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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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ly Playing: 제28장. 베들레헴에 다다르다; 손님 접대 하다가 천사의 접대로.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28장. 베들레헴에 다다르다 (루카 2,4-5) 손님 접대가 천사의 접대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마구간이었을까요, 동굴이었을까요. 성경은 "여관에는 자리가 없었다"고만 말합니다. 오늘 발토르타는 그 밤을 한 걸음씩 따라가며 답을 보여 주고, 그 답은 2세기 교부들의 증언과 베들레헴 성지의 지하 동굴과 맞아떨어집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28장으로 들어갑니다. 한겨울 살을 에는 아침, 큰길은 호적 등록 인파로 붐빕니다. 나자렛에서 닷새, 백오십 킬로미터를 걸어온 길입니다. 잿빛 나귀 위의 마리아는 두툼한 겉옷에 감싸였고, 요셉은 고삐를 잡고 걸으며 세 번 묻습니다. "지쳤소?" 그리고 마리아의 발이 찬 것을 느끼자 제 어깨의 덮개를 벗어 무릎까지 덮어 줍니다. 루카 복음 2장 4절과 5절이 이 길의 이름을 줍니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다윗 고을. 사무엘기 상권 16장에서 사무엘이 이사이의 일곱 아들을 다 지나 보내고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는 말에 목동을 불러다 기름을 부은 그 마을입니다. 목동 임금이 나온 마을에 목자 임금이 태어나러 오는 것이지요. 미카서 5장 3절이 그 임금을 이렇게 예고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리고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빵의 집입니다. 훗날 "나는 생명의 빵이다" 하실 분이 빵의 집에서 태어나 먹이통에 뉘게 되니, 이름부터 성체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룻기의 무대도 이 마을이었지요.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맞을 때 성문의 원로들이 빌어 준 축복이 룻기 4장 11절입니다. "그대가 에프라타에서 번성하고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비오." 룻의 증손자가 다윗이고, 그 다윗의 자손이 오늘 이 성문으로 들어옵니다. 길에서 목자를 만납니다. 요셉이 청하자 목자는 젖이 불은 양의 젖을 짜 사발에 담아 마리아에게 건네고, 여관의 위치와 여관이 차면 산속 마구간을 찾으라는 안내까지 해 줍니다. "축축하고 춥고 문도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몸 숨길 곳은 되지요." 이 목자들이 누구인지 성경에 단서가 있습니다. 창세기 35장 21절에서 야곱은 라헬을 베들레헴 길가에 묻고 "믹달 에데르 건너편에 천막을 쳤다"고 하는데, 믹달 에데르는 양 떼의 탑이라는 뜻입니다. 미카서 4장 8절이 그 탑을 향해 외칩니다. "너 가축 떼의 탑아 딸 시온의 언덕아 이전의 통치권이 딸 예루살렘의 왕권이 너에게 오리라, 돌아오리라." 유다 전승은 이 베들레헴 들판의 양들이 예루살렘 성전 제사에 쓰일 어린양이었다고 전합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어린양이, 제물이 될 어린양을 치는 목자들 곁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오늘 만난 이 목자가 다음 장에서 천사의 소식을 들을 그 목자들의 하나일 것입니다. 벼랑 마루를 넘자 골짜기에 베들레헴이 나타납니다. "자, 다윗의 땅에 다다랐소, 마리아." 마리아가 요셉의 손을 붙잡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때가 온 것 같아요." 그러면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을 말합니다. "제 심장이 쿵쿵 세게 뛰며 저에게 이렇게 말해요. '그분께서 태어나신다! 그분께서 태어나신다!' 제 아기가 제 심장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엄마, 하느님의 입맞춤을 엄마에게 드리러 여기 제가 와요.'" 이사야서 9장 5절의 첫 줄이 이 심장 박동 안에서 울립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문마다 닫힙니다. 여관 안뜰의 회랑까지 한데서 자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요셉은 여관 주인에게, 나그네들에게 사정합니다. 저들은 성한 남자들이고 여기 아기를 낳을 때가 된 여인이 있으니 가엾이 여겨 달라고요. 아무 소용 없습니다. 한 부유한 바리사이는 마리아가 다가서자 나병 환자를 피하듯 몸을 피하고, 요셉의 얼굴에 분노가 치밀지만 마리아가 손목에 손을 얹습니다. "고집하지 마세요. 가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실 거예요." 11장의 야훼 이레가 오늘 밤 한 번 더 발음됩니다. 