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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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같은 운명으로 하나 되는 열혈당원 시몬과 유다 타대오 누가 그리스도를 만나는가? 요르단 강이 굽는 자리에 새벽부터 세 사람이 서서 남쪽과 북쪽을 살핍니다. 아버지의 강복을 받고 온 토마스, 아버지를 거스르고 온 유다 타대오, 아버지에게서 병과 치욕밖에 받지 못한 시몬. 그 아침 세 사람이 다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누가 그리스도를 만납니까. 아버지의 관계와 애정까지 내놓을 수 있게 하는 밭에 묻힌 보물이 있는데, 그 보물은 사랑하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커질수록 사람은 그리스도께 다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살아 있는 것 하나하나까지 사랑하게 할 수 있는 분이 그분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동굴에서 작은 빛을 본 사람이 그 빛을 따라가면 끝내 태양을 만나듯이. 오늘은 그 길을 성경의 이야기로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56장으로 들어갑니다. 강 굽이의 기다림부터 봅니다. 유다가 제 집안을 털어놓습니다. 아버지와 두 형이 반대하고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거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어찌하여 아버지들이 때때로 우리에게 원수가 되오?" 그런데 이제는 "마음과 생각이 나를 끄는 데로 가오. 예수께 가오" 합니다. 마음이 끄는 데로 가서 하느님을 만난 여인이 구약에 있습니다. 모압 여자 룻입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라 다그치자 그가 답합니다. 룻기 1장 16절입니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룻은 하느님을 알아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떠났고, 떠나고 보니 그 길 끝에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보아즈가 그 길의 값을 셈합니다. 룻기 2장 11절부터 12절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려고 왔으니, 그분께서 너에게 충만히 보상해 주시기를 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랐습니다. 사랑하려는 마음 하나로 아버지 집을 떠난 사람이 그리스도께 이르는 줄에 들어갔습니다. 다음은 우는 사촌입니다. "형도 왔어? 유다 형!" 두 사람이 껴안고 유다가 웁니다. "공경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겠어?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위에 하느님께서 계시니 저는 그분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답하십니다. "하느님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핏줄의 법도 거기서는 멎어. 아니, 멎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이 들어 올려져." 아버지보다 벗을 택한 왕자가 구약에 있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18장 1절과 4절입니다. "요나탄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여 그와 계약을 맺었다."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요나탄은 벗을 변호했고, 그 아버지의 창이 이번에는 아들 요나탄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20장 34절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탄을 죽이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다." 요나탄은 아버지의 상을 떠났고 그날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을 다윗이 노래했습니다. 사무엘기 하권 1장 26절입니다.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요나탄은 왕위를 잃고 다윗을 얻었습니다. 핏줄의 법을 더 높이 들어 올린 사랑이 피보다 진한 형제를 만들었고, 그 다윗의 자손이 오늘 유다의 어깨에 손을 얹으십니다. 다음은 그늘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오십시오, 그늘에서 부끄러워하는 당신 말입니다." 시몬이 발치에 엎드려 제 내력을 말합니다. 여종에게서 난 아들, 모질고 정 없는 아버지, 대물림되는 병, 산 채로 갇힌 무덤, 그리고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 "제가 아버지를 저주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에게 다른 아버지와 다른 자녀를 약속하십니다. "저 위에서 참된 아버지께서 너에게 미소 지으신다. 땅의 넓은 자리를 보아라. 저기마다 너의 자녀가 될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살고 있다. 몸으로 낳는 자녀가 아니라 영혼으로 낳는 자녀다." 무덤에서 저주를 배운 사람에게 온 세상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분 한 분만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서 11장 24절과 26절입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사람은 제 핏줄까지만 사랑하고, 하느님은 존재하는 것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그분께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 1서 4장 7절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시몬이 저주 대신 사랑을 고르는 순간, 그는 이미 하느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은 한 멍에입니다. "오너라, 자식을 얻지 못한 시몬아. 오라, 나를 사랑하여 아버지를 잃는 유다 형. 잃은 것은 달라도 잃은 처지는 같으니, 내가 두 사람을 같은 운명으로 하나 되게 한다. 나 때문에 가족을 잃고 내 안에서 가족을 되찾는 운명이다."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는데 "함께 질 멍에를 지우시는 몸짓 같기도" 합니다. 이 멍에가 밭에 묻힌 보물입니다.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입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유다는 아버지의 집을 팔았고 시몬은 저주할 권리를 팔았습니다. 둘이 산 밭은 같았고, 그 보물이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명도 하나뿐입니다. 요한 복음 13장 34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고 그 계명을 지킬 힘까지 주십니다. 로마서 5장 5절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라는 계명과 사랑할 힘을 함께 주시는 분은 그분뿐이니, 사랑에 목숨을 건 사람은 그분을 비켜 갈 길이 없습니다. 열두 명단은 네 군데에 있는데(마태 10,2-4; 마르 3,16-19; 루카 6,14-16; 사도 1,13),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 두 군데에서 "열혈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나란히 적히고, 마태오와 마르코는 "타대오"와 "열혈당원 시몬" 순서로 역시 나란히 적습니다. 네 명단 모두에서 두 사람이 붙어 있으니, 56장의 "한 멍에"가 성경 자체에서도 확인되는 셈입니다. 피보다 진한 가족이 거기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갈라놓음입니다. "너희를 하나 되게 한다. 그러나 이제 너희를 갈라놓는다." 시몬은 강가에 남아 병든 이들과 죄인들에게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알리게 하시고, 유다는 나자렛으로 보내십니다. "형이 고향에서 내 길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야. 진실로 이보다 더 무거운 사명은 없어." 작은 빛을 따라 태양을 만난 사람들이 동방에서 왔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2장 9절부터 10절입니다.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들이 집을 떠나게 한 것은 별 하나였고 그 별 끝에 말라키 3장 20절의 "의로움의 태양"이 계셨습니다. 시편 36편 10절입니다.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 사랑하려는 마음은 동굴의 작은 빛입니다. 그 빛 하나로 아버지의 집을 떠난 사람이 끝내 태양을 만나고, 태양을 만난 사람은 다시 제 고향으로 보내져 그 빛을 비춥니다. 유다가 나자렛으로 가는 까닭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 표징 아래에는 더 이상 버림받음이 없다. 내 표징 안에는 더 이상 외로움도 차별도 없다. 내 표징은 사랑의 표징이라 그 아래 오는 이에게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822항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하느님 자신 때문에 사랑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향주덕이다." 1534년 파리 대학의 야심 찬 젊은 교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룸메이트 이냐시오가 한 구절을 거듭 들려주었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한 구절이 그를 나바라의 귀족 집안과 교수 자리에서 떼어 냈고, 그는 인도와 말루쿠와 일본까지 열한 해를 걸으며 손이 지치도록 세례를 주다가 1552년 중국을 눈앞에 둔 섬에서 마흔여섯에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하나가 한 사람을 세상 끝까지 데려갔습니다. 강 굽이의 시몬에게 "땅의 넓은 자리를, 대륙을 보아라" 하신 말씀을 그가 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누가 그리스도를 만납니까. 모든 것을 내놓고라도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밭에 묻힌 보물이고, 그 보물로 모두를 사랑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그분 한 분뿐이기에, 사랑에 목숨을 건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 회차 제57장 '유다 타대오와 다른 여섯 제자와 함께 나자렛에'에서는 고향으로 보내진 유다 타대오와 함께 예수님이 나자렛의 어머니 집에 드시는 장면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