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Curated by: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87 videos)


Currently Playing: 제38장. 예수님의 스승이신 마리아; 지식과 지혜의 차이

제38장. 예수님과 유다와 야고보의 스승이 되신 마리아 세상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지혜를 가르친다 "저는 예수를 결코 학교에 보내지 않겠어요." 성모님이 요셉보다 먼저 입을 여시는 드문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그리하는 사람은 당신뿐일 거라는 말에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학교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고,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돈을 더 버는 법과 더 맛있는 곳과 더 높아지는 법을 압니다. 지혜는 단 하나, 사랑이 행복임을 압니다. 성경이 이 둘을 어떻게 갈라놓는지 창세기부터 바오로까지 따라가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8장으로 들어갑니다. 가을의 나자렛, 요셉의 작업장에 붙은 방에서 마리아가 양털 천을 꿰매고, 뜰에서는 예수와 사촌 유다와 야고보가 이집트 탈출 놀이를 합니다. 외바퀴 수레를 계약 궤로 떠받들고 시편을 노래하며 행진하다 예수가 말합니다. "엄마, 지나가는 계약 궤에 인사하세요." 마리아가 일어나 절합니다. 예수는 바위턱에 올라 무화과 잎사귀 서판에서 모세의 노래를 읽고 이스라엘을 축복한 뒤 풀밭에 누워 죽는 시늉을 하고, 어머니가 "일어나거라!" 소리칩니다. 저녁에 알패오 내외가 오고 요셉이 흰 새끼 양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학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알패오가 오냐오냐 키운다고 하자 요셉이 답합니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자랐고 율법을 아는 데는 참된 학자예요. 이 아이의 스승이 될 거예요." 형수가 말합니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배우지요. 집에서는 좋은 것만 배우는데." 그리고 두 아들도 맡아 달라 청합니다. 마리아가 말합니다. "아이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내려면, 그들을 알아듣고, 사랑하고, 또 사랑받아야 하지요." 이제 성경공부입니다. 첫째 사슬은 두 그루 나무, 두 학교입니다. 창세기 2장 9절입니다.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세상의 첫 학교는 그 둘째 나무 아래 열렸고 첫 교사는 뱀이었습니다. 교과는 이것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입니다.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처럼 되는 지식입니다. 하와가 본 것을 보십시오.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먹음직함, 눈에 소담스러움, 높여 줄 듯한 탐스러움. 요한이 이것을 세 마디로 정리합니다. 요한 1서 2장 16절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더 맛있는 것,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 세상 학교의 교과 세 과목이 에덴에서 이미 개설되었고, 교회는 이것을 삼구, 곧 육신과 세속과 마귀라 부릅니다. 알패오의 아내가 한 말이 그래서 정확합니다. 학교에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배웁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집에는 다른 나무가 있었습니다. 잠언 3장 18절입니다. "지혜는 붙잡는 이에게 생명의 나무, 그것을 붙드는 이들은 행복하다." 새 하와는 아들에게 뱀의 나무 대신 생명의 나무를 주었습니다. 그 아들이 광야에서 뱀을 만났을 때 세 유혹은 똑같이 빵과 높은 곳과 세상 나라였고, 아들은 집에서 배운 말로 답했습니다. 마태오 복음 4장 4절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둘째 사슬은 배우지도 않았는데입니다. 요한 복음 7장 15절입니다.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서를 잘 알지?" 원문의 '배움'은 그리스어 '그람마타', 글자 지식입니다. 예루살렘은 지식을 물었고 예수님은 지혜로 답하셨습니다. 시편 119편 99절부터 100절입니다. "제가 어떤 스승보다도 지혜로우니 당신 법을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인들보다 현명하니 당신 규정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루카가 예수님의 성장을 적을 때 고른 낱말도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루카 복음 2장 52절입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알패오가 "대체 누가 저 아이의 입에 저런 말을 얹어 주는 건가?" 하고 놀라자 요셉은 "이 세상 사람은 아무도요" 합니다. 예수님이 훗날 하신 기도가 그 답입니다. 루카 복음 10장 21절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셋째 사슬은 두 집의 초대장입니다. 잠언 9장에는 똑같은 문구로 손님을 부르는 두 여인이 있습니다. 지혜의 초대입니다. 잠언 9장 5절입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우둔함의 초대입니다. 