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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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동정녀의 배필로 선택된 요셉 요셉이 축복의 통로일 수 있는 이유 루카 복음 1장 27절은 단 한 줄로 지나갑니다.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그런데 이 약혼이라는 두 글자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눈 덮인 겨울 예루살렘, 마른 나뭇가지 다발 위에 홀로 핀 흰 꽃 한 송이가 오늘 그 답을 들려줍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12장으로 들어갑니다. 때는 대사제가 밝히는 대로 "성전 봉헌 축제의 마지막 날"입니다. 요한 복음 10장 22절이 전하는 그 명절이지요.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여드레 동안 등불을 밝히는 빛의 축제 하누카입니다. 기억나십니까. 4장에서 안나가 마리아의 생명을 처음 감지한 것이 바로 이 빛의 축제였습니다. 마리아의 생명이 켜진 축제에 마리아의 새 삶이 맺어지고, 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날에 성전에 봉헌되었던 소녀가, 아니 장차 참성전을 모실 분이 수호자의 손에 맡겨지는 것입니다. 유다 산지에는 눈이 쌓여 "시온과 베타니아 사이에 오직 그 눈만이 유일한 흰빛"인 계절, 땅의 어떤 가지도 꽃필 수 없는 때입니다. 화려한 방에 다윗 혈통의 사내들이 모여 있습니다. 스무 살부터 쉰 살까지, 새 옷을 차려입고 마음 졸이는 얼굴들. 한 귀퉁이에 서른쯤의 요셉이 보입니다. 거무스름한 밤색 곱슬머리와 수염, 짙고 선량하며 어딘가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깊은 눈, 수수하되 단정한 밝은 밤색 옷. 곁의 노인이 무어라 말하자 그럴 리가 있느냐는 듯 손을 내저으며 웃습니다. 그때 레위인이 마른 나뭇가지 한 다발을 안고 들어오는데, 그 위에 꽃 핀 가지 하나가 조심스레 얹혀 있습니다. "하얀 꽃잎의 가벼운 물거품 같은" 꽃입니다. 이 광경, 어디서 본 그림입니까. 이사야서 11장 1절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짓밟히고 흩어져 마른 가지 다발이 된 다윗 왕가, 그 마른 가지들 한가운데서 홀로 꽃이 핀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읽은 예언이 오늘 눈앞에서 상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심사 방식 자체가 성경의 재방송입니다. 민수기 17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지파마다 지팡이를 거두어 수장의 이름을 새기게 하시고 17장 20절에서 선언하셨지요. "내가 선택하는 바로 그 사람의 지팡이에서 싹이 돋을 것이다." 그리고 23절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언판을 모신 천막에 들어가 보니, 레위 집안을 대표한 아론의 막대기에 싹이 나 있는 것이었다. 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편도 열매가 이미 익어 있었다." 이름을 새긴 가지들, 싹이 돋는 하나, 저마다 제 가지를 찾아 드는 절차까지, 이 책의 예식은 민수기의 예식 그대로입니다. 아론이 사제로 뽑히던 그 방식으로, 이제 한 사람이 뽑힙니다. 나팔이 울리고 대사제가 선포합니다. "그분의 영광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봄날의 태양처럼 마른 가지 하나에 생명을 주었고, 그 가지가 기적처럼 꽃을 피웠소." 그리고 고아가 된 동정녀에게 하느님께서 친히 "아버지요 후견인이 되어" 주셨다고 밝힙니다. 시편 68편 6절의 그분이십니다.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거처에 계시다." 이어 신랑의 이름이 불립니다. "다윗 지파, 갈릴래아 나자렛의 목수, 베들레헴 사람 야곱의 아들 요셉이오." 이 한 줄에 복음서 네 조각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다윗 지파는 루카 1장 27절, 나자렛의 목수는 마르코 6장 3절, 베들레헴 연고는 루카 2장 4절의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은 마태오 복음 1장 16절 족보 그대로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발토르타가 적은 요셉의 아버지 이름이 마태오의 족보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 속에 요셉과 이야기하던 노인의 한마디가 걸작입니다. "내 말하지 않았나, 요셉? 가장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이 판을 이기는 법이라고!" 대사제는 이 사람을 두고 "참으로 의로운 이일 것이오" 했는데,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이 요셉을 소개하는 유일한 형용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이제 두 사람만 남은 방의 대화가 이 장의 백미입니다. 요셉의 첫마디를 들어 보십시오. "나는 그대가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갓난아기였을 때 그대를 본 적이 있소. 나는 그대 아버지의 벗이었소." 그는 그 탄생의 저녁을 기억합니다. 5장에서 우리가 본 그 폭풍우와, 그때껏 본 적 없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말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는 그대의 요람을 만들었소. 온통 장미를 새긴 작은 요람이었으니." 아기 마리아의 요람을 짠 목수가 그 마리아의 신랑이 된 것입니다. 요아킴을 제 손으로 묻어 드리고 진심으로 울었다는 말에 마리아가 처음으로 손을 내밉니다. "고마워요, 요셉." 