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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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장. 논쟁 끝에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마귀 들린 이를 낫게 하시다 왜 예수님께서 악한 영에게 당신을 증언하게 하셨을까?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옷을 갖춰 입은 사람이 "우리는 당신을 모르오" 하자 예수님이 뜻밖의 증인을 부르십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른 이가 말할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것이오." 마귀 들린 사람이 끌려 나와 외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악한 영은 압니다. 지옥에 간 존재들도 압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마귀도 아는데 사람이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 안에 마귀보다 못한 적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자아입니다. 자아는 그분을 알아보는 순간 제가 죽어야 함을 압니다. 그분이 임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악한 영의 입을 빌려 드러내시는 그 안의 원수를 밝혀내십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59장으로 들어갑니다. 회당 문턱부터 봅니다. 회당장이 아무 두루마리나 펼쳐 짚어 준 자리를 예수님이 읽으십니다. 여호수아기 7장 13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완전 봉헌물이 있다. 그 완전 봉헌물을 너희 가운데에서 치워 버리기 전에는, 너희가 원수들에게 맞설 수 없다." 아간이 제 천막 아래 묻은 것 때문에 아이 성에서 진 뒤의 말씀입니다. 무리는 로마를 칠 임금을 기다리며 "원수들을 거스르는 멋진 말씀을 듣겠구먼" 하지만, 예수님이 그 기대를 뒤집으십니다. "이스라엘이여! 그대는 바깥의 원수와 싸우라고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안의 원수와 싸우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음마다 있는 그 원수와." 성벽이 아니라 진영 안 천막 아래 묻힌 것이 이스라엘을 지게 했듯, 로마가 아니라 저마다의 마음 안에 묻힌 것이 이스라엘을 묶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원수의 이름입니다. 뒷날 베드로가 수난을 말리자 예수님은 그 원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6장 23절부터 24절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베드로까지 사탄이라 불리게 만든 것, 그것이 자아이고, 그 처방이 "자신을 버리고"입니다. 이 자아가 어디서 났는지 창세기가 압니다. 창세기 3장 5절입니다.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뱀이 건넨 첫 말이 하느님처럼 되라는 것이었고, 그 뱀 자신이 먼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야 14장 13절부터 14절입니다.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나는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아져야지." 나는, 나는, 나는. 구약의 뱀은 밖에 있는 짐승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는 하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그 뱀이 자아내는 것이 38회차의 세 욕망, 곧 삼구이고, 그 집착이 사랑할 힘을 빼앗습니다. 자아가 제 혼자 말하는 소리를 예수님이 비유로 들려주셨습니다. 루카 복음 12장 19절부터 20절입니다.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자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다음은 논쟁과 파라오입니다. 갖춰 입은 사람이 마카베오기를 들어 반박하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요?" 하다가 끝내 "우리는 당신을 모르오" 합니다. 증거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 말을 먼저 한 임금이 있습니다. 탈출기 5장 2절입니다. "그 주님이 누구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것이냐? 나는 그 주님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이스라엘을 내보내지도 않겠다." 파라오는 모세를 알아보았습니다. 열 가지 표징이 그 앞에서 일어났고 제 마술사들까지 하느님의 손가락이라 했습니다. 그런데도 인정하지 않은 까닭을 그 입이 말했습니다. 탈출기 14장 5절입니다.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가?" 제 종들을 빼앗기기 싫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의회도 같은 셈을 했습니다. 요한 복음 11장 47절부터 48절입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많은 표징을 보고도 믿지 않은 것은 제 것을 잃기 싫어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증거를 더 보여 주지 않으십니다. 루카 복음 16장 31절입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아의 고집 때문입니다. 다음은 악한 영의 증언입니다. "하까이야! 앞으로 나오너라." 예수님과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사람이 떨며 끌려 나와 사람의 것 같지 않은 소리로 말합니다. 마르코 복음 1장 24절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벗은 모른다 했고 원수는 안다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예수님이 악한 영에게 증언하게 하신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악한 영이 아는데 사람이 모른다면, 사람을 막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다른 것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영은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하고 떱니다. 그분이 오시면 제가 죽는 줄 아는 것입니다. 자아도 꼭 같이 압니다. 그분이 임금이시니 그분을 알아보는 순간 제 왕좌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파라오는 종을 놓지 않았고 의회는 성전을 놓지 않았고 갖춰 입은 사람은 제 학식을 놓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알고 떨고, 자아는 알고 버팁니다. 버티는 쪽이 더 깊은 지옥입니다. 예수님은 그 증언을 받지 않으십니다. "잠잠하여라!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 사람이 땅에 내던져졌다가 일어나니 나았습니다. 악한 영은 나갔고, 갖춰 입은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고 가 버립니다. 쫓겨난 영과 제 발로 나간 자아, 그 저녁의 두 퇴장입니다. 다음은 선택입니다. "그 갈림의 심판은 죽기 전에, 살아 있는 지금 이미 이루어집니다. 이 부름 앞에서 저마다 내리는 대답이 곧 저마다의 심판입니다." 요한 복음 12장 43절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자아가 사랑하는 것과 하느님이 주시는 것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고, 여호수아가 그 선택을 백성 앞에 놓았습니다. 여호수아기 24장 15절입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뱀을 섬길 것인지, 파라오를 섬길 것인지, 구원자를 섬길 것인지. 뱀은 내 안에서 나는 하고 말하고, 파라오는 내 종을 놓지 말라 하고, 구원자는 자신을 버리라 하십니다. 그 셋째 길의 끝을 바오로가 적었습니다. 갈라티아서 2장 20절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폐병 든 젊은이가 "그대는 믿음이 있었소" 하는 말에 낫고, 마비된 아이가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눈먼 늙은이가 봅니다. 자아를 내려놓은 자리에 들어오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여! 그대는 바깥의 원수와 싸우라고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안의 원수와 싸우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부름 앞에서 저마다 내리는 대답이 곧 저마다의 심판입니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850항은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빌려 죄의 뿌리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죄는 하느님을 경멸하기에 이르는 자기 사랑이다." 1824년부터 1858년까지 프랑스 아르스의 본당 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밤마다 사제관에서 마귀의 소란에 시달렸습니다. 벽을 두드리고 침대를 끌고 불을 지르는 그 소란을 그는 그라팽이라 불렀는데, 어느 밤 그 소리가 그를 두고 이렇게 외쳤다고 그 자신이 증언했습니다. 너 같은 사람이 땅에 셋만 있어도 내 나라는 무너진다고. 그를 비웃던 이웃 사제들보다 원수가 먼저 그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그 증언을 자랑으로 받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열여섯 시간의 고해실로 돌아갔습니다. 마귀가 아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사람들이 제 자아를 내려놓는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바깥의 원수 하나를 떠올리던 자리에서 내 안의 나는 소리 하나를 찾으십시오. 내 것을 잃기 싫어 그분을 모른다 하는 그 소리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말로 대답하십시오.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기억하십시오. 악한 영도 그리스도를 알고 떱니다. 사람이 믿지 않는 것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 것을 잃기 싫어하는 자아의 고집 때문입니다. 그 자아가 구약의 뱀이고 베드로를 사탄이라 불리게 한 것이니, 내가 싸울 원수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다음 회차 제60장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 하시다'에서는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드시어 열병으로 누운 장모를 일으키시는 장면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