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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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이집트로 피신하다. 예수님의 오심과 이어진 마지막 환시에 관한 가르침 (마태 2,13) 정결의 싸움에서는 달아나는 사람이 이긴다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 기도를 몸소 사신 밤이 있습니다. 헤로데가 아기를 죽이려 할 때 하느님께서는 헤로데를 치지 않으셨습니다. 아기를 달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지키는 길이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 달아나는 것이라는 사실, 오늘 그 겸손을 배웁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5장으로 들어갑니다. 밤, 요셉이 미소 지으며 자다가 한숨과 함께 흠칫 깨어납니다. 26장에서 본 네 번의 꿈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그는 등잔을 켜고 마리아의 방문을 손가락 끝으로 두드립니다. 마리아는 요람 곁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떠나야 하오. 천사가 나에게 일렀소." 마태오 복음 2장 13절과 14절입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마리아는 밀랍보다 하얘진 얼굴로 차근차근 짐을 꾸리다가, 귀가 잘근잘근 씹힌 나무 양 장난감을 발견하고 흐느끼며 입 맞추고, 빈 요람 위에서 웁니다. 요셉이 말합니다. "헤로데가 그분을 죽이려 하오. 제 인간적인 왕국 때문에, 저 더러운 짐승이 이 죄 없는 분을 두려워하는 것이오." 그리고 마리아가 자기가 짐이라며 울자 이 장의 심장을 말합니다. "예수만 지켜 드리면, 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남소. 설령 이 하늘을, 이 들판을, 또 그보다 더 정든 갈릴래아의 들판을 다시 보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모든 것을 지닐 거요. 그분을 모시고 있을 테니 말이오." 새벽, 나귀 세 마리에 궤와 목수 연장을 싣고 두 사람은 잠든 베들레헴을 빠져나갑니다. 여기서 물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왜 헤로데를 치지 않으셨습니까. 요셉은 왜 유다의 의인들을 모아 아기를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하느님의 사람들이 위험 앞에서 달아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롯에게 천사가 말했습니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그리고 12장에서 본 창세기의 요셉이 있습니다. 이집트 시위대장 포티파르의 집에서 그 아내가 날마다 젊은 종 요셉을 유혹했고,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의 옷을 붙잡았습니다. 창세기 39장 12절입니다. "요셉은 자기 옷을 그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옷을 잃고 달아났고, 그 옷이 증거가 되어 무고를 당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겉옷과 자유와 명예를 다 잃었지만 정결은 지켰고, 성경은 "주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시면서" 그를 이집트의 총리로 세우셨다고 적습니다. 옛 요셉은 옷을 두고 달아나 정결을 지켰고, 오늘 새 요셉은 집과 단골과 조국을 두고 달아나 예수님을 지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그분만 지키면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죄 앞에서 가르치는 문법입니다. 집회서 21장 2절, "뱀을 피하듯이 죄를 피하여라. 죄에 다가서면 그것이 너를 물 것이다." 잠언 4장 15절, "그런 길은 피하여 발을 들여놓지 말고 발길을 돌려 비켜 가거라." 바오로 사도도 젊은 티모테오에게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했고, 코린토 신자들에게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했습니다. 싸우라 하지 않고 피하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이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하지만 그 앞말이 "하느님께 복종하고"입니다. 마귀에게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 맞서되, 유혹의 자리 앞에서는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요한 복음 7장 1절,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8장 59절,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10장 39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마태오 12장 15절,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빵의 기적 뒤 사람들이 임금으로 삼으려 하자 요한 6장 15절대로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죽이려는 손에서도 임금 자리라는 유혹에서도 그분은 물러나셨고, 당신의 때가 오기 전에는 한 번도 맞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이집트로 실려 간 아기의 피신이 그 생애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기도로 갑니다. 마태오 6장 13절,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가톨릭교회교리서 2846항이 이 청원을 이렇게 풉니다. "그리스 용어를 한마디로 번역하기란 쉽지 않다. 이 말은 '유혹에 빠지게 허락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유혹에 쓰러지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라는 뜻이다. 