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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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장. 임금이 사랑한 말의 비유를 들려주신 뒤 가난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다 마귀 들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안식일 저녁 베드로의 처가 텃밭에서 벙어리 아들과 똥을 먹는 형제가 낫습니다. 마귀가 나가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그보다 더 무섭고 더 흔한 마귀 들림이 있으니 영혼의 마귀 들림이다. 마음을 벙어리로 만들어 정직과 사랑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시궁창으로 만들어 부정한 악습 속에 뒹굴게 하는 것이다." 마귀는 제가 나쁜 것임을 압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대로 "마귀들도 믿고 무서워 떱니다." 그런데 제 뜻과 제 욕망에 마귀 들린 자는 제가 마귀 들린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59회차에서 안의 원수가 자아임을 보았으니, 오늘은 그 자아가 어떻게 사람을 마귀 들린 이로 만드는지, 임금이 사랑한 말과 텃밭의 노인과 세 임금의 이야기로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61장으로 들어갑니다. 임금의 말부터 봅니다. 한 임금이 각별히 아낀 말이 명령을 거스르고 달아났고, 임금은 벌하면서도 용서를 약속하고 선물과 지킴이를 보냈으나 말은 "참으로 그 임금의 것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뜻이 없었습니다. 기진하고 짓눌려 신음하면서도 제 탓으로 이 꼴이 되었습니다 하지 않고, 도리어 저를 부르면 들어 주지 않는다며 바로 그 임금을 탓하였습니다." 이 말이 자아에 들린 영혼입니다. 제 뜻에 들려 있고, 그 때문에 괴로우면서도 임금을 탓하니, 제가 들린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3절입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짐승도 아는 것을 자아는 모릅니다. 임금은 끝내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은 곧 나 자신이되 사랑으로 더 드높여진 나이기 때문이다." 무리가 판결합니다. 그 말이 착해지지 않았다면 "죽어 마땅합니다. 사나운 들짐승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십니다. "적어도 저 짐승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여러분이 판단한 그만큼은 되십시오." 다음은 세 임금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세 임금이 세 가지 자아에 들렸습니다. 사울은 교만에 들렸습니다. 아말렉을 다 없애라는 말씀을 어기고 좋은 양과 소를 남긴 그에게 사무엘이 말합니다. 사무엘기 상권 15장 24절입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고집, 곧 제 뜻이 우상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뉘우치며 청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무엘기 상권 15장 31절입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만, 제 백성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앞에서 제발 체면을 세워주십시오." 죄를 고백하는 입으로 체면을 청합니다. 들린 줄 모르는 사람의 뉘우침입니다. 다윗은 욕정에 들렸습니다. 옥상의 눈길이 간음이 되고 살인이 되었는데, 나탄이 부자가 가난한 이의 암양을 빼앗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가 분노합니다. 사무엘기 하권 12장 5절과 7절입니다.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남의 죄는 보면서 제 죄는 못 보는 것, 이것이 자아의 마귀 들림의 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자리에서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했고, 그 한마디로 들린 데서 풀려났습니다. 솔로몬은 탐욕에 들렸습니다. 임금에게 금한 것이 셋이었습니다. 신명기 17장 16절부터 17절입니다. "임금은 군마를 늘려서는 안 된다. 아내를 늘려 마음이 빗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은이나 금을 너무 많이 늘려서도 안 된다." 솔로몬은 셋을 다 늘렸습니다. 군마 만 이천 필, 아내 천 명, 은을 돌처럼 흔하게. 열왕기 상권 11장 4절입니다. "솔로몬이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지혜를 청해 받은 사람이 제 욕망에 들려 지혜를 잃었습니다. 교만과 욕정과 탐욕, 38회차의 세 욕망이 세 임금 안에 들어앉았고, 셋 가운데 저를 본 사람은 다윗뿐이었습니다. 다음은 텃밭의 노인입니다. 예수님이 헌금을 여섯 몫으로 나누시어 오그라든 이와 눈먼 이들과 코라진의 이사악과 일곱 아이 딸린 과부에게 주십니다. 몸이 오그라든 이에게는 "나는 자비요. 