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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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장.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 하시다 예수님은 왜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도 고쳐 주셨을까? 열이 내리고 심장이 가라앉자 노파가 외칩니다.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아! 나았어! 아! 이제 안 죽어!" 그런데 발토르타가 한 줄을 적습니다. "주님을 향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 사위가 무안해서 "아무 말씀 안 하세요?" 하자 그제야 "미처 생각을 못 했구나. 고맙습니다" 하고, 밥상에서는 그 은인 앞에서 사위를 무식한 죄인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 나무랍니다. 예수님은 다 아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나는 고마움을 바라지 않는다. 영혼들에게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는 것으로 넉넉하다.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그들은 제 할 일을 하면 된다." 오늘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이에게도 선을 베푸는 것이 왜 하느님 자녀의 표인지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60장으로 들어갑니다. 처가의 문턱부터 봅니다. 베드로가 머뭇거리며 청합니다. 장모가 편찮으신데 직접 뵙고 낫기까지 하면 반감이 사라질 것 같다고. 며느리들이 말합니다. "뼈에서 온 병이 심장으로 가서 열을 일으키면 그 연세에는 죽는답니다. 앓는 소리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우시고, 악담을 하시고." "그분이 그대들의 어머니이신 듯이 참아 드리시오. 그러면 하느님께 상을 받을 것이오."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노파에게 사위를 먼저 들여보내시고, 베드로가 "오십시오, 스승님. 마음 바꾸시기 전에요" 합니다. 다음은 "왜 나를"입니다. "제가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리해 주겠어요? 나를 모르잖아요." 예수님이 두 까닭을 대십니다. "나에게 그것을 청한 시몬을 보아서입니다. 그리고 부인을 보아서이기도 합니다. 부인의 영혼이 빛을 보고 사랑할 시간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시몬이 어쩐 일로 나를 생각했대요?" "부인께서 여기시는 것보다 그가 나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어요, 믿어요. 죽지만 않으면 돼요!" 그 믿음으로 넉넉하다 여기시고 주름진 손을 잡으십니다. "나아라! 내가 그것을 바란다! 일어나라!" 루카 복음 4장 39절입니다.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복음서는 시중을 들었다고 적고 발토르타는 그 시중에 고마움이 없었다고 적습니다. 다음은 열 가운데 하나입니다. 텃밭에서 베드로가 "저는 무안합니다" 하자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곧바로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 이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복음서가 그 셈을 적었습니다. 루카 복음 17장 17절부터 18절입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아홉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시고도 열을 다 고치셨습니다. 그 까닭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루카 복음 6장 35절입니다.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도 인자하신 것이 아버지의 본성이고, 그 본성을 닮는 것이 자녀의 표입니다. 고마움을 받으려고 선을 베푸는 사람은 장사꾼이고, 고마움 없이도 선을 베푸는 사람이 자녀입니다. 그래서 나자렛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쫓겨나고도 아이 사라를 보아서 그 어머니를 낫게 하셨고, 아이는 라삐와 말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았다고. "그러나 괜찮다." 다음은 베드로의 "저라면"입니다. "저라면 그 여자를 다시 병들게 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엄해지십니다. "베드로야! 이것이 내가 너와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냐? 참으로 내 제자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으로 내가 늘 무엇을 말했느냐?" 59회차에서 본 자아가 여기 다시 고개를 듭니다. 스승을 위한다는 얼굴로 되갚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먼저 가졌던 예언자가 있습니다. 요나 4장 1절과 4절입니다. "요나는 이 일이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니네베가 용서받자 화를 낸 요나에게 하느님이 하신 마지막 말씀이 요나 4장 11절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왼쪽 오른쪽도 가릴 줄 모르는 사람, 고맙다는 말도 미처 생각 못 하는 노파입니다. 엘리사도 그랬습니다. 눈이 멀어 사마리아까지 끌려온 아람 군대를 임금이 "쳐 죽일까요?" 하자 엘리사가 답했습니다. 열왕기 하권 6장 22절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빵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 한 다음, 자기 주군에게 돌아가게 하십시오." 그리고 약탈자들이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2장 21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베드로가 "사람들이 스승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자 "이보다 더한 사랑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십니다. 다음은 장모의 조언입니다. 밥상에서 노파가 사위를 몰아세웁니다. 벌이도 없이 예언자의 종 노릇을 하려거든 차라리 이리로 옮겨 와 내 딸이 밥이라도 먹게 하라고, 너는 어차피 예언자도 사제도 못 되는 무식한 죄인이라고. 베드로가 "그분이 계시니 망정이지" 하고 끓어오르는데 예수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시몬아, 네 장모가 너에게 아주 좋은 조언을 했다. 너는 여기서도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네가 여기 있으면 너는 호수에 있거나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집에 있고 없고가 너에게 무슨 대수냐?" 고마워할 줄 모르는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옳으면 따르라 하십니다. 베드로 1서 5장 5절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모욕한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를 이기는 겸손이고, 그 손이 어깨에 얹히자 "스승님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합니다. 마지막은 감추어진 선입니다. 어린 야고보가 돈주머니를 들고 옵니다. "오늘도 그 사람이 저에게 말했어요. 이것을 나자렛의 라삐께 가져다드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해라." 베드로가 누구냐고 조르나 아이는 "저를 나무라셔도 쓰다듬으셔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합니다.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감추어진 악은 감추어진 채로 있고 싶어 하되 늘 그럴 수는 없다. 반면에 선은 공로가 되려고 감추어진 채로 있고 싶어 해도 언젠가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러난다. 하느님의 본성, 곧 사랑이 그분의 한 자녀 안에서 빛나는 것이다." 루카 복음 8장 17절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받는 쪽은 고마움을 몰랐고 주는 쪽은 이름을 감추었습니다. 둘 다 아버지의 장부에 적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고마움을 바라지 않는다. 영혼들에게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는 것으로 넉넉하다.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그들은 제 할 일을 하면 된다." "선은 언젠가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러난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825항은 사랑의 계명을 두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1619년 프랑스의 사제 뱅상 드 폴은 마르세유 항구에 매인 갤리선 노잡이 죄수들의 지도 사제가 되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다 죽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다가오는 사제에게 침을 뱉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떠나지 않고 상처를 싸매고 빵을 날랐으며, 그 뒤 평생 버려진 아이들과 굶주린 농민과 전쟁 난민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당신에게서 받는 빵을 용서하는 것은 오직 당신의 사랑 때문이라고. 고마움을 바라고 주면 받는 이가 모욕당하고, 고마움 없이 주면 받는 이가 사랑받습니다. 베드로의 처가 밥상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입니다. 오늘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 하나에게 되갚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선 하나를 베푸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옳은 것이 있거든 따르십시오. 그 둘이 하느님 자녀의 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도 고쳐 주신 것은 아버지께서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고, 그 본성을 닮는 것이 자녀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되갚고 싶은 마음은 자아이고, 모욕한 이의 옳은 말을 따르는 것은 겸손이며, 감추어진 선은 언젠가 드러납니다. 다음 회차 제61장 '임금이 사랑한 말의 비유를 들려주신 뒤 가난한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다'에서는 안식일 저녁 몰려든 병자들 앞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신 임금과 말의 비유를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