우리는, 죄로 이끄는 길을 택하도록 우리를 버려두지 마시기를 하느님께 청원하는 것이다." 유혹을 이기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유혹의 길에 들어서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요셉의 피신이 바로 그 기도입니다. 그는 헤로데와 싸워 이길 힘을 청하지 않고 헤로데에게서 벗어날 길을 받았습니다. 코린토 1서 10장 13절이 그 길을 약속합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 벗어날 길, 그날 밤 그 길은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교리서 2848항은 이 청원이 "마음의 결단도 포함한다" 하며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를 인용합니다. 요셉의 결단이 그것입니다. "예수만 지켜 드리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남소." 필리피서 3장 8절,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그 청원을 명령으로 주십니다. 마태오 26장 41절,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자기 힘을 믿고 유혹과 마주 서는 것이 교만이고, 제 약함을 알고 자리를 뜨는 것이 겸손입니다. 사람이 마귀와 싸워 이기는 일은 없습니다. 달아난 사람을 하느님께서 지키실 뿐입니다. 이 피신은 새 탈출이기도 합니다. 마태오 2장 15절,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33장의 자장가에서 읽은 호세아 11장 1절이고, 창세기 46장 4절에서 야곱에게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하신 분이 이제 아기가 되어 몸소 내려가십니다. 이사야 19장 1절은 그 입성을 "주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시고 이집트로 가신다. 이집트의 우상들은 그분 앞에서 벌벌 떨고"라 예고했습니다. 달아나는 아기 앞에서 우상들이 떨었습니다. 달아남이 패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환시들의 마지막 가르침이라 하신 낱말입니다. 천사는 두 번 다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라 했고 한 번도 "네 아내를 데리고"라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오 복음이 이것을 어떻게 세 층으로 증언하는지 보십시오. 첫째 층, 잉태입니다. 1장 18절,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장 25절,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이 "까지"는 뒤의 일을 말하는 말이 아닙니다. 사무엘기 하권 6장 23절 "미칼에게는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가 죽은 뒤를 말하지 않고, 마태오 28장 20절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가 그 뒤의 떠나심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층, 어휘입니다. 1장에서 "아내로 맞아들여라" 했던 마태오가 탄생 뒤에는 2장 11절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13절과 14절과 20절과 21절 "아기와 그 어머니", 다섯 번 모두 어머니라 씁니다. 성경은 아내라는 말을 꺼리지 않습니다. 천사가 롯에게는 "그대의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했고, 사무엘기는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하며, 루카는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라 합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만 아내가 아니라 어머니입니다.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천사가 '아기와 그분의 어머니'라 말함으로써, 마리아가 나에게 참된 어머니셨으나 요셉에게 아내는 아니셨음을 너희에게 보여 준다." 셋째 층, 형제들입니다. 13장 55절의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에 마태오 스스로 답합니다. 27장 56절에서 십자가 곁의 여인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라 세고, 28장 1절에서 그를 "다른 마리아"라 부릅니다. 형제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는 성모님이 아닌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야고보와 유다는 사도로서 마태오와 한자리에 있었으니, 마리아의 증언이 거짓이었다면 곧바로 무너졌을 자리에서 이 글이 쓰인 것입니다. 교리서 500항과 510항이 이 근거로 평생 동정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마리아와 요셉의 머리 위에 빛나는 후광"이라 부르시며 "침해받지 않은 동정녀. 의롭고 정결한 남자. 그 사이에서 내가 오직 순결의 향기만을 맡으며 자란 두 송이 백합"이라 맺으십니다. 정결을 지킨 두 사람이 위험 앞에서 달아나 예수님을 지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정결은 싸움이 아니라 달아남으로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16세기 로마의 성 필립보 네리가 남긴 말이 그것입니다. "정결의 싸움에서는 달아나는 사람이 이긴다." 하느님께서는 헤로데를 치지 않으시고 아기를 달아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예수만 지키면 모든 것이 남습니다. 죄와 싸우지 말고 죄에게서 달아나는 것, 그것이 겸손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36장, 이집트의 성가정, 가정을 위한 가르침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