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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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장. 요셉의 죽음. 예수님은 고통받는 이와 죽어가는 이의 평화이시다 그리스도를 낳아라; 죽음은 상 받으러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 사람이 죽어갑니다. 왼쪽 손은 아내가 잡고 있고, 오른쪽 손은 아들이 잡고 시편을 읊어 줍니다. 그 아내가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그 아들이 하느님이십니다. 요셉은 왜 이렇게 죽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평생 맡은 사명이 바로 이 두 사람을 지키고 기르는 일이었고, 그 일을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죽는 순간 그의 양손에 잡힌 것이 그가 평생 맺은 열매였습니다. 죽음의 모습은 무엇을 이루려 살았는가가 정합니다. 오늘은 빈손으로 가지 않는 죽음을 배웁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2장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장 전체입니다. 두 벽이 바위인 작업장에서 어른이 되신 예수님이 홀로 대패질을 하며 남쪽 문 쪽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어머니가 달려 들어옵니다. "오! 예수야! 어서 오너라, 어서! 위독하시다!" 예수님은 "어머니!" 한마디로 앞치마를 벗고 옆방으로 가십니다. 낮은 잠자리에 요셉이 죽어 가고, 마리아는 왼쪽에서 손을 잡고 땀과 눈물을 닦아 드리고, 예수님은 오른쪽에서 손을 잡고 몸을 굽혀 시편을 읊어 주십니다. 시편 사이사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이 시간을 보셨고, 이 시간을 위하여 애쓰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상급을 아버지께 주시리이다." "영원하신 분께서 아버지를 그분 그리스도의, 또 그분 궤의 수호자로 삼으셨습니다." "평화로이 가십시오, 아버지. 홀로 되실 어머니는 도움 없이 남겨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님 품에 안겨 아무 몸부림 없이 숨을 거두고, 방은 "엄숙한 평화"로 가득합니다. 이어 예수님이 죽어 가는 이들에게 이르십니다. "내가 요셉에게 한 그 말을 너희도 들을 자격을 갖추도록 애써라." 핵심은 하나입니다. 요셉의 평화는 우연이 아니라 이루어 낸 사명의 열매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자녀를 낳고 기르며 산 사람은 죽을 때 빈손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그 어머니를 곁에 둡니다. 작업장의 예수님부터 봅니다. 아버지가 죽어 가는데 아들이 대패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요셉이 평생 기른 열매입니다. 37회차에서 요셉이 톱을 쥐여 주던 소년이 이제 홀로 작업장을 지킵니다. 요셉의 사명은 처음부터 이것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1장 21절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마태오 복음 1장 24절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명령받은 대로 맞아들이고, 이름 짓고, 기른 것이 그의 평생이었습니다. 이제 그 열매가 다 자라 문 곁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침상의 두 손입니다. 왼쪽에 마리아, 오른쪽에 예수님. 요셉은 야곱처럼 자식들의 손에 둘러싸여 갑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오는 이에게 한 가지를 명하셨습니다. 탈출기 23장 15절입니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러 갈 때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창세기 32장 14절입니다.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낙타와 소와 나귀까지 오백 마리가 넘는 떼를 앞세워 보내고 뒤따라갔습니다. 창세기 33장 10절입니다. "이 선물을 제 손에서 받아 주십시오. 정녕 제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듯 주인의 얼굴을 뵙게 되었고." 형의 얼굴이 하느님의 얼굴로 바뀌는 것은 선물을 앞세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요셉이 하느님 앞으로 앞세워 보낸 떼는 오백 마리 가축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궤였습니다. 다음은 첫 시편입니다. 시편 16편 8절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제 앞에 모시어 당신께서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요셉의 오른쪽에 앉으신 분이 이 시편을 읊으십니다. 평생 오른쪽에 모시고 기른 분이 임종의 오른쪽에 계십니다. 32회차의 시메온이 요셉의 막힌 입을 대신합니다. 루카 복음 2장 29절부터 30절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사명을 마친 이의 평화가 이것입니다. 다음은 상급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시간을 위하여 애쓰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상급을 아버지께 주시리이다." 