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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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ly Playing: 제64장. 왜 어린이는 쉽게 믿을까? ; 카파르나움에서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시다. 하.사.시.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64장. 카파르나움에서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시다 왜 어린이는 쉽게 믿을까? 베드로의 집 뒤채, 맨 앞줄에 값진 옷의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 다섯이 섰는데 예수님은 아이들을 둘레에 두시고 한 아이를 무릎에 기대게 하신 채 말씀하십니다. "그들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입니다. 곧 사랑할 줄 알고 믿을 줄 압니다. 믿을 줄 알고 바랄 줄 압니다. 그들처럼 되십시오." 왜 어린이는 쉽게 믿을까요. 믿어도, 바라도, 사랑해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들꽃을 꺾어 그냥 내밉니다. 어른은 다릅니다. 가진 것이 있으니 사랑하려 할 때도 모자란 것부터 먼저 보입니다. 그날 하루에 그 둘이 다 있었습니다. 빈 그물을 보고 안타까워한 베드로, 지붕을 뚫은 네 사람, 다리를 바라다 서운해한 병자, 그리고 제 권위를 지키느라 수군거린 다섯. 오늘은 잃을 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믿음 앞에서 어떻게 갈리는지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64장으로 들어갑니다. 빈 그물의 베드로부터 봅니다. 간밤 고기잡이가 헛되이 끝나고 그물을 깁던 베드로가 안타까워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가엾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어떻게 주느냐 하는 거야. 내가 고기라도 잘 잡았으면! 가장 자잘한 물고기는 내가 요리해서 그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을 텐데." 사랑하려는데 모자란 것부터 보이는 어른의 눈입니다. 빵이 모자랐던 날 어른들도 그랬습니다. 요한 복음 6장 7절과 9절입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려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필립보는 모자란 돈을 셈했고 안드레아는 모자란 빵을 셈했는데, 셈하지 않고 제 것을 다 내놓은 것은 아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르십니다. "네가 애썼으나 보람이 없었던 것을 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도 너의 사랑은 남는다. 하느님의 눈에 살아 있고, 살아 움직이고, 거룩하다." 베드로는 모자란 것을 보았고 그분은 남는 것을 보셨습니다. 다음은 나리꽃의 정원입니다. 예수님이 아가를 여십니다. 아가 6장 3절입니다. "그이는 나리꽃 사이에서 양을 친답니다." "마몬이 군림하는 이 땅에도 아버지의 연인은 아직 정원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관능과 탐욕과 교만의 얼룩이 없습니다. 이들입니다. 이들이 나의 나리꽃입니다." 얼룩이 없다는 것은 아직 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관능도 탐욕도 교만도 무언가를 쥐고 지키는 데서 생깁니다. 그래서 어린이의 지혜는 사랑할 줄 알고 믿을 줄 알고 바랄 줄 아는 것인데, 셋 다 쥔 손으로는 못 하는 일입니다. 마태오 복음 18장 3절부터 4절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이 순진해진다는 말이 아니라 욕구에 의해 부족한 것을 보는 높은 자리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바라보는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마태오 복음 5장 3절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성전에서도 그랬습니다. 마태오 복음 21장 15절입니다. "성전에서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불쾌해하며." 어른들은 지킬 것이 있어 불쾌했고 아이들은 잃을 것이 없어 외쳤습니다. 다음은 지붕을 뚫은 네 사람입니다. 마르코 복음 2장 3절부터 4절입니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남의 지붕을 뜯는 사람들, 체면을 셈하지 않는 사람들, 이름도 남기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고 적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믿음이 어린이의 믿음입니다. 데려다 놓는 것으로 만족한 믿음입니다. 과부의 두 렙톤과 같습니다. 루카 복음 21장 4절입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다 넣습니다. 그런데 들것 위의 사람은 달랐습니다. "아들아, 네 죄가 다 용서받았다" 하시자 그는 "몸이 낫기를 바랐던 터라 어쩌면 조금 서운한 모양"입니다. 그에게는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리입니다.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받은 것을 모자라다 여깁니다. 네 사람은 받을 것이 없어 만족했고 그는 받을 것이 있어 서운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일어나라.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십니다. 용서가 먼저인 까닭도 여기 있습니다. 잃을 것 없는 자리로 먼저 내려보내시고 그다음에 다리를 주십니다. 다음은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다섯입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수군거립니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예수님이 되물으십니다. "어느 것이 더 큰 일인지는 대답할 줄 모르오." 그들이 대답하지 못한 것은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분께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다면 저희의 자리가 무엇이 됩니까. 그들에게는 잃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요한 복음 5장 44절입니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믿지 못하는 까닭이 적혀 있습니다. 지켜야 할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도 그랬습니다. 마르코 복음 10장 22절입니다.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치에 초대받고도 밭과 겨릿소와 혼인을 핑계 댄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마태오 복음 13장 22절입니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숨이고, 쥔 것이 그 숨을 막습니다. 젊은이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발에 입 맞추는데 "앙심을 품은 다섯은 우쭐대며 말뚝처럼 뻣뻣하게 가 버립니다." 말뚝은 쥔 것을 놓지 못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뼈만 남은 젖먹이를 안은 어머니였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이 아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을 보아서, 또 당신 어머니를 보아서!" 잃을 것이라고는 다 잃어 가는 아기 하나뿐인 여인이고, 예수님은 그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십니다. 마지막은 바오로의 셈법입니다. 가진 것이 가장 많았던 사람이 뒷날 어린이의 자리로 내려간 셈을 적었습니다. 필리피서 3장 8절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잃은 것을 쓰레기로 여기는 순간 그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때부터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데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그 길로 갑니다. 다음 회차에서 그는 밤새 못 잡은 빈 그물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것입니다. 모자란 것을 보던 눈이 남는 것을 보는 눈으로 바뀌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너의 사랑은 남는다. 하느님의 눈에 살아 있고, 살아 움직이고, 거룩하다." "그들처럼 되십시오. 소박하고, 순수하고, 사랑이 넘치고, 진실하고, 믿는 이가 되십시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526항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가 되는 것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작아져야 한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의 아홉 살 목동 프란치스코 마르토는 성모님을 뵙고도 그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양을 누이와 사촌에게 맡기고 바위 뒤에 숨어 묵주기도를 바쳤고, 제 점심을 양치기 아이들과 양에게 주었으며, 마을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라고 조롱해도 "저는 숨은 예수님을 위로하고 싶어요" 하고만 답했습니다. 1919년 열 살에 독감으로 죽었고 2017년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습니다. 들꽃을 꺾어 주는 손으로 성모님께 제 점심과 제 놀이와 제 목숨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의 집 뒤채에서 예수님이 무릎에 기대게 하신 그 아이입니다. 오늘 믿기 어렵거든 무엇을 잃을까 봐 그런지 먼저 보십시오. 그리고 들꽃 하나를 꺾어 주는 아이처럼, 셈하지 않고 가진 것 하나를 내밀어 보십시오. 그 손이 믿는 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린이가 쉽게 믿는 것은 믿어도 바라도 사랑해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가진 것을 먼저 생각하고 어른은 없는 것을 먼저 봅니다. 가진 것을 먼저 생각하는 이는 준 대상을 찾는데, 그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어린이처럼 되라 하십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십시오. 다음 회차 제65장 '기적의 고기잡이와 첫 네 사도를 뽑으시다'에서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의 배에서 그물이 터지도록 잡히는 고기잡이와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는 부르심을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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