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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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장. 숨은 생활을 맺으며 섭리,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리 마련하신다 숨은 생활 서른 해를 한 낱말로 줄이면 무엇일까요. 성모님이 오늘 그 답을 주십니다. 섭리입니다. 호적 명령 때문에 베들레헴에 있었기에 동방 박사를 만났고, 그 예물이 있었기에 이집트로 피신할 수 있었으며, 사흘 동안 아들을 잃었기에 무덤 앞의 사흘을 견딜 수 있게 준비되셨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뒤에 보니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리 마련하십니다. 오늘은 성모님이 손수 결산하시는 그 섭리를 따라가며, 막막한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웁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3장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장 전체입니다. 이 장에는 환시가 없고 성모님의 말씀만 있습니다. 수첩들을 떠나보내며 축복을 담으시고, 이 조각들을 꿰면 "내 예수의 내밀한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보여 주는 목걸이 하나"가 되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숨은 생활 서른 해를 되짚으십니다. 감춤 가운데에도 예수는 은총의 기적을 멈추지 않으셨고, 요셉은 베들레헴 길의 "우리는 어찌하오?"에서 굴의 "내일은 나아질 거요"를 거쳐 피신길의 "설령 우리가 더 이상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지니는 거요. 우리에게 예수가 있으니까"에 이르렀다고. 동방 박사의 예물은 피난민의 지붕과 세간과 양식으로 번개처럼 사라졌고, 요셉이 예수와 하나 됨으로 얻은 것은 근심과 수고와 박해와 굶주림뿐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영의 평화로 바뀌었다고. 그리고 발토르타에게 이 모든 환시를 왜 미리 주었는지 밝히십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셨다. 너를 위해서다. 받아쓰기 하나하나로 우리는, 너에게 가해질 상처에 듣는 약을 미리 주었다. 너를 채비시키려는 것이었다." 폭풍우가 오면 마음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가르침의 보석들이 떠올라 "우리도 여기 있다. 우리를 기억하라" 한다고. 핵심은 하나입니다. 섭리는 미리 마련하는 사랑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이 없어 막막해도 하느님은 우리를 무언가를 위해 준비시키고 계시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준비를 기다리는 인내뿐입니다. 목걸이부터 봅니다. 성모님은 구슬 하나하나로 보였던 장들을 한 줄로 꿰라 하십니다. 섭리는 구슬 하나를 볼 때는 보이지 않고 줄을 꿸 때 보입니다. 바오로가 그 줄의 이름을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41회차에서 어머니가 성전에서 배우신 그 말이 오늘은 서른 해 전체의 결론이 됩니다. 섭리라는 말은 라틴어로 프로비덴티아, 미리 본다는 뜻입니다. 이 낱말이 성경에 처음 나오는 곳이 모리야 산입니다. 창세기 22장 8절입니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창세기 22장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야훼 이레, 주님께서 미리 보시고 마련하신다. 성가정의 서른 해가 이 이름 아래 있습니다. 다음은 숨은 기적들입니다. 성모님은 예수께서 태 안에 계실 때부터 은총의 기적이 시작되었다 하십니다. 엘리사벳의 태중 아기를 거룩하게 하시고, 즈카르야에게 말을 되돌려 주시고, 요셉의 영을 열어 주시고, 길에서 스친 목자를 영원히 구원하셨다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준비였습니다. 에페소서 2장 10절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세례자도 요셉도 목자도 저마다 제 몫의 선행을 미리 준비 받았습니다. 다음은 요셉의 세 걸음입니다. 첫걸음 "우리는 어찌하오?"는 걱정입니다. 예수님이 훗날 그 걱정에 답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6장 26절입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둘째 걸음 "내일은 나아질 거요"는 희망입니다. 마태오 복음 6장 3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셋째 걸음 "우리에게 예수가 있으니까"는 담대함입니다. 요셉은 예수와 함께 살면서 섭리의 강론을 서른 해 먼저 들었습니다. 지혜서가 그 담대함을 배 한 척으로 그렸습니다. 지혜서 14장 3절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당신의 섭리입니다. 당신께서 바다에 길을, 파도 속에 안전한 항로를 놓아 주셨습니다." 이집트로 가는 길에 항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키는 아버지의 손에 있었습니다. 다음은 사라진 예물입니다. 황금은 지붕과 세간과 양식으로 나갔고, 남은 몫은 돌아오는 길과 나자렛의 재정착에 빠듯했습니다. 그러니 동방 박사의 예물은 부가 아니라 여비였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받아 이집트에서 쓴, 미리 마련된 여비. 이집트에 먼저 가 있던 다른 요셉이 이 이치를 알았습니다. 창세기 45장 7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동방 박사가 함을 열던 밤, 요셉도 그 황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섭리는 언제나 뒤에 읽힙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아드님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36회차의 마태오 복음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다음은 요셉이 얻은 것입니다. 근심과 수고와 박해와 굶주림, 그 밖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바오로가 꼭 같은 목록을 적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그리고 답합니다. 로마서 8장 39절입니다.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요셉의 근심이 평화로 바뀐 것은 근심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근심 속에서도 예수가 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폭풍우와 보석입니다. 성모님은 발토르타에게 이 환시들을 미리 준 까닭을 밝히십니다. 앞으로 닥칠 상처에 듣는 약을 미리 주어 채비시키려는 것이었다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그리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14장 29절입니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해되지 않는 말씀, 지금 쓸데없어 보이는 가르침이 바로 미리 주어진 약입니다. 폭풍우가 올 때 그것이 떠오릅니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모님은 순교가 고통의 형태가 아니라 견디는 한결같음에 있다 하시고, 스스로 해내려 하지 말고 "저를 도와주세요" 한마디로 넉넉하다 하십니다. 섭리 앞에서 사람이 할 일은 인내와 그 한마디뿐입니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302항은 하느님께서 창조된 것을 그 완성으로 이끄시는 이 배려를 섭리라 부르고, 303항은 섭리의 증언이 성경 전체에 있다고 하며, 314항은 섭리의 길이 우리에게 자주 감추어져 있어 마지막에 얼굴을 마주 볼 때에야 온전히 알게 되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227항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역경 중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라 하며 아빌라의 데레사의 기도로 그 신뢰를 요약합니다. 그 기도는 1582년 데레사가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죽었을 때 성무일도서 갈피에서 나온 자필 쪽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어지럽히지 말고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인내가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가진 이는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으니,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다. 열일곱 수도원을 세우며 반대와 병과 가난을 겪은 여인이 날마다 시편 사이에 끼워 두고 읽던 쪽지였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면 모든 것을 섭리해 주시니 인내만 있으면 된다는 것, 요셉이 이집트 길에서 배운 그것을 그는 책갈피에 적었습니다. 오늘 지금 막막한 일 하나를 골라 데레사의 책갈피를 그 위에 적으십시오. 그리고 한 줄만 더 적으십시오. "이것도 무언가를 위한 준비이겠지요. 저를 도와주세요." 기억하십시오. 섭리는 미리 마련하는 사랑입니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은 여러분을 무언가를 위해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어지럽히거나 놀라게 하지 못하게 하고, 인내하십시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 다음 회차 제44장 '어머니께 작별을 고하고 나자렛을 떠나다'에서는 서른 해의 숨은 생활이 끝나는 저녁, 텃밭에서 바쳐진 첫 주님의 기도와,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눈물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