예수님이 훗날 하실 비유의 말입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21절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은 빈손으로 왔고, 요셉은 두 배로 불려 왔습니다. 바오로도 그렇게 죽었습니다. 티모테오 2서 4장 7절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묵시록 14장 13절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한 일이 따라갑니다. 그 반대편에 어리석은 부자가 있습니다. 루카 복음 12장 20절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창고를 위해 산 사람은 빈손으로 가고, 하느님의 자녀를 위해 산 사람은 그 자녀의 손을 잡고 갑니다. 다음은 궤의 수호자입니다. "영원하신 분께서 아버지를 그분 그리스도의, 또 그분 궤의 수호자로 삼으셨습니다." 요셉이 지킨 것은 제 집이 아니라 하느님이 맡기신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산 사람의 열매는 남습니다. 요한 복음 15장 16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요셉이 맺은 열매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온 교회의 어머니와 온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셉에게 심부름을 맡기십니다. "저보다 앞서가시어, 성조들께 구원이 세상에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제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요셉을 안아 당신께로 이끄시니 그가 아무 몸부림 없이 숨을 거둡니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그 그림입니다. 요한 복음 17장 4절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요한 복음 19장 30절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다 이루신 분의 곁에 누가 있었습니까. 십자가 아래에 어머니가 있었고, 어머니 곁에 사랑하시는 제자, 곧 교회가 있었고, 그분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교회라는 자녀, 예수님은 그 셋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기에 죽으실 때 그 셋을 곁에 두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0절입니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죽어 가는 이가 후손을 봅니다. 요셉의 죽음은 그 죽음의 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르십니다. "죽음은 내 품 안에서 일어나면 그 쓴맛을 모두 잃는다." 그리고 자격을 얻지 못한 이에게도 문을 여십니다. "그런데도 감히 나를 곁으로 불러라. 내가 가리라." 십자가 옆의 강도가 그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루카 복음 23장 43절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022항은 사람이 죽는 바로 그 순간 개별 심판에서 자기 삶을 그리스도 앞에 놓고 영원한 응보를 받는다고 가르치며 십자가의 성 요한의 한 문장으로 맺습니다. 인생의 저녁에 우리는 사랑에 대하여 심판받을 것이다. 1020항은 교회가 임종하는 이에게 바치는 기도를 싣습니다. 그리스도인 영혼이여 이 세상을 떠나가소서, 시온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와 요셉과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살게 되소서. 교회는 죽는 모든 이를 요셉이 죽은 그 방으로 보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22년 이 신심이 요셉의 나자렛 임종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1888년 1월 31일 새벽, 토리노의 돈 보스코가 일흔둘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거리의 소년들을 거두어 살았고, 그가 세운 오라토리오에서 삼천 명이 넘는 성소가 나왔습니다. 임종 자리에 모인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그가 남긴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서로 형제처럼 사랑하여라.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라. 내 아이들에게 전하여라. 내가 천국에서 그들 모두를 기다린다고." 빈손이 아니라 수천 명의 아이들을 앞세우고 간 죽음이었고, 요셉이 성조들에게 앞서 간 그 심부름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오늘 두 줄을 적어 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이루려 사는가. 내가 죽는 날 내 손을 잡아 줄, 내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낳고 기르고 돌본 사람은 누구인가. 둘째 줄이 비어 있다면 오늘 한 사람을 시작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죽음의 모습은 무엇을 이루려 살았는가가 정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자녀를 낳고 기른 사람은 빈손으로 가지 않고, 요셉처럼 그리스도와 그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 이루어졌다" 하며 갑니다. 다음 회차 제43장 '숨은 생활을 맺으며'에서는 성모님이 손수 나자렛의 서른 해를 되짚으시며 요셉의 영적 여정과 숨은 생활의 뜻을 밝히시는 말씀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