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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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ly Playing: 제32장. 예수님의 성전 봉헌. 시메온의 덕과 안나의 예언 (루카 2,22-38); 누가 메시아를 알아보는가? 나.계.복. 성경공부, 전삼용 요셉 신부

제32장. 예수님의 성전 봉헌. 시메온의 덕과 안나의 예언 (루카 2,22-38) 누가 메시아를 알아보는가? 그날 성전에는 사제들이 있었습니다. 예식을 집전한 사제가 아기를 두 팔로 들어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누구인지 알아본 사람은 사제가 아니라 지팡이에 몸을 기댄 평신도 노인과 여든네 살의 과부였습니다. 왜였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그 까닭을 두 가지 가르침으로 풀어 주십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2장으로 들어갑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아홉 킬로미터, 헐벗은 겨울 들판을 지나 두 사람이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마리아는 흰옷에 옅은 하늘빛 겉옷과 흰 너울, 요셉은 온통 밝은 밤색입니다. 성전 회랑에는 "훗날 예수님께서 엄하게 채찍질하여 쫓아내실 장사꾼들"이 있고, 요셉이 거기서 흰 새끼 비둘기 두 마리를 삽니다. 루카 복음 2장 22절과 23절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 율법이 탈출기 13장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그리고 민수기 18장 16절은 그 맏아들을 "은 다섯 세켈"로 되사라고 정했습니다. 책에서 마리아가 사제에게 드린 "동전 한 줌"이 그 다섯 세켈입니다. 여기 역설이 있습니다. 맏아들은 본디 하느님의 것이라 값을 치러 되사는 것인데, 오늘 되사지는 아기가 하느님 자신이십니다. 하느님을 하느님께 되사는 것입니다. 25장에서 예고한 대조도 오늘 이루어집니다. 엘리사벳은 어린양을 바쳤지만 참어린양의 어머니는 레위기 12장 8절의 가난한 이의 제물,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칩니다. 사제가 마리아에게 물을 뿌리고,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성소를 향해 들어 올립니다. 예식이 끝나고 사제는 물러갑니다.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때 여든을 넘긴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사람들을 헤치고 옵니다. 발토르타는 놀랍니다. 시메온이 사제인 줄 알았는데 옷차림이 평범한 신자였다고요. 루카도 그를 사제라 부르지 않습니다. 2장 25절부터 27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세 절에 성령이 세 번입니다. 머물러 계셨고, 알려 주셨고, 이끄셨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대로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니, 그날 성전에서 참된 자녀는 사제복이 아니라 이 노인이었습니다. 시메온이 아기를 받아 입 맞추고, 아기는 젖먹이답게 그 흰 수염을 붙잡으려 두 손을 뻗습니다. 그리고 노래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이사야서 49장 6절의 종의 노래가 여기서 아기에게 붙습니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9장에서 보았듯 교회는 이 노래를 날마다 끝기도로 바칩니다. 그러고는 마리아에게 칼을 예고합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쓰러지게 하고 일어나게 하는 돌은 이사야서 8장 14절,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리고 그 칼이 무엇인지 히브리서 4장 12절이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마음의 생각이 드러난다는 시메온의 말과 같은 문장이지요. 어머니를 꿰찌를 칼은 아드님, 곧 말씀 자신이십니다. 책은 그 예고에 마리아의 미소가 창백함 속에 스러졌다고, 그리고 산헤드린 의원들은 노인이 노망났다고 비웃었다고 적습니다. 그때 안나가 옵니다. 루카 2장 36절과 37절입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6장에서 우리는 이 안나가 어린 마리아의 스승이었음을 보았지요. 아세르 지파, 야곱이 "아세르는 양식이 넉넉하여 임금에게 진미를 올리리라" 했고 모세가 "발을 기름에 담그리라" 했던 기름의 지파에서 기름부음받은 이를 알아보는 여인이 나왔습니다. 여든넷은 일곱의 열두 배, 과부의 단식과 기도는 유딧기의 그 과부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안나가 마리아에게 건네는 말이 이 장의 보석입니다. "당신은 유딧과 야엘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왜 하필 이 둘입니까. 성경에서 여인 가운데 복되다는 말을 들은 여인이 딱 둘이기 때문입니다. 판관기 5장 24절, "야엘은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어라." 유딧기 13장 18절, "그대는 이 세상 모든 여인 가운데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은 이요." 21장에서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라는 인사는 바로 이 두 문장의 계승이었습니다. 야엘은 말뚝으로, 유딧은 칼로 적장의 머리를 쳤고, 창세기 3장 15절의 뱀의 머리를 짓밟을 여인의 예형이 되었지요. 안나는 마리아를 그 계보의 정점에 세우고 이렇게 위로합니다. 구원자를 주신 분께서 당신의 눈물을 위로할 천사를 보내실 권능이 없겠느냐고요. 예수님의 두 가르침입니다. 첫째, 진리는 "예식에 잠겨 있으나 영이 딴 데 가 있는 사제에게가 아니라, 한 평범한 신자에게" 드러났습니다. 사제의 옷 한 벌로는 안 되고 그 옷이 덮은 영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요. 성령께서는 쌓인 공로가 아니라 "선한 의지"를 보시고 부어 주신다 하시는데, 지난 장 천사의 노래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본디 선한 뜻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 선한 의지는 기도로 드러나되 겉치레 신심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밤과 낮의 차이보다도, 겉치레 신심과 기도의 차이가 더 크다." 이사야서 29장 13절의 경고 그대로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시메온은 한평생 기다리며 한 번도 "바라고 기도하기를 이어 가 봐야 헛되다"고 말하지 않았기에 보았습니다. 둘째, 안나의 위로를 1944년의 전쟁에 적용하십니다. 홍수 뒤 하느님께서 창세기 8장 21절에서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하신 약속을 지키셨는데,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마다 다시는 전쟁하지 않겠다 하고는 더 끔찍한 전쟁을 벌였다고요. 그런데도 신자들의 무리가 힘 있는 믿음으로 부르면 하느님께서 한 번 더 도우시리라고, 너희는 너무 적은 수이니 십자가에 결합되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20장 성벽의 틈이 여기서 다시 울립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529항은 이 봉헌이 예수님을 주님께 속한 맏아들로 보여 주며, 시메온과 안나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온 기다림이 구원자를 만나러 왔고, 칼의 예언이 십자가의 완전한 봉헌을 미리 알린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이 만남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로 지킵니다. 동방 교회가 4세기부터 만남의 축일이라 불렀고, 이방인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라는 노래대로 촛불을 축복해 행렬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7년부터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삼아 시메온과 안나처럼 성전을 떠나지 않는 이들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노년이 하느님을 알아보는 자리라는 것을 산 성녀가 있습니다. 1839년 프랑스 브르타뉴의 겨울, 마흔일곱의 가난한 여인 잔 주강은 거리의 눈먼 노파를 제 집으로 업어 올라가 제 잠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다락에서 잤습니다. 그 한 노파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의 시작이었고, 그는 2009년 시성되었습니다. 시메온이 아기를 품에 안았다면 잔은 노인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두 가지입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시메온의 노래를 한 번 바치십시오. 그리고 습관이 된 신심 하나를 골라, 오늘은 겉치레가 아니라 기도로 바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사제의 옷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영이 그분을 알아봅니다. 시메온은 한 번도 헛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33장,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를 재우며 부르신 자장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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