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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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카나의 혼인 잔치; 성모님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으로 받아들였을까? "저더러 어쩌라는 말씀입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말 성경의 이 대답을 들으면 누구나 거절로 듣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한 분만 그 말을 듣고 곧바로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저분이 시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하셨습니다. 다들 아니오로 들은 말을 혼자 예로 들으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오늘 그 열쇠가 번역자들이 빠뜨린 한 낱말 '더'에 있다 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와 당신 사이에 무엇이 더 남아 있습니까? 아직 저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그 말씀을 긍정으로 알아들으신 까닭을 네 단계로 따라갑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52장으로 들어갑니다. 카나의 아침부터 봅니다. 마리아가 먼저 오시어 걸상을 바로 놓으시고 꽃장식을 매만지시고 등잔에 기름이 있는지 살피십니다. 등잔의 기름까지 살피시는 분이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을 먼저 알아채실 분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마을에서 악기 소리를 들으시고 이르십니다. "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러 가자." 뒷날 예수님은 이 말에 겉보기보다 높은 뜻을 담았다 하십니다. "기적을 행하는 나의 활동을 여시는 분이 되고 인류의 첫 은인이 되시는 기쁨"이었다고. 다음은 잔칫상의 한마디입니다. "아들아, 저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여인이시여, 저와 당신 사이에 무엇이 더 남아 있습니까?" 두 분만 아는 기쁜 비밀의 미소가 오갑니다. 어머니가 이 말을 어떻게 긍정으로 들으셨는지 첫째 단계는 말씨입니다. "저와 당신 사이에 무엇이"는 히브리 사람들의 익은 말씨로, 거절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묻는 말입니다. 사렙타의 과부가 엘리야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17장 18절입니다. "어르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한테 오셔서, 제 죄를 기억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그 말 뒤에 엘리야는 아이를 살렸습니다. 둘째 단계가 '더'입니다. 예수님이 풀이하십니다. "나의 사명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어머니께 매인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이었다. 나를 낳으신 분을 향한 인륜의 매듭은 풀렸다. 그러나 끊어진 것이 아니다. 더 높은 다른 매듭으로 바뀌어 모두 내 영 안으로 옮겨 갔다." 그러니 이 물음은 끊어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무엇이 남았느냐는 물음입니다. “아직 저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예수님이 손수 적으십니다. "어머니, 제가 오로지 나자렛 마리아의 예수이기만 했을 동안 어머니께서는 저의 전부이셨고 제 영 안에서는 지금도 저의 전부이십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메시아가 된 때부터 저는 제 아버지의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사명이 끝나면 저는 다시 온전히 어머니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전부였습니다. 손님들은 혈육의 매듭이 풀렸다는 앞 절반을 들었고, 어머니는 영의 매듭 안에서 여전히 전부라는 뒤 절반을 들으셨습니다. 전부인 분의 청이 거절될 수는 없습니다. 셋째 단계가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그분의 때는 십자가와 영광의 때이고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때를 누가 열었는지 아시는 분입니다. 열두 해 전 나자렛에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하신 그 승낙이 아들의 시간을 땅에서 시작시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뒷날 이렇게 이르십니다. "나는 내 어머니께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며 그분의 기도로 은총의 때를 앞당기기까지 한다." 때가 아니라는 말은 때를 앞당긴다는 말의 앞부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이라는 낱말을 들으셨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때는 올 때이고, 올 때는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넷째 단계는 미소입니다. 발토르타는 적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미소 짓는 아드님의 눈에서 허락을 읽으셨다. 그 허락은 감추어져 있었다." 부르심 앞에서는 혈육의 정도 뒤로 물러선다는 성소의 가르침이 다른 이들에게는 첫 기적의 허락을 가리고 있었다고. 같은 문장이 손님들에게는 가르침이었고 어머니께는 승낙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들으실 수 있었던 까닭을 루카가 미리 적어 두었습니다. 