형 알패오의 아들, 곧 2장에서 안나의 눈물을 닦아 주던 그 꼬마가 자기 조카라는 말로 두 집안의 오랜 그물도 드러나지요. 그리고 요셉이 꽃 핀 가지의 비밀을 밝힙니다. "이것은 집 앞에 있는 편도나무의 가지라오." 마리아의 정원에서 꺾어 온 편도나무였던 것입니다. 편도나무가 무엇입니까. 아론의 지팡이에 핀 그 꽃이고, 예레미야서 1장 11절과 12절에서 하느님께서 소명의 첫 환시로 보여 주신 나무입니다. "예레미야야, 무엇이 보이느냐?" "편도나무 가지가 보입니다." "잘 보았다. 사실 나는 내 말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고 있다." 히브리 말로 편도나무는 깨어 있는 나무,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하느님께서 깨어 당신 말씀을 이루고 계시다는 살아 있는 표징이지요. 요셉은 이어 "나는 나지르인이오" 하고 밝힙니다. 봉헌된 정결의 사람이라는 뜻인데, 놀랍게도 나지르인 규정과 대사제가 방금 바친 작별 축복이 같은 민수기 6장에 나란히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마리아가 용기를 내어 서원을 고백하자 요셉의 대답이 이 정혼의 정점입니다. "그러면 나도 내 희생을 그대의 희생에 하나로 잇겠소. 그리하여 우리의 정결로 영원하신 분을 그토록 사랑하여, 그분께서 이 땅에 구세주를 더 빨리 보내 주시도록 합시다." 메시아를 앞당기려던 소녀의 평생 기도에, 이제 한 남자의 생이 합류합니다. 지난 시간의 야훼 이레,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던 그 약속이 이렇게 사람의 얼굴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요셉의 예형이 성경에 이미 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입니다. 둘 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라는 것부터 기이하지요. 옛 요셉이 꿈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았듯 새 요셉도 꿈으로 받고, 옛 요셉이 유혹 앞에 정결을 지켰듯 새 요셉은 정결의 서원을 품으며, 옛 요셉이 이집트에서 가족을 먹여 살렸듯 새 요셉은 성가정을 이집트로 피신시켜 지켜 냅니다. 그래서 교회는 창세기 41장 55절의 파라오의 말을 성 요셉 신심의 표어로 삼아 왔습니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가톨릭교회교리서 489항이 밝힌 하느님의 선택 문법도 여기서 다시 확인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기대와는 달리 무능하고 약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이들을 골라 당신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고 손을 내젓던 사람, 가장 자신 없어 하던 사람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1870년 12월 8일, 비오 9세 교황은 이 목수를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했고, 꼭 150년 뒤인 2020년 12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를 내며 성 요셉의 해를 열었습니다. 마리아를 맡기신 하느님의 선택을, 교회가 저 자신을 맡기는 것으로 뒤따른 것입니다. 이 맡김을 우스꽝스러울 만큼 그대로 산 사람이 있습니다. 1845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성 앙드레 베세트 수사입니다. 병약하고 배움도 짧아 수도회에서 맡길 일이 문지기밖에 없었던 이 수사는 수십 년 문간을 지키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오직 한마디를 했습니다. 요셉 성인께 가서 청하십시오. 그리고 몬트리올 산 위에 요셉 성당을 세우는 무모한 꿈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성당은 내 일이 아니라 요셉 성인을 위한 것입니다. 공사장 한복판에 요셉상을 놓으십시오. 요셉 성인께서 당신 머리 위에 지붕을 올리기를 바라신다면 당신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문지기의 신심 위에 북미 최대의 성 요셉 성당이 섰고, 치유된 이들이 두고 간 목발 오백여 개가 지금도 그 벽에 걸려 있습니다. 2010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문지기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마른 가지 같은 사람에게 꽃을 피우시는 하느님은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스스로 마른 가지 같다고 느끼시는 분, 그럴 리가 있느냐고 손을 내젓고 계신 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선택은 언제나 가장 합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실천은 요셉의 기도입니다. 우리 가정의 풀리지 않는 일 하나를 두고 이렇게 아뢰십시오. 성 요셉이여, 당신이 마리아를 지키셨듯 우리 집을 지켜 주소서. 그리고 파라오의 말대로 하십시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요셉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언제나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마른 가지 하나가 기적처럼 꽃을 피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을 골라 당신 보물을 맡기십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13장, 지혜의 가르침으로 신비의 수호자가 된 요셉과 동정녀의 혼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