이 닫힌 문들을 성경은 잊지 않았습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43절에서 임금은 왼편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날 밤 베들레헴은 그 문장의 첫 무대였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은 반대의 가능성을 일깨우지요.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밤 문을 열었더라면 천사가 아니라 하느님을 접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묵시록 3장 20절에서 그분께서는 여전히 그 밤의 자세로 계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셉이 베들레헴의 문을 두드리던 그 손이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날 문을 연 사람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이보시오! 갈릴래아 사람!" 하고 허물어진 건물 아래 굴을 일러 준 이름 없는 노인입니다. 굴입니다. 옛 건물의 주춧돌 자리를 파낸 굴에 잔해가 지붕 노릇을 하고, 거미줄 천장에 배설물 널린 바닥, 그리고 소 한 마리. 요셉이 웃습니다. "비어 있소. 소 한 마리밖에 없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야 낫소!" 이사야서 1장 3절이 여기서 성취됩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 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성탄 구유에 소와 나귀가 있는 까닭이 바로 이 구절이고, 오늘 밤 여관 문을 닫은 이스라엘과 제 주인을 맞는 소가 그 구절대로 갈립니다. 여기서 처음의 질문에 답합시다. 발토르타가 본 것은 목재 마구간이 아니라 산을 파낸 동굴이고,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노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증언했으며, 오늘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성당은 4세기부터 그 동굴 위에 서 있습니다. 마구간이냐 동굴이냐는 다른 답이 아니라 같은 답입니다. 동굴을 마구간으로 쓰던 땅이었으니까요. 이제 요셉의 밤입니다. 못에 등잔을 걸고, 여물통 위층의 마른 건초를 걷어 잠자리를 만들고, 개울에서 물을 길어 나귀에게 주고, 잔가지 단으로 바닥을 쓸고, 축축한 건초를 "봉쇄 수도자 같은 참을성으로" 불 곁에서 한 움큼씩 말리고, 제 겉옷을 문에 천막처럼 드리우고, 빵과 치즈를 내밀고, 마리아를 덮개와 겉옷으로 덮고, 자기는 걸상에 웅크려 잔가지를 하나씩 불에 던집니다. "등잔 기름을 아낄 수 있겠소." 마태오 복음 25장 4절의 슬기로운 처녀들이 등과 함께 기름을 담아 두었듯, 요셉은 신랑을 기다리는 밤의 기름을 아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은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하지만, 이 밤의 파수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킨 것은 성읍이 아니라 하느님이셨으니까요. 성모님께서는 오늘 한마디만 하십니다. "받아 적을 말은 없다. 환시가 스스로 말한다. 거기서 뿜어 나오는 사랑과 겸손과 순결의 가르침을 깨닫는 것은 너희의 몫이다. 쉬어라. 깨어 지키며 쉬어라, 내가 예수를 기다리며 깨어 지켰듯이." 마르코 복음 13장 37절의 그 명령입니다. "깨어 있어라." 교회는 해마다 대림 시기에 옛 이스라엘의 메시아 기다림을 다시 살게 하며 그 깨어 있음을 가르친다고 가톨릭교회교리서 524항이 설명합니다. 대림이란 요셉의 밤을 사는 것입니다. 이 밤을 온 마을이 함께 재연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멕시코의 라스 포사다스, 여관들이라는 뜻의 성탄 구일 기도입니다. 16세기 말 아우구스티노회 선교사들이 시작했다고 전해지는 이 관습에서는 12월 16일부터 아흐레 동안 저녁마다 마리아와 요셉으로 분장한 이들이 촛불 행렬을 이끌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노래로 잠자리를 청하고, 집 안 사람들은 노래로 거절하다가 마지막 집에서 문을 엽니다. 사백 년 넘게 온 마을이 해마다 그 밤에 문을 열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문 하나입니다. 오늘 내 문을 두드리는 사람, 시간을 청하는 사람, 자리를 청하는 사람에게 문을 여십시오. 그 나그네가 누구인지 마태오 25장이 말해 줍니다. 기억하십시오. 소도 제 임자를 알았습니다. 문을 연 사람은 노인 하나뿐이었고, 그 문 뒤에서 하느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29장, 예수님의 탄생, 한밤의 침묵 속에 빛이 동굴을 왕궁으로 바꾸는 밤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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