잠언 9장 17절입니다.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다!" 어디가 더 맛있는지 아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의 밥상은 빵과 섞은 술입니다. 교부들은 이 밥상에서 성찬을 읽었습니다. 예수가 어머니를 두고 인용한 말이 바로 이 지혜의 집 문 앞의 말입니다. 잠언 8장 34절입니다. "행복하여라, 내 말을 듣는 사람! 날마다 내 집 문을 살피고 내 대문 기둥을 지키는 사람!" 성모 호칭 기도의 '지혜의 옥좌'는 그림이 아니라 이 밥상이 있는 방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당신이 밝히셨습니다. 알아듣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지식은 외우게 하지만 지혜는 사랑으로 건네집니다. 루카 복음 2장 19절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넷째 사슬은 솔로몬의 시험과 바오로의 판결입니다. 하느님이 솔로몬에게 무엇이든 청하라 하셨을 때 그는 지식의 세 과목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 상권 3장 11절입니다.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가 청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고, 하느님은 청하지 않은 부와 명예를 덤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36회차의 마태오 6장 33절이었습니다. 바오로는 판결문을 씁니다. 코린토 1서 8장 1절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코린토 1서 13장 2절입니다.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고보는 세상의 지혜에 삼구의 이름을 그대로 붙입니다. 야고보서 3장 15절입니다.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오는 지혜는 "순수하고,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지혜의 학교 첫 시간은 이렇게 열립니다. 마태오 복음 5장 3절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세상 학교의 첫 과목이 돈이라면 지혜의 첫 과목은 가난입니다. 코린토 1서 1장 24절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지혜 자체이신 분이 지혜의 옥좌에서 지혜를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의 옥좌이신 그분께서, 참된 지혜의 옥좌이신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또 하늘을 위하여 우리를 가르치셨다." "나는 스승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느님이었으나, 여느 아이처럼 배우는 제자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사탄조차 그 평범한 일상에서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지식은 뱀의 눈에 보이고 지혜는 감추어집니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723항입니다. "참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는 악한 본능을 정화하고, 무엇보다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권유한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부나 안락에 있지 않고, 인간적인 영예나 권력에도 있지 않으며, 제아무리 유용해도 과학이나 기술, 예술 등 인간 업적에도 있지 않으며, 어떤 피조물 안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모든 선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있다고 가르친다." 부와 안락과 영예와 지식, 세상 학교의 네 과목을 교리서가 한 줄로 지웁니다. 2514항은 요한의 세 욕망을 정결의 계명 첫머리에 둡니다. 1273년 12월 6일, 나폴리에서 미사를 드리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날 이후 붓을 놓았습니다. 『신학대전』을 끝내 달라는 비서 레지날도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본 것에 비하면 내가 쓴 모든 것이 지푸라기 같다고.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 지혜를 맛본 뒤에 내린 판결입니다. 그는 석 달 뒤 세상을 떠났고 『신학대전』은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오늘 저녁, 하루 동안 배운 것을 지식과 지혜 두 칸으로 나누어 적어 보십시오. 지혜 칸이 비어 있다면 성경 한 구절을 읽어 그 칸을 채우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고, 지식은 돈과 맛과 높은 자리로 가는 길을 압니다. 지혜는 단 하나, 사랑이 행복임을 압니다. 성모님이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다음 회차 제39장 '예수님의 성년례 준비와 나자렛에서의 출발'에서는 열두 살 예수님이 율법 지식을 시험받는 성년례를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에서, 지식의 시험대 위에 선 지혜를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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