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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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요아킴과 안나가 주님께 서원하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베틀 앞에 앉은 연세 많은 여인이 있습니다. 이웃이 무심코 건넨 덕담 한마디에 여인은 한숨을 쉬고, 이내 두 줄기 눈물을 떨굽니다. 그 눈물을 본 것은 다섯 살 꼬마 하나뿐. 아이가 고사리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 줍니다.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아시면 놀라실 겁니다. 예수님의 외할머니이십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2장, 요아킴과 안나가 주님께 서원하는 장면입니다. 무대는 갈릴래아의 언덕 마을 나자렛입니다. 화면의 지도를 보시면 갈릴래아 호수 서쪽, 에스드렐론 평야를 내려다보는 산자락 마을이지요.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성경 어디에도 성모님의 부모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요아킴과 안나라는 이름은 이미 2세기부터 기록으로 내려오는 교회의 오랜 전승이 전해 준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7월 26일을 성 요아킴과 성 안나 기념일로 지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부터 이 축일에 가까운 주일을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외조부모가 온 세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수호자가 된 것입니다. 발토르타의 환시는 바로 그 교회의 가장 오래된 기억과 같은 줄기 위에 서 있습니다. 환시 속 안나는 베틀에서 여러 빛깔의 북을 놀리고 있습니다. 그리스풍 무늬와 꽃무늬가 얽힌 휘장, 팬지꽃 같은 자줏빛 옷. 검고 깊은 두 눈은 "여왕처럼 당당하면서도 부드럽"고, 독수리처럼 번뜩이는 빛 위에 "푸른 면사포가 한 겹 드리운 듯", 어딘가 애잔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눈빛입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 이웃 여인이 물동이를 빌리러 왔다가 다섯 살배기 알패오를 맡기고 갑니다. 그때부터 안나의 얼굴이 달라집니다. 아이를 안아 포도 시렁까지 들어 올리고는 "먹으렴, 먹으렴, 맛있단다" 하며 포도즙 범벅이 된 볼에 입을 맞춥니다. 아이가 당돌하게 묻지요. "그럼 이제 뭐 줄 거야?" 안나가 웃으며 무얼 주겠느냐 되묻자 아이는 손뼉을 치며 외칩니다. "뽀뽀, 뽀뽀해 줄게! 예쁜 안나, 착한 안나, 엄마 안나!" 엄마 안나. 이 한마디에 안나는 기쁨에 겨운 탄성을 터뜨리며 어린것을 끌어안습니다. 꿀과자를 내주며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묻자, 아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주님의 성전만큼." 텃밭에서 요아킴이 들어옵니다. 하얗게 센 머리에 터키옥처럼 푸른 눈의 노인입니다. 아내 뒤로 다가서며 장난스레 묻지요. "내게는 아무것도 없소?" 그러고는 허리띠의 가지치기 칼로 사과를 잘게 썰어 아이의 벌어진 입에 한 조각씩 넣어 줍니다. 책은 그 모습을 "둥지 속 어린 새에게 먹이를 물려 주는 듯"하다고 그립니다. 노부부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감탄을 주고받습니다. 이 눈 좀 보세요, 갈릴래아 호수의 두 조각 같지 않아요? 저 곱슬머리는 햇볕에 마른 곡식 빛깔 같지 않소? 그러다 안나의 입에서 평생의 아픔이 흘러나옵니다. "아!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더라면, 나는 꼭 이런 아이이기를 바랐을 거예요." 안나가 무릎을 꿇고 아이의 두 눈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감추는 눈물을 감춥니다. "내가 주님의 마음을 거슬렀나 봐요. 그분께서 내 태를 메마르게 하셨으니까요." 그때 요아킴이 아내의 흰 머리에 손을 얹고 오늘의 핵심 문장을 말합니다. "아직은 바라야 하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소.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있는 법이오. 더욱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할 때에는 말이오." 그리고 제안합니다. 초막절에 성전으로 한 번 더 올라가 길게 기도합시다. 사라에게 있었던 일이, 엘카나의 아내 한나에게 있었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지 모르오. "죄 없는 이 아이도 함께 기도하게 합시다." 안나가 응답합니다. "주님께 서원을 드려요. 태어날 아이는 그분의 것이 되게 해요. 오, 누가 나를 엄마라 불러 준다면!" 그러자 알패오가 놀란 듯 외치지요. "내가 그렇게 불러 줄게!" 요아킴이 위로하며 든 그 이름, 엘카나의 아내 한나. 그런데 히브리 말로 한나와 안나는 같은 이름입니다. 뜻은 은총. 그러니까 요아킴은 지금 한나라는 이름의 아내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기 상권 1장 11절에서 그 옛 한나는 이렇게 서원했지요.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들리십니까. "태어날 아이는 그분의 것이 되게 해요"라는 안나의 서원과 뼈대가 같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성전에 봉헌되었듯, 안나의 딸 마리아도 성전에 봉헌됩니다. 교회가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지키는 바로 그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의 사라는 어떻습니까. 창세기 18장 14절에서 주님께서는 늙은 사라의 웃음 앞에 물으셨지요.