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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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마리아가 요셉에게 엘리사벳의 잉태를 알리고, 당신의 잉태를 밝히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다 잠잠하여라. 너를 밝히는 일은 내게 맡겨라 세상에서 가장 큰 비밀을 품게 된 소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밀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말은 할 수 없고, 자랑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속일 수도 없습니다. 이 소녀는 어떻게 했을까요. 오늘은 진실을 말하되 다 말하지 않는 법, 그리고 자기 명예를 지키는 일을 하느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수태고지 바로 그날 저녁입니다. 방 안에는 "천사가 제 금빛 날개를 펄럭였던" 향기가 아직 감돌고, 마리아는 침상 곁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묻은 채 기도합니다. 일어선 얼굴은 "불꽃에 닿은 듯" 붉고, 입은 웃는데 눈은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도록 평범한 저녁이 이어집니다. 부싯돌로 등잔을 켜고, 꽃 핀 가지가 꽂힌 화병에 물을 더 부어 밤의 서늘함 속에 내놓고, 집을 끼고 돌아 다른 방으로 갑니다. 발토르타는 그 방을 두고 훗날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작별을 고하시는 것을 보게 될 방이라고 미리 일러 주지요. 장작 꺾는 소리, 화덕 불꽃이 열린 문으로 비쳐 들어 벽에 만드는 그림자의 춤. 저녁상은 거무스름한 빵을 얇게 저며 따뜻한 우유에 적신 것과 기름 두른 채소와 사과 하나, 책의 표현대로 "아이 같은 저녁 끼니"입니다. 하느님을 잉태한 첫 저녁에 하느님께서는 설거지를 면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14장에서 본 나자렛 학교의 세 과목, 침묵과 가정과 노동이 잉태의 첫날 저녁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먹으며 벽들에게 비밀을 나누어 주듯 미소 짓다가, 이따금 거의 서글퍼집니다. 왜 서글픈지는 잠시 뒤에 밝혀집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요셉이 들어옵니다. 서른다섯쯤, 짙은 밤색 머리와 수염, 거의 검은빛에 가까운 다정한 눈. 두건이 달린 둥근 양털 겉옷을 벗는데, 비바람을 막는 산사람의 겉옷입니다. 그리고 달걀 두 개와 포도 한 송이를 내놓습니다. "카나에서 이걸 가져다주었소. 달걀은 백인대장이 준 거요. 그의 수레를 손봐 준 값으로 말이오." 나자렛의 목수가 로마 백인대장의 수레를 고치고, 포도는 카나에서 왔습니다. 복음서의 무대가 요셉의 하루 속에 벌써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아직 저녁을 못 먹은 요셉에게 마리아가 우유와 올리브와 치즈를 내오고, 요셉은 마리아 몫인 달걀을 마다합니다. 식사 뒤 요셉은 부엌에 남아 그릇을 갈무리하고 불을 돋웁니다. 두 사람은 하루를 나눕니다. 요셉의 조카들 이야기, 마리아의 수틀과 꽃, 백인대장이 주기로 한 로마의 꽃 모종. "이제 달이 좋을 때 당신을 위해 심어 주겠소." 달의 때를 보아 심고 가지 치는 옛 농사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책은 수틀 위로 숙인 금빛 머리를 바라보는 요셉의 눈길을 이렇게 적습니다. "만일 한 천사가 한 여인을 신랑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이렇게 바라볼 것이다." 이제 오늘의 대화입니다. 마리아가 수틀을 무릎에 내려놓고 말합니다. "우리 친척 엘리사벳, 즈카르야의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지난 장에서 천사가 표징으로 준 바로 그 소식이지요. 루카 복음 1장 36절,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요셉이 눈을 크게 뜹니다. "그 연세에요?" "주님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세요." 2장에서 요아킴이 붙들었고 16장에서 가브리엘이 선언한 그 문장이 이번에는 마리아 자신의 입에서 나옵니다. 요셉이 묻습니다. "어떻게 아셨소? 확실한 소식이오?" 그리고 마리아의 대답이 이 장의 보석입니다. "한 사자가 왔어요. 거짓말할 수 없는 분이지요." 한 글자도 거짓이 없습니다. 사자가 왔고, 그 사자는 거짓말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사자가 천사이고 그 천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알렸는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진실이면서 자랑이 아니고, 침묵이면서 속임이 아닌 말. 잠언 11장 13절이 그런 사람을 그립니다. "중상하고 다니는 자는 비밀을 누설하지만 마음이 신실한 이는 말을 덮어 둔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가 시중을 들고 싶다고 청하고, 요셉의 대답은 이 부부의 문법 그대로입니다. "마리아, 그대는 나의 아내요 나는 그대의 종이오.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잘하는 일이오." 다만 며칠만 기다리면 파스카 전 예루살렘에 연장을 사러 가는 길에 거기까지 바래다주겠다고, 그 이상은 서둘러 돌아와야 하니 못 간다고 합니다. 루카 복음 1장 39절의 뒷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왜 서둘렀는지, 왜 소녀가 그 먼 길을 갔는지가 이 저녁의 대화로 설명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요셉을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서 고통을 멀리 물리쳐 주시기를. 저는 늘 이것을 그분께 기도해요." 그에게 다가올 고통의 원인을 자기 안에 품은 채 드리는 축복입니다. 