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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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 예수님의 성년례 준비와 나자렛에서의 출발 놓아줄 용기; “이 아이는 평생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열두 살 아들을 성전으로 보내며 어머니가 흐느끼십니다. "이 아이를 조금 더 떠나보낼 힘을 줄 거예요." 무엇을 아셨기에 우셨을까요. 성년이 된다는 것은 이제 사람 부모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산다는 뜻이고, 그 아버지의 뜻이 아들을 세상으로, 십자가로 데려가리라는 것을 어머니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더 붙들고 싶으셨고, 그래서 놓아주셨습니다. 오늘은 성경이 말하는 놓아줄 용기,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첫영성체와 견진이 왜 성년례인지를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9장으로 들어갑니다. 한겨울 나자렛 텃밭, 마리아가 질그릇 함지에서 양털을 루비빛으로 물들이고 동서와 함께 얼음장 같은 샘물에 헹굽니다. "이 일이 다 예수를 위한 거잖아요." 봄이 되어 열두 살 예수가 그 양털로 지은 루비빛 옷을 입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마리아가 아들의 손을 들어 요셉에게 말합니다. "우리 아들이에요. 이 아이에게 강복해 주세요, 요셉. 이 아이가 배움을 시작할 때는 예식에 따른 강복이 필요치 않았지요. 하지만 이제 성년으로 선언되기 위해 성전에 가니." 그리고 흐느끼십니다. "당신의 강복이 이 아이를 굳세게 해 주고, 저에게는 이 아이를 조금 더 떠나보낼 힘을 줄 거예요." 요셉이 답합니다. "예수는 언제나 그대의 것이오. 예식의 말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는 못할 거요. 이 아이가 이제 들어서는 어른의 삶에서도, 그대만큼 이 아이를 이끌기에 합당한 이는 없소." 마리아가 요셉의 손에 입 맞추고, 요셉이 두 팔을 뻗어 숙인 두 금빛 머리 위에 강복합니다. 마리아가 짙은 석류빛 천으로 아들을 감싸 주고, 세 사람은 사월의 들판을 지나 시편을 읊는 순례자들 속으로 떠납니다. 이제 성경공부입니다. 첫째 사슬은 요케벳의 상자입니다. 아들을 놓아준 첫 어머니는 모세의 어머니입니다. 탈출기 2장 3절입니다.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37회차에서 요셉이 약속한 역청 바른 물통이 이 상자였습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이 요케벳, 곧 '주님은 영광'입니다. 놓아준 뒤에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탈출기 2장 9절입니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놓아준 어머니가 아이를 되돌려 받고 삯까지 받아 기릅니다. 붙들었다면 아이는 나일 강에 던져졌을 것이고, 놓아주자 아이는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석류빛 천으로 아들을 감싸는 손이 요케벳이 상자에 역청을 바르던 손입니다. 둘째 사슬은 모리야로 오르는 길입니다. 아들을 놓아준 첫 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22장 2절입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 모리야가 어디입니까. 역대기 하권 3장 1절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성전이 선 산이 모리야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외아들을 데리고 모리야로 오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놓아준 아버지는 아들을 돌려받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도 그리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입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 32회차의 시메온이 예고한 칼이 오늘 어머니의 눈물에서 처음 번뜩입니다. 루카 복음 2장 35절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셋째 사슬은 두 번의 봉헌입니다. 탈출기 13장 2절입니다.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32회차의 성전 봉헌이 첫 번째였고, 오늘의 성년례가 두 번째입니다. 그때는 어머니가 아기를 바쳤고, 이제는 아들이 스스로 아버지를 부릅니다. 다음 회차에서 들을 예수님의 첫말입니다. 루카 복음 2장 49절입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성년례의 뜻이 여기 다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나가 그 본을 보였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1장 28절입니다.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놓아준 한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무엘기 상권 2장 21절입니다.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다." 놓아줌은 잃음이 아니라 곱셈입니다. 마리아 자신이 세 살에 성전에 바쳐진 아이였고, 그 부모의 놓아줌이 이 시리즈의 첫 장면들이었습니다. 넷째 사슬은 자아와 두 아들입니다. 왜 놓아주어야 합니까. 하느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사람 안에는 자아가 있고, 다스리지 않으면 짐승이 됩니다. 창세기 4장 7절입니다.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어릴 때는 부모가 아이의 머리가 되어 그 자아를 눌러 줍니다. 그러나 사춘기가 오면 아이는 부모가 제 영혼과 눈을 지은 창조주가 아님을 알고, 저도 생명을 낳을 수 있음을 압니다. 그때부터 부모는 머리가 아니고, 눌려 있던 자아가 일어나 '나는 누구인가' 하고 방황합니다. 이때 아이를 하느님께 넘겨 드리지 않으면 두 길뿐입니다. 루카 15장의 두 아들입니다. 작은아들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떠났고, 큰아들은 집에 남았으나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하고 말합니다. 하나는 저항하고 하나는 갇혔습니다. 둘 다 아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한 일을 보십시오. 붙들지 않고 몫을 나누어 주었고, 돌아올 때 아들로 맞았습니다. 바오로가 성년의 정의를 씁니다. 갈라티아서 4장 1절부터 2절입니다. "상속자는 모든 것의 주인이면서도 어린아이일 때에는 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기한까지는 후견인과 관리인 아래 있습니다." 갈라티아서 4장 6절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성년은 '아빠, 아버지'를 부르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성년례는 요르단 강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선언한 날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3장 17절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우리의 성년례는 세례와 첫영성체와 견진입니다. 어머니의 놓아줌은 카나에서 "무엇이든지 저분이 시키시는 대로 하십시오"로 이어지고 십자가 아래에서 완성됩니다. 요한 복음 19장 26절입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외아들을 놓아준 어머니가 온 교회를 아들로 돌려받았습니다. 요셉의 말이 이 장의 가르침입니다. "이 아이가 이제 들어서는 어른의 삶에서도, 그대만큼 이 아이를 이끌기에 합당한 이는 없소, 오 나의 거룩한 이여." 이끄는 것과 붙드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232항입니다. "가족의 유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인간적이고 영적인 성숙과 인간의 자율성을 향해 성장하면 할수록, 하느님에게서 오는 그의 독특한 소명도 더 분명하고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부모는 이 소명을 존중하고, 자녀들이 그 부르심에 따르는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소명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1303항은 견진성사가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 됨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여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르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견진이 곧 성년례입니다. 1836년 겨울, 충청도 솔뫼 집안의 열다섯 살 소년 김대건이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로 떠났습니다. 부모는 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길로 놓아주었고,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아들이 돌아오기 전인 1839년에 순교했습니다. 아홉 해 뒤 그 소년은 조선 최초의 사제가 되어 돌아왔고, 이듬해 스물다섯에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붙들었다면 한 집안의 아들로 남았을 아이가, 놓아주자 한 민족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한나의 말로 기도하십시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자녀가 없다면 자신을 두고 "아빠, 아버지" 하고 세 번 부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성년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날입니다. 놓아주는 부모만이 하느님께 아이를 돌려받고, 붙드는 부모는 아이를 잃습니다. 다음 회차 제40장 '성전에서 치른 예수님의 성년례 시험'에서는 모리야 산의 성전에서 열두 살 예수님이 율법 학자들 앞에 서시고 "제 아버지의 집"이라는 첫말을 하시는 장면을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