믿음의 복음"이라 부르라 하십니다. 밤의 베들레헴, 작은 달만 한 별 하나가 사파이어 빛의 몸통에 토파즈와 에메랄드와 루비의 꼬리를 끌며 나아와 작은 집 위에 멈추고, 세 사람이 낙타와 말에서 내려 그 집 앞 흙먼지에 이마를 대고 입 맞춥니다. 마태오 복음 2장 1절과 2절입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별은 성경이 오래 예고한 별입니다. 27장에서 본 민수기 24장 17절, 이방인 예언자 발라암의 입에서 나온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입니다. 이방인이 예고한 별을 이방인이 보고 왔습니다. 이사야서 60장 3절과 6절은 그들의 행렬까지 그려 두었습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시편 72편 10절과 11절도 그렇습니다.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교회가 박사들을 임금이라 부르게 된 뿌리가 이 시편이고, 낙타와 금과 유향이 이사야에서 왔습니다. 이튿날 오후 세 사람이 예물을 들고 들어옵니다. 어머니처럼 온통 흰옷을 입고 어머니 무릎에 앉아 옹알거리는 아홉 달쯤의 아기, 짙푸른 두 눈에 보조개와 첫 이가 난 아기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가장 나이 든 이가 여정을 이야기하고 예물을 풉니다. "임금께 마땅한 황금이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께 마땅한 유향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오 어머니시여, 몰약이 여기 있습니다." 유향은 탈출기 30장 34절에서 하느님께서 성소의 향으로 지정하신 "순수한 유향"이고, 시편 141편 2절대로 "저의 기도 당신 면전의 분향으로" 오르는 예물이니, 유향을 바침은 이 아기가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몰약은 시편 45편 9절에서 임금의 혼인 잔치 옷에 배던 향이자, 요한 복음 19장 39절에서 니코데모가 무덤에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져오는 향입니다. 박사들은 그 뜻을 알고 바쳤습니다. "이 향유는 그때를 위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그 육이 썩어 문드러짐을 알지 못하시고, 그 부활 때까지 온전하심을 간직하시도록." 요람 앞에서 무덤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청합니다. 아기의 발에 입 맞추게 해 달라고요. 이제 오늘의 물음입니다. 이 이방인들은 무엇으로 보았습니까.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그 동방의 현인들에게는 진리를 확신하게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초자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천문학의 셈과 흠 없는 삶이 완전하게 만들어 준 그들의 성찰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음을 지녔다. 학문에 대한 믿음, 양심에 대한 믿음,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다." 로마서 1장 20절이 첫째 믿음의 근거입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이라는 책을 읽을 줄 알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과 6절이 그 믿음의 정의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서 11장 8절의 아브라함처럼 갔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정의 무모함을 열거하십니다. 다른 말, 사막, 강, 열병, 첩자로 오해받을 위험. "너희는 이렇게 따진다. 그들은 이렇게 따지지 않는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였습니다. "당신 손에 저희를 맡깁니다." 그런데 왜 그들만 보았습니까. 예수님의 답이 32장의 답과 같습니다. "표징을 연구하는 그 숱한 이 가운데 오직 그들만이 그 표징을 깨달았으니, 오직 그들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갈망을 올바른 목적으로 영혼에 지녔기 때문이요, 그 목적의 으뜸가는 생각이 곧 하느님께 곧바로 찬미와 영예를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 그것이 눈의 조건입니다. 그 반대편이 예루살렘입니다. 헤로데가 학자들을 모아 묻자 그들은 마태오 2장 5절과 6절에서 정확히 답합니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미카서를 정확히 인용한 학자들은 구 킬로미터를 가지 않았고, 성경 한 줄 모르던 이방인들은 사막을 건너왔습니다. 32장에서 읽은 요한 5장 39절 그대로입니다. 성경이 그분을 증언하는데도 그분께 오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별이 예루살렘 위에서 꺼졌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살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참으로 큰 이들이기에 겸손하였다"고 하시며 겸손의 신학을 펴십니다. 그들은 초자연적 덕으로도 학문으로도 재산으로도 큰 이들이었으나, 별들을 밀알처럼 흩뿌리시는 분 앞에서 자신을 "흙먼지 위의 흙먼지"로 느꼈다고요. 시편 8편 4절과 5절이 별을 보는 이의 마땅한 기도입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이사야 66장 2절은 하느님께서 굽어보시는 이가 누구인지 밝힙니다.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가련한 이와 넋이 꺾인 이, 내 말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다." 루카 14장 11절,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별을 읽는 눈은 학식이 아니라 겸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528항이 이 만남의 뜻을 정리합니다. "주님 공현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드러낸다. 복음은 주변의 이교들을 대표하는 이 박사들이 강생을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민족들의 시초라고 본다." 그리고 528항은 그들이 유다인들의 임금을 경배하러 옴으로써 이스라엘 안에서 메시아를 알아본 것이 곧 온 민족이 구원의 약속을 상속받는 길이었다고 덧붙입니다. 두 가지 가르침이 더 있습니다. 요셉은 "제자리"에 설 줄 알아, 예를 받는 이가 마리아와 예수이신 것에 마음 상하지 않고 손님들에게 발걸이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문지방에서 마리아가 아직 강복할 줄 모르는 아기의 손을 잡아 박사들의 머리 위에 십자 모양을 긋게 하십니다. 책은 그것이 타우, 에제키엘 9장 4절에서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찍힌 그 표, 묵시록 7장 3절의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찍는 인장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손을 두고 하신 말씀이 오늘의 마지막 보석입니다. "예수의 손을 잡아 이끄시는 이는 언제나 마리아이시다. 지금도 그러하다. 이따금 그 뚫린 손이 지치고 낙담하여 떨어지니, 그때 이 손에 입 맞추어 그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는 이가 마리아이시다. 나는 내 어머니를 물리칠 수 없다." 박사들의 "천문학의 셈"을 두고 훗날 한 천문학자가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1604년 요하네스 케플러는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회합을 관측하고 옛 기록을 거슬러, 기원전 7년 물고기자리에서 두 행성이 한 해에 세 번, 오월과 시월과 십이월에 만났다는 것을 계산해 냈습니다. 책에서 박사가 "지난 십이월 어느 밤" 새 별이 켜졌다고 한 것과 겹치는 대목이라, 많은 학자가 그 회합을 박사들의 별의 후보로 꼽습니다. 학문에 대한 믿음이 무엇인지, 별을 읽은 옛 사람들과 별을 계산한 근대 사람이 함께 보여 줍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별을 잃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 하느님을 찾는 일 하나를 하되, 그 일의 으뜸가는 생각을 내 유익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에 두십시오. 그리고 표징이 보이지 않을 때 남을 탓하기 전에 박사들처럼 제 양심을 먼저 살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성경을 아는 학자들은 가지 않았고, 하늘을 읽은 이방인들은 사막을 건넜습니다. 별은 겸손한 눈에만 보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35장, 이집트로 피신하는 밤, 마태오가 왜 "네 아내"가 아니라 "아기와 그 어머니"라 썼는지 밝혀지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Tracks in this Play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