요셉이 나가자 마리아는 "아픔인 듯한 한숨"을 쉽니다. 저녁 내내 서글펐던 까닭이지요. 받아쓰기에서 성모님께서 그 속을 열어 보이십니다. 황홀경이 그치고 땅의 감각으로 돌아왔을 때 장미 가시처럼 마음을 찌른 첫 생각이 요셉이었다고요. 그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보다 더 든든하게, 내 동정성은 요셉에게 맡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어머니가 되었다고 말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선물을 두고 자랑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숨겨서 속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기도 중에 성령께서 이르셨습니다. "잠잠하여라. 신랑 앞에서 너를 밝히는 일은 내게 맡겨라." 언제, 어떻게. 성모님께서는 묻지 않으셨습니다. "꽃이 저를 실어 가는 물결에 자신을 맡기듯" 맡기셨다고요. 그리고 신뢰의 정의를 주십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전부이니,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 당신 자신을 주신다." 그러나 그 순종에는 값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여러 달 동안, 나는 첫 상처가 내 마음을 피 흘리게 하는 것을 느꼈다. 공동 속량자라는 내 운명의 첫 고통이었다." 우리는 성모님의 첫 고통을 루카 2장 35절 시메온의 칼로 알고 있는데, 책은 그보다 앞선 첫 상처를 이 저녁에 둡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의 침묵이라는 상처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우리를 위한 규범이 나옵니다. "너희의 좋은 이름과 너희의 정든 관계를 지키는 일을 하느님께 맡겨 드려라. 거룩한 삶으로 하느님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얻어라. 그러고 나서 마음 놓고 나아가라." 이 침묵이 무엇을 낳았는지 복음서가 증언합니다. 마태오 복음 1장 19절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침묵의 값이 이토록 컸습니다. 시편 37편 6절이 그 약속의 문장입니다. "빛처럼 네 정의를 떠오르게 하시며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성경은 이 맡김의 예형들을 갖고 있습니다. 정결 때문에 무고당한 수산나는 변명 대신 기도했습니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다니엘을 보내 진실을 밝히셨지요. 창세기의 요셉은 오해로 감옥에 갇혔지만 "주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시면서 그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결국 그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형들의 완성은 아드님이십니다. 이사야서 53장 7절,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베드로 1서 2장 23절은 그 침묵의 속을 풀어 줍니다.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훗날 빌라도 앞에서 아드님께서 하실 그 맡김의 침묵을, 어머니가 먼저 나자렛의 저녁상에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루카 복음 2장 19절이 서명처럼 붙는 마리아의 습관,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는 그 간직함이 오늘 저녁 태어났습니다. 교회는 이 지혜를 계명으로 새겨 두었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488항입니다. "진실을 전달할 권리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2489항은 타인의 선익과 안전, 사생활의 존중,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알려져서는 안 될 것에 대해 침묵하거나 신중한 표현을 쓸 수 있으며, 알 권리가 없는 이에게 진실을 밝힐 의무는 없다고 가르칩니다. 거짓말은 안 되지만 모든 것을 말할 의무도 없다는 것, 마리아의 "한 사자가 왔어요"가 바로 그 여덟째 계명의 모범입니다. 이 침묵을 극한에서 산 성인이 있습니다. 1726년 이탈리아 남부 무로에서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성 제라르도 마젤라입니다. 구속주회 평수사가 된 그는 1754년, 한 처녀에게 아이의 아버지로 지목당하는 무고를 당합니다. 회칙이 변명을 금한다는 이유로 그는 한마디도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았고, 영성체까지 금지되는 벌을 몇 달 동안 잠자코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창설자 성 알폰소가 왜 변명하지 않느냐고 묻자 회칙이 그것을 금한다고만 답했다지요. 마침내 고발자가 거짓을 자백해 진실이 밝혀졌고, 그는 이듬해인 1755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1904년 비오 10세 교황이 그를 시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인이 오늘날 누구의 주보성인인지 아십니까. 임산부와 어머니들의 주보성인입니다. 어머니 됨을 두고 무고당했던 사람이 어머니들의 수호자가 된 것입니다. 나자렛의 저녁에 어머니 됨을 두고 침묵해야 했던 분과 같은 자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잠잠하여라, 너를 밝히는 일은 내게 맡겨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당신 자신을 주십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19장,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길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