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이 문장은 훗날 루카 복음 1장 37절, 가브리엘 천사의 입에서 이렇게 완성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이사악의 잉태와 예수님의 잉태를 잇는 같은 문장, 그 한가운데에 요아킴의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소"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람은 하느님 능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89항이 똑같이 그립니다. "구약의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사명은 거룩한 여인들의 사명을 통해서 예비되어 왔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든 기대와는 달리 무능하고 약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여인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같은 이들을 선택하셨다고 말합니다. 요아킴의 대사와 교리서의 문장이 같은 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름 이야기를 하나만 더 얹겠습니다. 요아킴은 '주님께서 일으키신다', 안나는 '은총'이라는 뜻입니다. 두 이름을 이으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께서 은총을 일으키신다. 그리고 루카 복음 1장 28절, 그 딸에게 천사가 건넨 첫인사가 무엇이었습니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부모의 이름이 그대로 딸의 정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 꼬마 알패오. 마태오 복음 10장 3절의 사도 명단을 읽을 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이름이 있지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발토르타의 이야기 안에서 그 알패오가 바로 이 아이입니다. 안나의 눈물을 닦아 주고, 마리아의 탄생을 위해 노부부와 함께 성전에서 기도하게 될 죄 없는 아이. 이 아이가 자라 낳은 아들들이 훗날 그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난 마리아의 아드님을 따르는 사도들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아이의 입맞춤과 한 노인의 서원까지, 이렇게 수십 년에 걸친 그물로 엮으십니다. 핵심 문장으로 돌아갑시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낙관적인 덕담이 아니라 성경의 뼈대입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을 두고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었고,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사라의 모태도 죽은 것이라 여기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시편 113편 9절도 노래하지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도 집 안에서 살며 여러 아들 두고 기뻐하는 어머니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일하실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요아킴과 안나의 이야기는 이천 년 뒤 한 프랑스 부부에게서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부모, 루이 마르탱과 젤리 마르탱 부부입니다. 1823년에 태어난 루이와 1831년에 태어난 젤리는 1858년 알랑송에서 혼인하여 아홉 자녀를 낳았는데, 그 가운데 넷을 어려서 잃는 긴 눈물의 세월을 지났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살아남은 다섯 딸을 모두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태어날 아이는 그분의 것이 되게 해 달라던 안나의 서원 그대로 산 것이지요. 그 막내가 바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성녀, 소화 데레사입니다. 그리고 2015년 10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부부를 교회 역사상 최초로 부부가 함께 성인품에 오르게 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에게 기적이 일어난다는 요아킴의 말을, 교회가 시성식으로 확인해 준 셈입니다. 이 장을 받아 적던 날, 발토르타는 어머니를 여읜 지 꼭 한 해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환시에 앞서 성모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지요. "딸아, 그러니 나에 관하여 쓰거라. 너의 모든 괴로움이 위로받으리라." 어머니를 잃은 딸에게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성모님. 요한 복음 19장 27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하신 그 말씀은 오늘 우리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래 응답 없는 기도를 안고 계신 분, 오늘 요아킴처럼 하십시오. "한 번 더 성전에 갑시다." 포기가 아니라 한 번 더가 신앙입니다. 루카 복음 1장 37절의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기억하십시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할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3장, 초막절의 요아킴과 안나, 지혜를 소유한 부부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