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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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안나가 노래로 어머니가 됨을 알리다 그 태 안에 마리아의 티 없는 영혼이 있다 봄꽃 가지가 물동이마다 꽂혀 있는 나자렛의 집에서, 백발의 여인이 작은 베틀에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같은 노래를 세 번, 네 번 되풀이하며 혼자 미소 짓습니다. 그 노래를 듣고 텃밭에서 달려온 남편이 묻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노래요? 그러자 아내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흐느끼며 외칩니다. "저는 어머니가 되었어요, 내 사랑하는 이여!" 예수님의 외할머니가 임신을 알리는 순간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장으로 들어갑니다. 때는 니산달, 편도나무 꽃이 피는 봄입니다. 지난 장의 초막절이 시월이었으니 반년쯤 지났습니다. 그런데 안나의 이야기에 축제가 하나 더 나옵니다. 빛의 축제입니다. 유다인들은 키슬레우 달, 우리 달력으로 십이월에 성전을 다시 봉헌한 일을 기념하며 여드레 동안 등불을 켰는데, 이것이 빛의 축제, 곧 하누카입니다. 요한 복음 10장 22절에도 나오지요.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이 십이월이라는 시점을 꼭 기억해 두십시오. 이야기 끝에서 교회 달력과 만나는 놀라운 열쇠가 됩니다. 이제 안나의 노래를 들어 보십시오. "전능하신 주님께 영광, 다윗의 자손들을 사랑하신 그분께. 그분의 지극한 은총이 하늘에서 나를 찾아오셨네. 늙은 나무가 새 가지를 내었으니, 나는 복되어라. 빛의 축제 때 희망이 씨를 뿌렸고, 이제 니산달의 향기 속에서 그 싹트는 것을 보네." 노래는 이어집니다. "그 가지에 장미 한 송이, 더없이 단 사과 하나 있네. 빛나는 별 하나, 죄 없는 어린것 하나 깃들었네." 그리고 베틀을 향해 외치지요. "날아라, 북이여. 아기의 천을 짜도록 실을 단단히 죄어라." 지금 짜고 있는 고운 아마포가 시월에 예루살렘에서 산 그 아마포입니다. 은총을 받기도 전에 아기 천부터 준비하며 실을 자아 온 것입니다. 희망이란 이런 것이지요. 안나는 남편에게 그날 성전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습니다. 기도의 마지막 날, 여인으로서 하느님의 집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둠이 내리는 성소에서 빛 하나가 떠나와 자기에게 날아왔다는 것입니다. 달처럼 희면서도 온갖 보석의 빛을 다 품은 불꽃 하나가 하늘의 목소리로 노래했다지요. "네가 청한 것이 너에게 이루어지리라." 그래서 노래에 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름 짓기가 시작됩니다. 요아킴이 말합니다. 사내아이면 사무엘이라 부릅시다. 끝까지 한나의 이야기를 사는 부부답지요. 여자아이면 별이라 부릅시다. 그러다 마침내 그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면 마리아라 부릅시다. 우리 바다의 별이요, 진주요, 행복이지요." 그리고 안나는 이미 예언자처럼 말합니다. "이 아이는 하느님의 딸이에요." 부부는 서원을 다시 확인합니다. 삼 년 동안 아이를 기뻐한 뒤에 주님께 드리기로, 아이와 함께 자신들도 제물이 되기로 말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놀라움을 짚겠습니다. 안나는 왜 하필 노래로 알렸을까요. 안나 자신이 답합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언제나 노래에 실어 왔지요. 희망과 기쁨과 슬픔의 가장 참된 외침을요." 사무엘기 상권 2장 1절에서 옛 한나도 아들을 얻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그리고 훗날 루카 복음 1장에서 이 집안의 딸이 부를 노래를 우리는 압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마니피캇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마리아의 노래가 한나의 노래를 빼닮았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습니다. 그런데 발토르타의 이 장면은 그 사이의 잃어버린 다리를 보여 줍니다. 한나의 노래가 안나의 입에서 되살아나고, 안나의 노래를 들으며 자란 딸이 마니피캇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니피캇의 첫 학교는 외갓집이었습니다. 두 번째 놀라움은 달력입니다. 안나는 지난 십이월 끝 무렵부터 새 생명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마리아의 잉태를 기념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언제입니까. 십이월 팔일입니다. 그리고 꼭 아홉 달 뒤인 구월 팔일이 성모 탄생 축일이지요. 십이월의 잉태와 구월의 탄생이라는 교회 전례력의 시간표를, 발토르타의 이야기가 저절로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삼 년 뒤 봉헌하겠다는 서원은 십일월 이십일일 자헌 기념일의 전승과 만납니다. 병상의 여인이 전례력을 펴 놓고 계산하며 썼을까요. 이야기의 시간이 교회의 시간과 이렇게 맞물리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신빙성입니다. 