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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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ly Playing: [제17장. 하와의 불순종과 마리아의 순종; 선의 길은 악을 되짚어 걷는 것]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

제17장. 하와의 불순종과 마리아의 순종 선의 길은 악을 되짚어 걷는 것 "쓸데없는 것은 그토록 많이 물으면서 정작 제 영혼에게는 하늘의 진리를 물을 줄 모르는 너희여." 오늘 예수님의 첫마디는 힐문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을 처음 읽는 것처럼 다시 읽자고 하십니다. 오늘은 환시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과 다시 예수님, 세 겹의 받아쓰기로 이루어진 창세기 강해이며, 책이 밝히듯 사순 시기에 받아 적은 말씀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17장으로 들어갑니다. 첫 질문은 창세기 1장 28절의 한 낱말입니다.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다스리라는 이 말에 어떤 숨은 뜻이 있느냐고 물으시고, 사람의 세 층위를 답으로 주십니다. 아래층은 동물적인 층, 가운데 층은 도덕적인 층, 위층은 영적인 층.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1서 5장 23절에서 축복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그것입니다. 다스림이란 남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나라를 하나의 목적, 곧 하느님을 소유하는 목적을 향해 복종시키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제 영혼과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며 10장의 그 구절을 다시 인용하십니다. 요한 복음 14장 23절,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은총 안의 영혼은 하느님을 모시고 있으니 하늘의 일을 함께 이야기할 가장 숭고한 벗이라고요. 둘째 질문은 나무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왜 하필 그것만 금하셨느냐. 선은 이미 거저 주셨고 악은 알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답입니다. 악은 사람 이전에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천사 안에 피어오른 교만의 김 한 줄기를 그가 흩어 버리지 않고 품어 응어리지게 한 데서 악이 생겨났고, 천국에서 쫓겨난 그자가 땅을 더럽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나무는 예수님의 표현대로 은유의 나무이자 상징의 나무, 금의 순도를 재는 왕수요 저울처럼 두 자녀의 순종을 재는 시험이었습니다. 하와는 그 시험에 어떻게 응했습니까.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리고 책임 전가가 이어집니다.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부터 세 겹의 탐욕이 사람의 세 나라를 움켜쥐었다고 하시는데, 요한 1서 2장 16절이 그 이름을 대 줍니다.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 세 층위마다 폭군 하나씩입니다. 여기서 이 책의 독법 하나를 조심스럽게 짚어야 합니다. 발토르타는 사탄이 하와의 감각을 깨워 육이 먼저 깨어났다고, 곧 정욕이 그 죄의 열매였다고 그립니다. 교회의 공식 정의는 다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397항과 398항은 원죄의 뿌리를 창조주에 대한 신뢰를 잃고 그분의 계명에 불순종한 것, 하느님 없이 하느님처럼 되고자 한 교만에 둡니다. 그런데 책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성모님의 입으로 "죄의 시작은 불순종에 있었다" 하시고, 하와의 자만이 "이미 교만의 누룩"이었다고 하시니까요. 그러니 둘은 충돌이 아니라 뿌리와 열매입니다. 교리서 405항이 세례 뒤에도 남는다고 가르치는 그 욕망을, 발토르타는 첫 열매의 맛으로 그려 보인 것입니다. 이제 성모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심장은 이 한 문장입니다. "나는 그 두 죄인의 길을 거꾸로 되짚어 걸었다." 어떻게 되짚으셨습니까. 세 번의 순종으로입니다. 하느님께서 동정이기를 청하시니 순종했고, 그 동정을 사랑하는데 아내가 되기를 청하시니 순종했고, 혼인 안에서 자식 없이 살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되기를 청하시니 순종했다고요. 하와가 원한 것은 향락과 승리와 자유였고 마리아가 받아들인 것은 고통과 무화와 종살이였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예'라고 나는 말하였다. 예.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예'가 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하와의 '아니요'를 없앴다." 로마서 5장 19절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두고 세운 공식 그대로입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바오로가 두 남자로 그린 이 병행을 교부들이 두 여인으로 확장했고, 발토르타의 성모님은 그것을 일인칭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기도문 한 대목을 들어 보십시오. "예, 언제나 예, 나의 주님, 당신 빛살이 나를 어머니로 만든 그 순간부터 당신이 나를 당신께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예, 언제나 예." 수태고지의 한마디가 한평생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죄는 내 발꿈치 아래 깔려 있고, 내 순종으로 부수어졌습니다" 하시는데, 창세기 3장 15절의 성취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그리고 새 나무를 예고하십니다. "내 태에서 새 나무가 태어나리니, 그 나무는 온갖 악을 몸소 겪어 악이 무엇인지에 관한 지식의 열매를 맺고, 온갖 선의 열매도 내어 줄 것입니다." 십자가입니다. 베드로 1서 2장 24절,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낙원의 나무가 죽음을 주었다면 골고타의 나무는 생명을 주고, 묵시록 22장 2절의 생명 나무는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나무의 이야기가 십자가에서 뒤집히고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2세기부터 고백해 왔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94항입니다. "이레네오 성인의 말씀대로 '동정 마리아는 순종하시어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 그와 더불어 적지 않은 옛 교부들이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다,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묶어 놓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믿음을 통하여 풀어 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494항은 이렇게 맺습니다.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다."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가 이 매듭의 문장을 쓴 것이 서기 180년 무렵이고,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를 일치의 박사라는 칭호로 교회학자로 선포했습니다. 성모님의 "되짚어 걸었다"는 말씀은 바로 이레네오의 신학, 하와가 내려간 길을 거꾸로 올라가 매듭을 푸는 되감기의 신학입니다. 성모님의 마지막 말씀은 겸손의 정점입니다. "당신 여종을 나무가 솟아나는 흙덩이로 삼으시듯, 위로 오르게 하는 디딤돌로 삼으소서." 그리고 발토르타에게 이르시지요. "남들이 하느님께 오를 수 있도록 늘 디딤돌이 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짓밟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이 십자가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이 되짚음의 영성이 오늘날 어디에 살아 있는지 아십니까. 1700년 무렵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한 화가가 이레네오의 이 문장을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천사가 건네는 긴 리본의 매듭을 성모님께서 하나하나 풀어 주시는 그림, 매듭을 푸시는 성모입니다. 1980년대 독일에서 공부하던 아르헨티나의 젊은 사제 호르헤 베르골리오가 그 그림에 감동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했고, 그가 교황 프란치스코가 되면서 온 세계의 신자들이 풀리지 않는 삶의 매듭을 이 어머니께 맡기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2세기의 신학 한 줄이 21세기의 신심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받아쓰기는 경고입니다. 너희 가운데 아흔아홉이 루치페르의 숨결에 중독된 하와 같다고, 서로 사랑하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채우려고 살고, 하늘이 아니라 진창을 위하여 산다고요. 마태오 복음 11장 17절의 그 아이들처럼 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빈정거림과 불신 없이 빛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실천은 되짚어 걷기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께 '아니요' 하고 있던 일 하나를 골라 '예'로 바꾸어 보십시오. 그리고 성모님의 기도를 화살기도로 삼으십시오. 예, 언제나 예.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다면 그 리본을 매듭을 푸시는 어머니의 손에 올려 드리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그 '예'가 하와의 '아니요'를 없앴습니다. 하와를 통하여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이 왔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18장, 마리아가 요셉에게 엘리사벳의 잉태를 알리면서도 당신의 잉태를 밝히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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