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Curated by: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87 videos)


Currently Playing: 제57장.예수님은 왜 가끔 우리를 메마르게 하시는가?; 제자들과 함께 나자렛에서.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57장. 유다 타대오와 다른 여섯 제자와 함께 나자렛에 예수님은 왜 가끔 우리를 메마르게 하시는가? 나자렛 집의 저녁 식탁에서 베드로가 성모님께 눈짓을 보냅니다. 스승님이 벳사이다로 돌아가 부르실 때까지 기다리라 하셨는데, 떨어져 있기 싫으니 어머니가 한마디 거들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함께 있고 싶은 제자를 왜 떼어 놓으십니까. 어머니가 답하십니다. "이 기다림이 곧바로 함께하는 것보다 자네들에게 더 이로울 걸세." 예수님도 뒷날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16장 7절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느껴지던 것이 사라지는 때, 영적 메마름입니다. 성경에는 하느님이 당신 종들을 일부러 메마르게 하신 일이 여러 번 있고 그때마다 까닭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은 그 까닭들을 하나씩 찾습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57장으로 들어갑니다. 문턱의 어머니부터 봅니다. "내 아들아!" "어머니!" 성전의 채찍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의 목에 눈물이 걸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것이 기쁘다. 나는 너를 탓하지 않는다. 너를 붙들지 않는다. 나는 너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기쁘다. 그런데 내가, 내 아들아, 내가 너를 낳았단다!" 카나의 어머니와 나자렛의 어머니를 견주어 보십시오. 카나에서는 아직 아무 명령도 내려지지 않은 때였기에 어머니가 아들께 청하실 수 있었고 아들은 그 청에 때를 앞당기셨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채찍은 아버지께서 이미 명하신 일이었고, 이미 내려진 명령 앞에서 어머니는 아들께 반기를 들지 않으십니다. 탓하지도 붙들지도 않으십니다. 루카 복음 2장 51절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다음은 베드로의 잔꾀와 어머니의 거절입니다. 어머니는 카나에서 하신 말을 그대로 하십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하게." 그런데 카나에서는 그 말에서 포도주가 나왔고 나자렛에서는 기다림이 나옵니다. 그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이미 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어머니도 청하시고, 내려진 뒤에는 어머니도 반기를 들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받은 것은 거절이 아니라 광야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종을 일부러 메마르게 하신 첫 자리가 광야였고, 까닭이 적혀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입니다.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임금 히즈키야에게도 그리하셨습니다. 역대기 하권 32장 31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를 시험하시고 그의 마음을 다 알아보시려고 그가 하는 대로 두셨다." 붙들던 손을 잠시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은총이 느껴질 때는 내가 따르는지 끌려가는지 알 수 없고, 손을 놓으실 때에야 내 의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떼어 놓으십니다. 다음은 메마르게 되었던 종들입니다. 요셉은 꿈을 풀어 주고도 감옥에 잊혔습니다. 창세기 40장 23절입니다. "헌작 시종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를 잊어버린 것이다." 두 해였고, 시편이 그 뜻을 적었습니다. 시편 105편 18절부터 19절입니다. "사람들이 족쇄를 그의 발에 채우고 쇠사슬을 그의 목에 감았다. 마침내 그의 말이 들어맞아 주님 말씀이 그를 증명해 주시니." 잊힌 두 해가 온 이집트를 살릴 사람을 단련했습니다. 욥은 사방 어디에서도 하느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욥 23장 8절과 10절입니다. "동녘으로 가도 그분께서는 계시지 않고 서녘으로 가도 그분을 찾아낼 수가 없구려. 그분께서는 내 길을 알고 계시니 나를 시금해 보시면 내가 순금으로 나오련마는." 안 계신 것 같은 그때에도 그분은 내 길을 아시고, 그 메마름이 순금을 가려내는 불입니다. 엘리야는 카르멜 산의 불을 본 이튿날 싸리나무 아래서 죽기를 청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19장 4절입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느님은 느낌 대신 빵 한 덩이와 사십 일의 걸음을 주셨습니다. 베타니아의 세 남매는 사랑받는 이들인데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한 복음 11장 5절부터 6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의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사랑하셨다와 머무르셨다가 한 문장에 있고 그 까닭도 적혀 있습니다. 요한 복음 11장 15절입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마음이 기쁘다." 가나안 여인에게는 침묵으로 그리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5장 23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여인이 물러서지 않자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하셨습니다. 마음을 알아보시려고, 순금을 가려내시려고, 단련하시려고, 믿게 하시려고, 믿음을 크게 하시려고. 메마름의 까닭이 다섯 번 적혔고 벌이라고 적힌 곳은 없습니다. 이사야가 그 모든 메마름의 길이를 쟀습니다. 이사야 54장 7절부터 8절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잠시와 영원, 감춘 얼굴과 자애입니다. 다음은 십자가의 외침입니다. 메마름의 끝까지 가신 분이 예수님 자신입니다. 마태오 복음 27장 46절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 왜 버림받았다고 외치셔야 했습니까. 우리의 메마름을 당신 것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버림받았다고 느끼면서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십자가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그분과 같은 자리에 선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어떻게 계셨습니까. 요한 복음 19장 25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울부짖었다가 아니라 서 있었다입니다. 이미 내려진 명령 앞에서 반기를 들지 않으신 어머니가 끝까지 서 계셨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믿는 것이 참 믿음이고, 그런 상태에서도 서 있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다음은 제비처럼 빠른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이 오래갈까요?" 예수님은 미소만 지으시고 어머니가 그 미소를 읽어 주십니다. "자네가 순종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호수 위를 나는 제비처럼 빠를 걸세." 베드로의 메마름이 어떻게 끝났는지 복음서의 마지막 장이 보여 줍니다. 요한 복음 21장 3절부터 4절입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 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밤 끝에 물가에 서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성모님께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은 땅처럼 가꾸어야 하고, 가시덤불이 있는 데서 장미가 나옵니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731항은 기도의 메마름을 두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는 고뇌와 무덤 속에서까지 예수님과 함께 충실히 머무르는 순수한 믿음의 때이다." 1946년 가을, 서른여섯의 마더 데레사가 캘커타의 가난한 이들에게 가라는 부르심을 받은 뒤 평생 다시는 그 위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2007년에 공개된 편지들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1979년 한 사제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침묵과 공허가 너무 커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적었고, 다른 편지에서는 제 영혼 안에 하느님이 저를 원하지 않으시는 듯한,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쉰 해였습니다. 그런데 그 쉰 해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미사에 갔고 죽어 가는 이의 몸을 씻었고 수백 개의 집을 세웠습니다. 느껴지지 않는 분을 믿었고 느껴지지 않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오늘 하느님이 느껴지지 않거든 느낌을 구하지 말고 두 가지를 하십시오. "믿습니다" 하고 소리 내어 말하고, 눈앞의 사람에게 사랑의 일 하나를 하십시오. 그물로 돌아간 베드로가 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메마르게 하시는 것은 벌이 아닙니다. 마음을 알아보시고, 순금을 가려내시고, 단련하시고, 믿게 하시려는 것이며, 은총이 느껴질 때는 알 수 없는 것, 곧 그 은총을 따르려는 내 의지를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믿는 것이 참 믿음이고 실천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다음 회차 제58장 '영혼에 옮겨 놓은 고기잡이 가르침 뒤에 카파르나움에서 눈먼 이를 낫게 하시다'에서는 그물로 돌아간 어부들을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다시 만나시어 고기잡이를 영혼의 일로 옮겨 가르치시는 장면을 읽겠습니다.


Tracks in this Play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