루카 복음 2장 50절부터 51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열두 살 성전에서 "제 아버지의 집"이라는 말도 거절처럼 들렸으나 어머니는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셨고, 41회차에서 보았듯 그날 이후 다시는 어찌하여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의 말이 아버지의 뜻을 가리킬 때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더 큰 승낙이라는 것을 열여덟 해 동안 배우신 분입니다. 엘리사벳이 그 믿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루카 복음 1장 45절입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믿음은 들리지 않는 예를 듣는 귀입니다. 다음은 "무엇이든 그분께서 이르시는 대로"입니다. 요한 복음 2장 5절입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저분이 시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긍정으로 들으신 분이 곧바로 하신 일이 하인들을 아들께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적의 순서를 보십시오. 어머니가 아들께 아뢰고, 아들이 어머니의 눈에 허락을 주시고,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고, 하인들이 물을 긷고, 그다음에야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총의 중개입니다. 요한 복음 2장 9절입니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일어나 한마디 하십니다. "마리아께 감사드리십시오." 중개자는 한 분이라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티모테오 1서 2장 5절대로 중개자는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한 분이 당신 중개를 어떻게 펴셨는지 보십시오. 요한 복음 20장 21절부터 23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듯 아들이 교회를 보내셨고, 죄의 용서를 보내진 이들의 손에 두셨습니다. 보내신 분의 중개를 받아들이면서 보내진 이의 중개를 거부하면 보내심 자체를 헛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 10장 16절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 다마스쿠스 길에서 그리스도를 직접 뵌 사울도 성안의 하나니아스를 거쳐 눈을 뜨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순서를 건너뛰어 혼자 살과 피를 먹고 마시려 하거나 혼자 죄를 용서받으려 하는 것은 카나의 과방장이 되는 길입니다. 하느님은 혼자 오신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오셨고 교회를 통해 오십니다. 마지막은 백합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가 당신을 베들레헴과 카나와 골고타에서 세 번 낳으셨다 하시고, 하나 됨을 이렇게 그리십니다. "나는 그분 안에 있었고 그분은 내 둘레에 계셨으니, 향기롭고 생명이 가득한 암술을 둘러싼 백합 꽃잎과 같았다." 암술은 꽃잎 없이 향기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드러나는 권능 안에서도 그분께서 나와 하나 되시는 것이 마땅하였다"고 하십니다. 미사 때마다 성작에 포도주와 물을 섞는 손이 카나를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의 첫 기적은 마리아 때문에 일어났다. 마리아께서 기적의 열쇠이심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마리아께 감사드려라. 너희가 기적의 주인을 얻은 것도, 나의 은총 그 가운데에서 용서의 은총을 받는 것도 그분 덕분이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970항은 마리아의 어머니다운 역할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를 가리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힘을 드러내며,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는 피조물이 그 하나의 원천에 참여하는 여러 협력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불러일으킨다고 가르칩니다. 2618항은 카나에서 어머니의 청이 교회와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표징이라고 가르칩니다. 2025년 10월 19일, 교황 레오 14세가 나폴리의 변호사 바르톨로 롱고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1872년 폼페이 골짜기의 황폐한 들에서 절망 속에 걷다가 마음에 들은 한 말이 묵주기도를 퍼뜨리면 구원받으리라였습니다. 그는 그 들판에 성모님의 성당을 세웠고, 어머니를 거쳐 아들께 간 사람이 백오십 해 동안 수백만을 같은 길로 데려갔습니다. 카나의 말 그대로입니다. 마리아께 감사드리십시오. 오늘 아니오로 들리는 하느님의 말씀 하나를 골라 어머니께 가져가십시오. "어머니, 이 말씀을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그리고 청이 있거든 어머니께 먼저 아뢰고, 용서와 성체는 보내진 이의 손에서 받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성모님이 거절처럼 들리는 말씀을 긍정으로 들으신 것은 '더'라는 낱말 안에 남은 더 높은 매듭을 들으셨고, 아직이라는 낱말 안에 앞당겨질 때를 들으셨으며, 열여덟 해 동안 아들의 거절이 아버지의 더 큰 승낙임을 배우셨기 때문입니다. 그 귀가 기적의 열쇠이니, 마리아께 감사드리십시오. 다음 회차 제53장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시다'에서는 술 달린 겉옷을 입고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이 채찍을 드시는 장면과, 그 채찍이 왜 모세의 지팡이인지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