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Curated by: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87 videos)


Currently Playing: [제5장. 마리아의 탄생]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제5장. 마리아의 탄생 성부의 영원한 생각 안에 있는 그분의 동정성 가뭄에 타들어 가던 나자렛의 하늘에 마침내 폭풍이 터집니다. 번개와 천둥과 억수 같은 비가 사납게 몰아치더니, 유난히 무서운 마지막 번개 하나가 내리꽂히고는 폭풍이 단번에 뚝 그칩니다. 바로 그 순간, 방문 너머에서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헤르몬 산에서 솟아 이스라엘 온 땅을 두르는 거대한 무지개가 걸리고, 해가 지기도 전에 금강석 같은 별 하나가 뜨고, 보름이 사흘이나 남은 달이 벌써 둥글게 차오릅니다. 성모님께서 태어나신 날의 하늘입니다. 때는 지난 장의 봄에서 다섯 달쯤 지난 늦여름입니다. 무더위와 가뭄 속에 만삭의 안나는 친척 여인의 팔에 기대어 텃밭으로 나오고, 요아킴은 시든 나무를 살리려 밭에 물길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탄생의 하늘을 그리며 슬쩍 흘리는 말이 있습니다. "더없이 맑은 구월 하늘"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구월이라는 낱말, 지난 시간에 약속드린 열쇠가 여기서 돌아갑니다. 텃밭의 대화부터 들어 보십시오. 안나는 요즘 마음속에 늙은 토빗의 노래가 산다고 고백합니다. 토빗기 13장 10절의 노래입니다. "예루살렘아, 주님을 올바로 찬양하여라. 영원하신 임금님을 찬미하여라. 네 성소가 다시 기쁨 속에 지어지리라." 이어지는 11절은 이렇습니다. "밝은 빛 하나가 세상 끝 모든 곳까지 비추리니, 저마다 하늘의 임금님께 바칠 예물을 손에 들고 멀리서 많은 민족이 너에게 오리라." 그리고 안나는 어머니의 직감으로 말합니다. 성소를 다시 세울 이가 바로 태어날 이 아이 같다고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보았지요. 하느님을 모신 초막, 곧 성막이 마리아에게서 완성된다는 것을요. 이제 폭풍의 밤입니다. 일꾼들의 입담이 걸작입니다. 한 사람이 사탄이 게헨나에서 마귀들을 다 끌고 나온 모양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이 웃으며 받아칩니다. 큰 먹잇감 하나를 놓쳤나 보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실은 정답이었습니다. 이 밤에 사탄은 정말로 온 인류라는 먹잇감을 놓치고 있었으니까요. 한편 요아킴은 안절부절못합니다. 산모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걱정입니다. "산고가 없으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오." 그러나 안나는 고통 없이 딸을 낳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서 하느님께서 죄지은 여자에게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하신 그 산고는 죄의 결과였습니다. 티 없는 아이의 탄생에 산고가 비켜 간 것은 이 아이가 죄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표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지개입니다. 창세기 9장 13절에서 하느님께서는 홍수 뒤에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의 시작이 마리아였다면, 그 마리아가 태어나는 하늘에 노아의 무지개가 다시 걸리는 것보다 더 정확한 표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작은 발이 어떻게 그토록 험한 길을 걷고, 십자가 아래에서 그토록 큰 고통을 떠받친단 말인가?" 갓난아기의 발가락 앞에서 골고타를 내다보는 이 한 문장에 이 책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이름 짓는 장면도 아름답습니다. 안나는 폭풍 뒤의 하늘을 보며 외칩니다. "마리아, 평화의 무지개! 마리아, 나의 별! 마리아, 정결한 달! 마리아, 우리의 진주!" 그때 요아킴이 조심스레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는 쓰라림이라는 뜻도 있소. 실제로 룻기 1장 20절에서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하고 말하지요. 훗날 시메온이 예언할 칼에 꿰찔리는 영혼이 이 이름 안에 이미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나의 대답이 신앙의 절정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와 함께 계세요. 온갖 쓰라림은 천국의 꿀로 바뀔 거예요." 환시가 끝나면 받아쓰기가 이어지는데, 여기서 시리즈의 큰 매듭 하나가 풀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언 8장의 지혜 찬가를 통째로 낭송하게 하시고 이렇게 밝히십니다. "나는 네가 이 찬가의 첫 구절을 그분에 관한 책 첫머리에 적기를 바랐다." 첫 시간에 우리가 궁금해했던 표제의 이유를 책이 스스로 밝히는 것입니다. 잠언 8장 30절과 31절의 그 노래,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는 말씀이 지혜를 두고 하는 말이면서 바로 나의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단일 주제가 선포됩니다. "동정녀는 하느님의 숭고하신 생각 안에서 창조되셨다." 받아쓰기는 성부께서 아직 영으로만 계신 마리아를 바라보며 창조하시는 노래까지 들려줍니다. "나는 너를 바라보며 네 눈빛의 푸르름을 바다와 창공에 준다. 네 머리칼의 빛깔을 거룩한 밀에 준다." 순서를 보십시오. 마리아가 바다를 닮은 것이 아니라 바다가 마리아를 닮았다는 것, 창조가 그분을 모델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과장일까요. 성경과 교리가 답합니다. 먼저 지혜 전통의 둘째 기둥, 집회서 24장 9절에서 지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한처음 세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분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나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으리라." 