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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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세례자 요한의 성전 봉헌과 마리아의 떠남. 요셉의 수난 사흘의 수난: 향주삼덕 성장의 발판 요셉 성인에게 수난이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성모님께서는 오늘 그것을 "요셉의 수난, 그 사흘"이라 부르십니다. 날수는 짧으나 격렬함은 끔찍했던 사흘, 그런데 이천 년 동안 거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수난입니다. 오늘은 그 수난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25장으로 들어갑니다. 요한이 태어난 지 마흔 날, 온 가족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옵니다. 맏아들을 봉헌하고 되사는 예식과 어머니의 정결례입니다. 탈출기 13장 13절이 명한 그대로이지요. "너희 자식들 가운데 맏아들은 모두 대속해야 한다." 엘리사벳은 번제물로 어린양을, 속죄 제물로 비둘기를 바칩니다. 레위기 12장은 양을 바칠 힘이 없으면 비둘기 두 마리로 대신하라고 했는데, 사제의 아내는 양을 바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어린양을 태중에 모신 여인이 서 있고, 그 여인은 마흔 날 뒤 자기 아들을 봉헌하러 올 때 루카 2장 24절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게 됩니다. 가난한 이의 제물입니다. 어린양의 어머니는 양을 바칠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책은 사제복을 입은 즈카르야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주님께 바치는 기쁨을 누릴 때" 같았다고 적는데, 이 병행은 성경이 먼저 놓아 둔 것입니다. 늙은 사라에게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창세기 18장 14절입니다.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가 바로 사라의 그 문장이었고, 늘그막에 아들을 얻은 엘리사벳은 새 사라입니다. 사라가 "하느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셨구나" 했듯 엘리사벳의 아들은 태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고, 이사악이 여드레째 할례를 받았듯 요한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모리야 산에서 아들을 바쳤듯, 오늘 즈카르야가 같은 산의 성전에서 아들을 바칩니다. 그런데 성전 뜰에서 군중이 수군거립니다. 아기를 안은 마리아를 보고 어머니인 줄 알다가, 한 여인이 말합니다. "저분이 잉태한 것이 안 보여요? 아기는 태어난 지 며칠 안 됐는데 저분은 벌써 배가 불렀잖아요." 이제 넉 달, 마리아의 잉태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결례를 치르는 이가 엘리사벳임이 밝혀지자 놀라움이 커지고, 벙어리였던 즈카르야의 혀가 풀린 이야기까지 퍼지자 이런 물음이 나옵니다.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일까?" 그리고 누군가 성경으로 답합니다. "유다에서 태어나기는 했지. 하지만 베들레헴도 아니고 동정녀에게서도 아니니, 메시아일 수는 없어." 미카서 5장 1절과 이사야서 7장 14절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그 동정녀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고, 그 동정녀는 이 잔치에서 "거의 꺼리듯 피해진" 유일한 사람입니다. 레위기 12장의 관습대로 아이 밴 여인은 멀리하던 때였으니까요. 요한 복음 1장 11절이 여기서 처음 이루어집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태중의 그분께서 당신 성전에 오셨는데, 성경을 외우는 백성이 어머니를 피해 갔습니다. 이사야서 53장 3절의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를 어머니가 먼저 맛본 것입니다. 요셉은 오지 않습니다. 카나에서 일하다 전갈을 늦게 받았고 나귀의 편자까지 빠졌기 때문인데, 그동안 일행은 "제베대오의 친척들"의 집에 머뭅니다. 훗날 사도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가 될 제베대오의 예루살렘 친척입니다. 요한 복음 18장 15절은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 들어간 제자를 두고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였다고 적는데, 제베대오 집안에 예루살렘 연고가 있었다는 발토르타의 세부와 맞아떨어집니다. 마침내 요셉이 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무더위에도 겉옷을 한 번도 벗지 않고 구석에 앉아 말을 아낍니다. 요셉이 묻습니다. "창백하고 슬퍼 보이오." "요한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파요." 즈카르야에게 강복을 청하려 무릎 꿇을 때 겉옷이 흘러내려 그 몸매가 드러나는데, 책은 요셉이 그것을 알아챘는지 모른다고만 적습니다. 요셉은 여느 때처럼 다정합니다. 