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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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ly Playing: 제41장. 성전에서 학자들과 벌이신 예수님의 문답; '어찌하여'에서 '다 이유가 있겠지'로.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41장. 성전에서 학자들과 벌이신 예수님의 문답; '어찌하여'에서 '다 이유가 있겠지'로 사흘 동안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성전에서 아들을 찾아 외칩니다.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이 장 끝에서 이르십니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 다시는 그 말을 묻지 않으셨다고.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사람은 그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뜻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입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 오늘은 그 한마디의 뿌리를 성전의 소년과 어머니를 따라가며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1장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장 전체입니다. 소년 예수가 예루살렘의 낮은 담에 기대어 금빛 지붕의 성전을 뚫어지게 보다가 돌아서서 성 밖의 헐벗은 작은 언덕을 바라보며 진지해집니다. 이어 성전 회랑에서 가말리엘과 눈이 거의 먼 스승 힐렐이 다니엘의 일흔 주간을 들어 메시아가 이미 나셨어야 한다 하고 샴마이가 아니라고 맞서는데, 무리 속에서 소년이 외칩니다. "가말리엘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별과 베들레헴과 라헬의 울음을 대며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시며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힐렐이 누가 가르쳤느냐 묻자 "하느님의 영이십니다" 하고, 소년은 두 스승 사이 높은 걸상에 앉아 이사야를 읽고, 죽음을 모를 참성소를 말하고, 영으로 다시 태어날 이들을 말합니다. 샴마이 편은 "이 나자렛 사람은 사탄이다!" 하고 힐렐은 "나와 함께 있어라" 하지만, 소년은 두 팔을 벌리고 답합니다. "주님, 여기 당신의 뜻을 이루러 온 당신의 종이 있나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머니의 사흘을 풀이하십니다. 핵심은 하나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람처럼 그 길을 알 수 없으나 다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것은 은총입니다. 학자들은 이유를 대라 했고 어머니는 이유를 모른 채 간직했습니다. 담에 기댄 소년부터 봅니다. 성전을 보던 눈이 성 밖의 헐벗은 언덕에서 서글퍼집니다. 그 언덕의 이유를 히브리서가 압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아들은 이유를 알고 어머니는 아직 모릅니다. 훗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 복음 13장 7절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다 이유가 있겠지는 지금 모르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리라는 믿음입니다. 다음은 회랑의 논쟁입니다. 샴마이가 헤로데의 학살을 들어 메시아도 죽었으리라 하자 소년은 라헬로 답합니다. 창세기 35장 18절입니다. "라헬은 마침내 죽게 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아기의 이름을 벤 오니라 하였다. 그러나 아기의 아버지는 벤야민이라 불렀다." 어머니는 고통의 아들이라 부르고 아버지는 오른편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같은 아기, 같은 밤, 두 이름입니다. 라헬의 눈에는 이유 없는 고통이었고 아버지의 눈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라헬의 다른 아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집트로 팔려 간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입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지던 날에는 몰랐던 이유를 스무 해 뒤에 알았습니다. 26회차의 두 요셉이 오늘 다시 만납니다. 다음은 두루마리와 요나입니다. 소년은 이사야 40장의 위로를 읽고, 참 백성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을 지나 저편 기슭에 놓였듯 영으로 다시 태어날 줄 아는 이들뿐이라 합니다. 스무 해 뒤 밤에 찾아온 한 율법 학자에게 하신 말씀이 그 풀이입니다. 요한 복음 3장 8절입니다. "바람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히브리어로 영과 바람은 같은 낱말 루아흐입니다. 바람의 길을 모르듯 영의 길을 모르고, 영의 길을 모르듯 하느님의 일을 모릅니다. 코헬렛 11장 5절입니다. "바람의 길을 네가 알 수 없고 임산부의 배 속에 든 몸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듯 그렇게 모든 것을 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너는 알 수 없다."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바람에 실려 가는 것, 그것이 영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다음은 소년의 기도입니다. 두 팔을 벌려 아룁니다. "주님, 여기 당신의 뜻을 이루러 온 당신의 종이 있나이다." 시편이 이 말을 미리 적었습니다. 시편 40편 8절부터 9절입니다. "보소서, 제가 왔습니다. 두루마리에 저에 대하여 쓰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즐겨 이룹니다." 어머니가 열두 해 전에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 1장 38절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들도 스무 해 뒤 같은 말로 잔을 받으십니다. 마태오 복음 26장 39절입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이제 어머니의 사흘입니다.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나무라지 않고 소란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며 밤길을 되짚어 도성을 뒤지셨다고. 아가 3장 2절부터 4절입니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예수님은 이 사흘을 "앞날의 또 다른 애타는 사흘의 상징"이라 하십니다. 호세아 6장 2절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이유 없어 보이는 사흘마다 사흘째가 있습니다. 마지막은 어찌하여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걸상에서 들어 내려 외칩니다. 루카 복음 2장 48절부터 49절입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을 아시는 분께는 '어찌하여'를 묻지 않는 법이다." 욥이 평생 그 말을 묻다가 마지막에 답했습니다. 욥기 42장 3절입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루카는 이어 적었습니다. 루카 복음 2장 50절부터 51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알아듣지 못한 채 간직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겠지입니다. 바오로가 그 이유의 이름을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은총이고, 그래서 이렇게 명합니다. 테살로니카 1서 5장 18절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어머니는 그 뒤로 카나에서도 십자가 아래에서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다시는 '내 아들아,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하고 묻지 않으시리라. 배워라, 오 오만한 사람들아."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12항입니다. "당신의 수난 전에는 성경이 모호하였으므로 이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수난 후에는 성경이 열렸다." 어머니가 알아듣지 못하신 것은 수난 전이었기 때문이고, 간직하신 것이 지혜였습니다. 313항은 로마서 8장 28절을 성인들의 증언과 함께 싣고, 314항은 하느님 섭리의 길이 우리에게 자주 감추어져 있으며 마지막 날 얼굴을 마주 볼 때에야 그 길을 온전히 알게 되리라고 가르칩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는 그날까지의 말입니다. 1975년 8월, 사이공 대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된 지 넉 달 만에 응우옌 반 투안 주교가 체포되어 열세 해를 감옥에서 보냈고 그중 아홉 해는 독방이었습니다. 마흔여덟에 교구와 학교와 신학생을 다 빼앗기고 그는 밤마다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그때 마음 안에서 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뒷날 증언했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을 택하여라. 1980년 하노이 근처 감옥에서 쓴 유언에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값진 체험으로 여긴다고, 모든 것이 은총이기 때문이라고. 풀려나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오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하고 묻고 싶은 일 하나를 골라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다 이유가 있겠지요. 알아듣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바람과 같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하느님의 뜻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어찌하여를 다 이유가 있겠지로 바꾸십시오. 모든 것은 은총입니다. 다음 회차 제42장 '요셉의 죽음'에서는 예수님이 고통받는 이와 죽어 가는 이의 평화이심을, 나자렛에서 요셉이 마리아와 예수님 곁에서 눈을 감는 장면으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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