교회가 성모 축일마다 이 구절들을 봉독해 온 까닭입니다. 콜로새서 1장 16절은 그리스도에 관해 선언합니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를 향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어머니를 통해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면, 창조의 설계도 안에 어머니가 처음부터 그려져 있었다는 것은 정확한 신학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92항은 "성부께서는 다른 모든 창조된 인간들보다 마리아에게 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내리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마리아께서 모든 피조물에 앞서 축복받으셨다는 이 가르침의 뿌리는, 마리아는 하늘과 땅의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시다고 선언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53항입니다. 그런데 눈여겨보십시오. 교리서 492항이 마지막에 마리아께 적용하는 성경 구절이 에페소서 1장 4절,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입니다. 성경 전체의 구조도 이 선재를 증언합니다. 성경의 첫머리,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뱀에게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하시며 역사의 새벽에 이미 한 여인을 예고하셨고, 교리서 410항과 411항이 전하듯 교회 전승은 이 여인을 새 하와 마리아로 보아 왔습니다. 현행 전례도 12월 8일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제1독서로 바로 이 창세기 3장을 봉독합니다. 옛 전례는 잠언 8장으로, 현행 전례는 창세기 3장으로, 같은 신비를 성경의 두 기둥에서 읽어 온 것이지요. 그리고 성경의 끝, 요한 묵시록 12장 1절에는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큰 표징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방금 들으신 성부의 창조 노래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고운 두 발 아래 달을 두고, 별들의 화관을 가져라." 창세기에서 예고되고 묵시록에서 완성되는 그 여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성경의 처음과 끝이 이 한 여인을 품고 있다는 것, 이것이 선재의 성경적 증거입니다. 물론 오해는 말아야지요. 요한 복음 1장 1절대로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참으로 선재하시는 분은 말씀뿐이십니다. 마리아의 선재란 존재의 선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생각과 계획 안의 선재입니다. 비오 9세 교황은 그 선포 칙서 「이네파빌리스 데우스」 첫머리에서 하느님께서 한처음부터, 세세 전부터 외아드님의 어머니를 선택하시고 준비해 두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여기가 오늘의 심장입니다. 교리서가 마리아께 적용한 그 구절을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에게 씁니다. 에페소서 1장 4절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그런데 하느님의 생각 안에 있었다는 것은 그냥 존재만 계획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적 없이 창조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서 2장 10절이 그 목적을 밝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내가 할 일, 나의 사명이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장 5절은 그 순서를 보여 줍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아셨고, 성별하셨고, 세우셨다. 하느님의 생각 안에는 언제나 얼굴과 함께 사명이 있습니다. 마리아께서 바로 그 길의 모범이십니다. 천사의 말에 마리아께서는 먼저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명을 찾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아셨을 때 받아들이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십자가 밑까지 끝까지 걸어가셨습니다. 찾고, 알고, 나아가신 것입니다. 쓰라림이라는 이름값의 온갖 어려움을 이기신 힘이 바로 여기, 자기가 왜 창조되었는지 아는 데에 있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젊은 날 그 방황의 표본이었는데, 그는 결국『고백록』 첫머리에서 "당신을 향하도록 저희를 지으셨기에,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방황이란 결국 내 사명 바깥을 헤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서 8장 28절에서 약속한 그대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사명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조차 재료가 됩니다. 그러니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고 계신 분, 오늘 밤 어린 사무엘의 기도를 그대로 바쳐 보십시오. 사무엘기 상권 3장 10절의 그 한마디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묻고, 알고,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은 우연이 아니라 계획이며, 계획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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