오직 사랑과 믿음만을 청하오" 하시고 굽은 등을 펴 주십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눈에 불꽃이 일었던 노인이 마지막에 외칩니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당신은 의롭지 않소! 저 여자에게는 여섯 배나 주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니." 예수님이 두 번 잠잠하시다가 이르십니다. "내가 당신의 흰머리를 봐주지 않는다면, 당신 품에서 금이 가득한 주머니를, 곧 당신 마음이 참으로 가 있는 곳을 찾아냈을 것이오." 금을 품고 돈을 받으러 나온 사람, 그가 그날 텃밭에서 참으로 마귀 들린 이였습니다. 벙어리 아들은 제가 벙어리인 줄 알았고 똥을 먹는 형제는 그 집이 부끄러워했는데, 이 노인은 제가 들린 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당신은 의롭지 않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묵시록 3장 17절입니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금을 품고도 가난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금을 품고도 비참한 줄 모르는 것이 그의 병입니다. 루카 복음 12장 15절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그리고 무리가 그를 욕하자 또 막으십니다. "여러분은 그를 욕함으로써 사랑을 저버립니다." 도둑은 정직에 들렸고 욕하는 이는 미움에 들렸습니다. 다음은 베드로의 자리입니다. 왜 자아의 마귀 들림이 마귀보다 무섭습니까. 베드로가 그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수난을 말리던 그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 16장 23절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에게 마귀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그를 사탄이라 불리게 했습니다. 마귀는 밖에서 들어오지만 자아는 안에서 자라고, 마귀는 쫓겨나면서 비명을 지르지만 자아는 쫓겨날 생각이 없습니다. 스승을 사랑해서 한 말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그 끝을 보여 줍니다. 돈주머니를 맡고 조금씩 빼내던 그 자아에 어느 밤 참으로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요한 복음 13장 27절입니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자아의 마귀 들림에 문을 열어 둔 사람에게 끝내 사탄까지 들어옵니다. 그래서 두 팔을 드시어 마귀를 쫓으신 분이 이 마귀 들림 앞에서는 애가 타십니다. "지친 것이 아니다, 나의 요한아. 고치려는 뜻이 너무 없어 애가 탄다." 임금의 말처럼 본인의 뜻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제키엘 36장 26절입니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치워 달라고 내놓는 것만이 사람의 몫이고, 다윗이 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보다 더 무섭고 더 흔한 마귀 들림이 있으니 영혼의 마귀 들림이다." "인간 마음들의 상태 때문에, 또 고치려는 뜻이 너무 없어 애가 탄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707항은 사목 헌장의 말로 사람의 처지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분열되어 있다." 1539년 스페인 톨레도에서 황후 이사벨이 죽자 서른의 궁정 귀족 프란치스코 보르하가 관을 호송하여 그라나다까지 갔습니다. 무덤에서 신원을 확인하려고 관을 열었을 때, 그가 평생 아름답다고 보아 온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이 썩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다시는 죽을 수 있는 주인을 섬기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간디아 공작의 작위와 재산을 내려놓고 예수회에 들어가 뒷날 그 수도회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제가 무엇에 들려 있는지 몰랐습니다. 열린 관이 나탄의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였습니다. 오늘 나탄이 되어 내게 물으십시오. 남의 죄를 보고 분노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닌지. 그리고 다윗의 한마디를 하십시오. "제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들린 줄 아는 것이 풀려나는 첫걸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귀 들림보다 무서운 것은 자아의 마귀 들림입니다. 마귀는 제가 나쁜 줄 알지만 제 뜻과 욕망에 들린 자아는 들린 줄 모르고, 그래서 임금을 탓하고 남의 죄에 분노하며 사람의 일을 생각하다 사탄이라 불립니다. 치워 달라고 내놓는 뜻만이 그 문을 닫습니다. 다음 회차 제62장 '밤에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이 찾다'에서는 날이 새기도 전에 외딴곳으로 기도하러 나가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찾아 나선 장면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