환시가 끝나면 예수님의 받아쓰기가 이어지는데, 여기에 오늘의 핵심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서 7장 25절을 인용하시며 지혜께서 친히 내려오셨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수한 발산"이신 분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구절의 뒷부분을 우리 성경에서 마저 읽으면 이렇습니다.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티가 기어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토르타가 인용한 바로 그 구절 안에, 오늘의 제목인 티 없음의 성경적 뿌리가 이미 들어 있는 것입니다. 받아쓰기는 이어서 마리아 영혼의 창조를 노래합니다. 시간이 있기도 전부터 성부께서 그리워하신 영혼, 천사들이 환호한 생명의 불꽃, 그리고 선언이 나옵니다. "그분은 피조물 가운데 홀로 티 없는 영을 지니셨다." 그렇다면 티 없음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받아쓰기가 문답으로 정리해 줍니다. "영에게 빛과 앎을 주는 것은 무엇이냐? 은총이다. 은총을 앗아 가는 것은 무엇이냐? 원죄와 대죄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997항의 정의가 이것과 정확히 포개집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이다. 곧 은총은 우리를 성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 준다." 은총이 하느님의 생명이라면, 죄는 그 생명의 상실이고, 티 없음이란 그 생명을 한순간도 잃지 않음입니다. 그래서 받아쓰기는 말합니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기억을, 그분의 가까이 계심을" 잃으신 적이 없기에 "잉태되신 그 순간부터 사랑하셨다"고 말입니다. 티 없음의 반대말은 결국 하느님을 잊어버림인 것입니다. 받아쓰기에는 예언도 하나 숨어 있습니다. 낡은 성전의 그늘에서 새롭고 참된 성전이 온다고 하는데, 요한 복음 2장 21절이 그 답을 줍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마리아를 포도나무로, 그 열매를 압착기에 눌려 으깨질 포도로 그리는 대목은 집회서 24장 17절에서 지혜가 "내가 친절을 포도 순처럼 틔우니"라고 노래한 그대로이며, 으깨진 포도가 잔에 담기는 성체성사까지 내다보는 그림입니다. 끝으로 받아쓰기는 초인을 말하는 시대를 꾸짖습니다. 초인을 향해 간다면서 실은 초악마를 향해 갈 뿐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받아 적힌 때가 1944년, 니체의 초인 사상을 뒤틀어 쓴 이념이 유럽을 불태우던 바로 그 전쟁의 한복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이 문장의 서슬이 새삼 푸르게 느껴집니다. 바다의 별이라는 이름에는 교회의 큰 스승이 화답합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바다의 별로 풀이한 것은 이미 고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고, 팔 세기부터 교회는 바다의 별이신 마리아라는 찬가를 불러 왔습니다. 그 전통의 절정이 1090년에 태어나 1153년에 선종한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입니다. 1174년에 시성되고 훗날 교회학자로 선포된 이 성인은 성모 찬미 강론에서 이렇게 권합니다.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거든 별을 바라보라, 마리아를 불러라. 요아킴이 성전의 별빛을 보고 딸에게 붙인 그 이름을, 교회는 천 년 넘게 뱃사람의 별로 불러 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마리아께서 잉태 순간부터 지니신 그 은총을, 우리는 세례 때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도 은총의 지위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살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죄로 그것을 잃을 수 있는데, 교회는 고해성사로 그 은총의 생명을 다시 회복시켜 준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오늘의 실천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잃었거든 미루지 말고 고해소에서 되찾는 것입니다. 티 없음은 마리아만의 특권으로 끝나지 않고, 은총 안에 머물라는 우리 모두의 초대입니다. 그 은총을 입은 사람의 노래를 마리아께서 대신 불러 주십니다. 루카 복음 1장 49절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기억하십시오. 그 태 안에 마리아의 티 없는 영혼이 있습니다. 피조물 가운데 홀로 티 없는 영을 지니신 분, 그 티 없음은 곧 하느님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유지하게 만드는 힘이 지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5장, 마리아의 탄생, 그리고 성부의 영원한 생각 안에 있는 동정성의 신비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