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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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요셉이 마리아에게 용서를 청하다. 하느님을 모시기 위한 믿음과 사랑과 겸손 (마태 1,18-25) 복음서 어디에도 없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용서를 청하는 장면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어떤 복음서도 전하지 않는 이 장면"을 굳이 보여 주신다고 하시는데,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는 조건 셋을 가르치시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오늘 그 셋을 성경으로 확인합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26장으로 들어갑니다. 붉어지기 시작한 사과가 아기들의 볼처럼 달린 나무 아래, 마리아가 실을 잣습니다. 그러나 헤브론에서 볼을 물들이던 빛깔은 사라지고 얼굴은 상아처럼 창백하며 눈가는 운 사람처럼 부어 있습니다. 요셉의 사흘이 마리아의 사흘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립니다. 요셉입니다. 무릎을 꿇으려는 그를 마리아가, 늘 그토록 손대기를 조심하던 마리아가 단호하게 어깨를 붙들어 막습니다. 요셉의 첫마디는 이것입니다. "당신의 용서요." 무엇이 그를 이 문 앞으로 데려왔는지 마태오 복음이 밝힙니다. 1장 20절과 21절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천사가 요셉을 부르는 호칭을 보십시오. 다윗의 자손. 사무엘기 하권 7장 12절에서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하신 그 약속의 계보로 요셉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지으라 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 아기의 이름을 짓는 이가 곧 법적 아버지이니, 1장 25절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는 문장으로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되십니다. 11장에서 본 상속 딸의 법리가 여기서 완성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천사의 설명은 시편 130편 8절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그런데 하필 꿈입니다. 12장에서 우리는 두 야곱의 아들 요셉을 보았지요. 창세기 37장 19절에서 형들은 옛 요셉을 두고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하고 비웃었습니다. 옛 요셉은 남의 꿈을 풀어 이집트를 살렸고, 새 요셉은 제 꿈에 순종하여 구원자를 살립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요셉은 네 번 꿈을 꾸고 네 번 순종합니다. 1장 24절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앞뒤를 재지 않는 이 순종을 두고 성모님께서는 "요셉은 하늘 사자의 말을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믿었다" 하십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44항이 그 믿음의 정의입니다. "믿음의 순종이란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순종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이러한 순종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를 가장 완전하게 실현하셨다." 여기서 두 사람의 의심을 견주어 보십시오. 사제 즈카르야는 천사 앞에서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목수 요셉은 아내를 의심했지만 천사의 말은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4장 20절과 21절이 아브라함을 두고 한 말이 요셉에게 그대로 맞습니다. "그는 불신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져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불가능한 잉태를 믿은 새 아브라함입니다. 이제 대화입니다. 요셉이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의심했소. 의심 하나만으로도 모욕이오, 마리아. 의심하는 이는 알지 못하는 것이오. 사흘 동안의 형벌이었소." 오늘 아침 사람들이 그의 관자놀이가 세고 얼굴에 주름이 졌다고 하더랍니다. 이 며칠이 십 년도 더 되는 세월이었다고요. 그리고 묻습니다. 어찌하여 신랑인 나에게마저 당신의 영광을 잠잠히 감추었느냐고. 마리아의 대답이 이 장의 심장입니다. "제가 완전한 데까지 그렇게 겸손하지 않았더라면, 사람을 망친 그 교만의 죄를 없애러 오시는 그분을 잉태할 자격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하느님의 여종이고, 종은 받은 명령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아요. 종은 그것을 실행할 뿐이에요, 요셉. 그것이 피눈물을 흘리게 할지라도요."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가 여기 있습니다. 50장 5절,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마리아가 조용히 울고, 눈물 한 방울이 땅에 떨어지자 요셉은 그 작은 두 손을 제 검고 억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손가락 끝에 입 맞춥니다. 책은 요셉이 이런 몸짓을 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적지요. 그리고 다음 주 안으로 혼인을 이루자고 합니다. "내가 그대의 종이오. 나는 당신 태 안에서 자라시는 내 주님의 복된 종이오. 오! 내가 어떻게 내 집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을까요? 내 두 팔에 하느님을?" 요셉의 사흘을 두고 성경에 한 가지 무늬가 있습니다. 성가정에는 사흘이 세 번 옵니다. 오늘 요셉이 아내를 의심하며 보낸 사흘, 훗날 루카 2장 46절에서 부모가 잃어버린 열두 살 아들을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찾아낸 사흘, 그리고 무덤의 사흘입니다. 호세아서 6장 2절이 하느님의 회복 시계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요셉이 이 시계를 성가정에서 가장 먼저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가난을 걱정하는 요셉에게 답합니다. "다윗의 혈통이 기다려 온 임금을 모시고, 우리 집이 솔로몬의 궁전보다 더 화려해질 거예요." 훗날 아드님께서 하실 말씀 그대로입니다.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예언합니다. "우리의 두 팔은 자라나시는 속량자의 요람이 될 것이며, 우리의 수고가 그분께 빵을 드릴 거예요.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우리를 '아버지'라, '어머니'라 부르시는 것을 듣게 될 거예요." 그 예언은 열두 살 성전에서 마리아 자신의 입으로 확인됩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목수를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받아쓰기에서 성모님께서는 창백함의 뜻부터 바로잡으십니다. 돌에 맞을 두려움이 아니라 요셉의 고통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한 의인이 사랑을 저버림으로써 정의마저 저버릴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하느님을 모시는 세 조건을 주십니다. 믿음, 곧 앞뒤 재지 않고 하느님과 이웃을 믿는 것. 절대적인 사랑, 곧 미리 용서하고 그 순간에 용서하는 것. 그리고 겸손인데 두 겹입니다. "'내가 그르쳤다.'고 말하기를 마다하는 그 교만을 지니지 않는 것", 그리고 더 어려운 겸손, "우리 안에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잠잠히 감출 줄 아는 겸손"입니다. 18장의 그 침묵이 이제 규칙이 됩니다. "너희를 당신 종이라 알리시는 일은 주님께 맡겨 드려라." 그리고 마니피캇의 메아리로 맺으십니다. 교만한 이는 흩으시고 겸손한 이는 들어 올리시는 분을 찬미하라고요. 요셉의 "용서하시오"와 마리아의 "고마워요"는 오늘도 모든 가정의 문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서 「사랑의 기쁨」에서 가정을 지키는 세 마디를 꼽았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나자렛의 이 아침이 그 세 마디의 원형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먼저 미안하다고 했고, 잘못 없는 사람이 먼저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한마디입니다. 오늘 안에 누군가에게 "내가 그르쳤어요" 하고 말하십시오. 성모님께서 그 교만이 앞선 잘못보다 더 해롭다 하셨으니, 의심으로 남을 모욕한 일이 있다면 요셉처럼 먼저 문을 두드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의심하는 이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겸손, 이 셋이 하느님을 모시는 집의 세 기둥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27장, 회당 문에 붙은 호적 명령서, 만삭의 성모님이 베들레헴으로 떠나게 되는 밤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