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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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장. 물고기 문에서 칼날이 부러지는 기적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왜 하느님 자녀가 되는가? 이른 아침 물고기 문 앞, 상추 바구니 하나 때문에 두 장사꾼이 짧은 칼을 뽑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예수님이 두 칼 사이로 달려드십니다. 겉옷으로 칼질을 빗기시다 그 겉옷마저 찢기시고, "비켜나시오, 당신이 봉변당하겠소" 하는 말에도 움직이지 않으시고, 끝내 두 손을 뻗으시니 칼날 두 자루가 유리처럼 부서져 땅에 떨어집니다. 어디서 온 힘입니까. 평화를 위해 사이에 서신 분께 아버지께서 성령의 힘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사명을 받아 수행하는 이에게 능력이 옵니다. 이집트로 들어가지 않는 모세에게 지팡이의 능력을 주실 까닭이 없듯이. 마태오 복음 5장 9절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오늘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에게 왜 하느님 자녀가 되는 특권, 곧 성령이 오시는지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67장으로 들어갑니다. 찢긴 겉옷부터 봅니다. 묵상에 잠겨 걸으시던 분이 고개를 드시고 잰걸음으로 두 칼 사이에 들어가십니다. 먼저 몸으로 막으시고,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라 이끄시고, 그것이 헛되자 "그만두기를 당신들에게 명하오" 하시고, 그것마저 "나자렛 개 같은 놈" 하는 욕으로 돌아오자 손을 뻗으십니다. 손을 뻗기 전에 먼저 겉옷이 찢겼습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의 순서입니다. 제 몸을 먼저 사이에 두고, 제 것이 먼저 찢기고, 그다음에야 힘이 옵니다. 부활하신 저녁에 하신 일이 이 순서를 그대로 보입니다. 요한 복음 20장 21절부터 22절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평화, 파견, 성령. 세 말이 한 숨에 나옵니다. 평화를 위해 보내진 사람에게 성령이 오십니다. 다음은 지팡이와 사명입니다. 모세는 지팡이부터 받지 않았습니다. 탈출기 3장 10절과 12절입니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보내심이 먼저이고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 다음이며 지팡이의 표징은 그다음입니다. 이집트로 가지 않을 사람에게 바다를 가를 능력을 주실 까닭이 없습니다. 기드온도 그랬습니다. 영이 그에게 내린 것은 판관기 6장 34절입니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자기를 따르라고 소집하였다." 그런데 그 영이 오기 전에 두 가지가 먼저 있었습니다. 판관기 6장 14절입니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다." 보내심이 먼저였고, 그다음에 기드온은 그 밤에 아버지 집의 바알 제단을 허물었습니다. 보내심을 받고 첫 순종을 한 사람에게 영이 내렸고, 그제야 나팔을 불었습니다. 영이 사명보다 먼저 온 것이 아니라 사명에 발을 디딘 사람에게 영이 왔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물고기 문의 칼날은 그래서 부서졌습니다. 그분은 평화를 위해 사이에 서면 아버지께서 힘을 부으시리라 믿으셨고,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능력은 사명 앞에 미리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명 안에서 받는 것입니다. 다음은 갈라놓는 사람과 잇는 사람입니다. 두 장사꾼의 칼은 동전 몇 닢에서 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몇 뼘의 땅 때문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자리를 위해, 어떤 이들은 여자 한 명 때문에." 그런데 성경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칼을 든 사람보다 칼을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잠언 6장 16절과 19절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주님께서 미워하시고 이 일곱 가지를 그분께서 역겨워하신다.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다." 일곱 가지의 맨 끝, 가장 역겨운 자리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가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12장 30절입니다.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사람은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흩는 사람이거나 모으는 사람. 야고보가 두 지혜로 갈랐습니다. 야고보서 3장 16절과 18절입니다.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잇는 사람이 구약에 있습니다. 아브람입니다. 목자들끼리 다투자 그가 조카에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13장 8절부터 9절입니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어른이 먼저 양보했고, 롯이 좋은 땅을 골라 떠난 바로 그다음에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5절입니다.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평화를 위해 제 몫을 내놓은 사람에게 약속이 왔습니다. 아비가일도 그랬습니다. 나발의 모욕에 칼을 차고 오는 다윗 앞에 나귀를 몰고 나가 사이에 섰고, 다윗이 말했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25장 33절입니다. "오늘 내가 사람의 피를 흘리고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일을 그대가 막아 주었으니, 그대와 그대 분별력에 축복을 드리오." 사이에 선 여인이 피를 막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가루가 되는 평화입니다. 잇는 사람은 제가 찢깁니다. 물고기 문에서 찢긴 겉옷은 첫 찢김이었습니다. 에페소서 2장 14절과 16절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당신의 몸으로 허무셨습니다. 두 칼 사이에 들어간 몸이 뒷날 두 세계 사이에 들어가 못 박혔습니다. 갈라놓는 사람은 남을 가루로 만들고, 잇는 사람은 제가 가루가 되어 둘을 이어 붙입니다. 콜로새서 1장 20절입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유다가 달려와 말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스승님을 사랑합니다. 스승님을 승리하게 해 드리는 것이 제 목적입니다." 칼날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도 그는 승리를 꿈꾸었고 예수님은 평화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양을 모두 하느님의 왕홀 아래 모으고자 하오." 모으는 분과 승리를 꿈꾸는 사람이 나란히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립니까. 성령이 그 사람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부터 16절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가 되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이고, 성령은 평화를 위해 보내진 사람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사이에 선 사람이 아들의 힘을 받았고, 칼을 쥔 두 사람은 카인의 핏줄로 남았습니다. "언제까지나 카인의 핏줄에 속한 자로 있지 마십시오." 카인은 흩었고 아들은 모읍니다. 예수님이 무리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자녀의 표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정직하십시오. 절제하십시오. 겸손하고 의로우십시오." 그날 성문 앞에서 늙은 어머니가 저녁을 짓게 되었고 병든 아버지가 나았습니다. 부서진 칼 다음에 온 것이 평화였고, 평화 다음에 온 것이 아버지의 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땅에서도 그 너머에서도 우리를 이기게 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의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양을 모두 하느님의 왕홀 아래 모으고자 하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305항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두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분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라고 선언하신다." 107년 무렵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가 사슬에 묶여 로마로 끌려가며 일곱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마다 한 말이 되풀이됩니다. 주교와 하나 되고 서로 하나 되어 분열을 피하라고. 그리고 로마 교회에는 제 처형을 막지 말아 달라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되게 해 달라고. 평화를 위해 사람들을 이으려던 사람이 제가 가루가 되기를 청했고, 원형 경기장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고기 문에서 겉옷이 찢기신 분이 가신 길입니다. 오늘 내 둘레에서 갈라진 두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이에 서 보십시오. 제 몫을 내놓고 제 체면이 찢기더라도. 그 자리에 설 때 오시는 분이 성령이시고, 그분이 오시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하느님 자녀가 되는 것은 평화를 위해 보내진 사람에게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은 사명 앞에 미리 받는 것이 아니라 사명 안에서 받는 것이고, 갈라놓는 사람은 남을 가루로 만들지만 잇는 사람은 제가 가루가 되어 둘을 붙입니다. 다음 회차 제68장 '예수님께서 이스카리옷과 함께 성전에서 가르치시다'에서는 유다와 함께 성전에 드신 예수님이 벳 미드라시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는 장면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