집도 텃밭도 정돈해 두었고, 석류나무는 열매가 무거워 받쳐 주었으며, 올리브는 검은 진주처럼 여물 것이고, 알패오 형님은 기적이라 하더라고요. 그리고 하나 더. "그대를 위해 안쪽, 동굴 곁에 샘을 하나 만들고 물통을 놓아두었소. 작은 물줄기 하나를 그대에게로 끌어왔소. 이제 물이 흘러오며 하프처럼 노래한다오." 11장에서 어린 마리아가 사랑하던 샘의 동굴, 14장에서 요셉이 재현하겠다고 약속한 그 동굴에 정말로 샘이 흘렀습니다. 아가 4장 12절이 봉인된 샘이라 불렀던 신부의 정원에, 4장 15절의 "정원의 샘, 생수가 솟는 우물"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첫 별빛 아래 밤길을 떠납니다. 안장을 살피며 요셉이 마리아를 살펴봅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받아쓰기는 성목요일 전야에 왔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내 요셉 또한 자신의 수난을 겪었다"고 하시며 그 수난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생겨났다"고 밝히십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제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였습니다. 신명기 22장 24절은 약혼한 처녀의 부정을 두고 "두 사람을 다 그 성읍의 성문으로 끌어내어, 그들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고 명합니다. 성모님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덜 거룩했더라면, 그는 사람의 방식대로 행하여, 나를 간음한 여자로 고발해 돌에 맞아 죽게 하고 내 죄의 자식이 나와 함께 스러지게 했으리라." 마태오 1장 19절의 "의로운 사람"이 남모르게 파혼하려 한 까닭이 이것이고,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여기서 그의 거룩함은 나의 거룩함보다도 한결 더 높이 빛난다" 하십니다. 요셉의 사흘. 성목요일 전야에 이 말씀을 하신 뜻이 짚입니다. 아드님의 사흘 앞에 양부의 사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자신의 첫 수난도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 요셉에게 밝혀 주시기를 바랐던 청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의심이 등 뒤에서 솟아올라, 내 영혼을 옭아매어 그 기도를 멈추라고 차가운 발톱을 뻗어 오는 것을" 느꼈다고요. 그 의심이 절망이라는 죽을병의 첫 원인이라고 하십니다. 시편 42편 6절이 그 싸움의 노래입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 내리며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가톨릭교회교리서 2091항은 이 병의 정체를 밝힙니다. "첫째 계명은 희망을 거스르는 죄, 곧 절망이나 자만과도 관련된다. 절망으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시거나 죄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버린다." 나자렛에 닿자 요셉은 짧은 인사만 남기고 "짧은 사이에 늙어 버린 듯한 모습으로" 떠났고 저녁에 오지 않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홀로 갇힌 집에서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야 했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했다. 또 요셉의 의심을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했다" 하십니다. 그리고 규칙을 주십니다. "한없이 바라라. 불신 없이 기도하라. 용서받으려면 용서하라." 교리서 2840항이 주님의 기도를 풀며 가르치는 그대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않는 한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 마음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를 부부의 자리에서 살아 낸 성녀가 모니카입니다. 4세기 북아프리카에서 성미 급하고 부정한 이교인 남편 파트리키우스와 살면서 그녀는 원망 대신 인내와 기도와 용서로 남편을 대했고, 남편은 죽기 한 해 전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난 장의 아우구스티노가 그 아들이니, 어머니의 눈물이 남편과 아들을 다 낳은 셈입니다. 교회는 그를 아내와 어머니들의 주보로 공경합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요셉의 사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해받아 아픈 일이 있다면 고발하지 말고 사흘을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그 사흘 동안 성모님의 세 마디를 사십시오. 바라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기억하십시오. 요셉의 수난은 사흘이었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흘 뒤에 개입하셨습니다. 한없이 바라고, 불신 없이 기도하고, 용서받으려면 용서하십시오. 다음 시간에는 제26장, 요셉이 마리아에게 용서를 청하는 날, 마태오 복음 1장의 꿈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