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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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tly Playing: 제37장. 예수님의 첫 일 배움; 하느님을 닮기 위해 첫 번째로 배워야 하는 것은?

제37장. 예수님의 첫 일 배움. 예수님께서는 여느 아이가 자라는 순리를 벗어나지 않으셨다 하느님을 닮기 위해 첫 번째로 배워야 하는 것은? 하느님은 일하시는 분입니다. 성경 첫 장은 하느님을 엿새 동안 일하시는 분으로 보여 주고,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을 때 맨 먼저 배우셔야 할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요셉은 이 아이가 하느님이시니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왜 하느님의 아들에게 톱을 쥐여 주었는지, 오늘은 창세기와 요한 복음이 답합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7장으로 들어갑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나자렛의 집입니다. 길이 방 셋을 앗아 가 작아진 집이라 산 한 자락을 파 만든 큰 방이 요셉의 작업장이고, 그 문 앞이 텃밭입니다. 거기서 어린 예수가 흙으로 언덕을 쌓고 잔가지로 숲을 심고 이 빠진 그릇을 묻어 겐네사렛 호수를 만듭니다. 잎사귀가 배입니다. 그런데 물이 새어 "호수는 말라 버린다." 문간의 요셉이 웃으며 내일 역청 바른 나무 물통과 진짜 나무배를 약속합니다. "그럼 제가 아버지를 도와드릴게요!" 작업장 안, 아이 키에 맞춘 작업대 위에 작은 망치와 작은 톱과 "인형에게나 어울릴 작은 대패"가 놓여 있습니다. "보렴, 톱질을 하려면 이 나무를 이렇게 대고 놓는 거란다." 예수가 얼굴이 붉어지도록 힘을 주어 톱질하고 대패질합니다. 문간에 돌아온 마리아가 미소 짓고, 예수는 반쯤 다듬은 널빤지를 들고 달려가 어머니께 작은 걸상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제 성경공부입니다. 첫째 사슬은 일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창세기 2장 2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여기 '일'이 히브리어 '멜라카', 장인의 일을 뜻하는 낱말입니다. 하느님은 엿새 동안 장인처럼 일하셨고, 당신 모습으로 지으신 사람에게 맨 먼저 이렇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죄보다 일이 먼저입니다. '일구다'의 히브리어 '아바드'는 섬기고 예배한다는 말이고 '돌보다'의 '샤마르'는 지킨다는 말인데, 민수기 3장에서 레위인이 성막에서 맡는 임무가 바로 이 두 낱말입니다. 에덴에서 일하는 사람은 곧 예배하는 사제입니다. 아담의 벌은 일이 아니라 땀입니다. 둘째 사슬은 보고 그대로 하는 아드님입니다. 요한 복음 5장 17절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요한 복음 5장 19절부터 20절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도제의 말입니다.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하는 아들. 그러니 요셉이 일을 보여 주고 예수가 보고 그대로 하는 나자렛의 작업장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영원히 일어나는 그 일의 땅 위 성화상입니다. 요셉은 이 아이가 하느님이라고 일에서 빼 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옳았습니다. 하느님이시기에 일하셔야 했습니다. 요한 복음 4장 34절입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셋째 사슬은 사랑과 창조와 일입니다. 요한 1서 4장 8절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지혜서 11장 24절입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있는 것을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없는 것을 있게 합니다. 창조는 사랑의 일입니다. 잠언 8장 30절입니다.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여기 '아이'로 옮긴 히브리어 '아몬'은 '장인'으로도 읽혀 칠십인역은 '함께 짜 맞추는 이'로 옮겼습니다. 텃밭에서 흙을 빚어 언덕과 호수를 만드는 아이는 그 두 뜻을 한 몸에 지녔습니다. 이사야 64장 7절입니다.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손으로 빚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아이의 흙 묻은 손에 있습니다. 뒤집으면 이렇습니다. 사랑은 창조하고 창조는 일이니,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의 말이 그래서 거칠지 않습니다. 테살로니카 2서 3장 10절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달란트의 주인은 놀린 종을 이렇게 부릅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26절입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넷째 사슬은 영으로 채워진 첫 장인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영으로 채워졌다'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예언자도 임금도 아닌 장인 브찰엘입니다. 탈출기 31장 3절입니다. "그를 하느님의 영으로, 곧 재능과 총명과 온갖 일솜씨로 채워 주겠다." 이 '일솜씨'가 창세기 2장의 하느님의 일과 같은 '멜라카'입니다. 성막은 영으로 채워진 장인의 손이 지었고, 지난 회차에서 말씀이 천막을 치신 그 참 성막이 이제 장인의 손을 배우십니다. 마르코 복음 6장 3절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그리스어 '텍톤', 나무와 돌을 다루는 장인입니다. 나자렛 북서쪽 6km 치포리에서 헤로데 안티파스가 새 수도를 짓던 때이니, 요셉의 연장이 그 공사장에서도 쓰였으리라 많은 학자가 짐작합니다. 다섯째 사슬은 일한 사람의 안식입니다. 탈출기 20장 9절부터 10절입니다.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안식일 계명은 쉬라는 명령이기 전에 일하라는 명령입니다. 히브리서 4장 10절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일을 해야 안식일이 행복합니다. 코헬렛 5장 11절입니다. "적게 먹든 많이 먹든 노동자의 잠은 달콤하다." 대패질을 배우는 이 아이가 훗날 목수의 말로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11장 29절부터 30절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잘 대패질한 멍에는 소의 목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도 일의 말입니다. 요한 복음 19장 30절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창세기 2장 2절 "하시던 일을 다 이루셨다"의 그 말이고, 다음 날은 무덤의 안식일이었으며, 그다음 날이 새 창조의 첫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라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것도 제 손으로 빵을 벌어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이다." "내가 연장을 다룰 수 있는 나이에 겨우 이르자, 그는 나를 게으름 속에 뒹굴게 두지 않고 일로 이끌었다." 하느님의 완전한 지성을 사람의 지성 자리에까지 낮추어 한 사람을 스승으로 두셨다고도 하십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물으십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길로 어린것들에게 일을 사랑하게 하는 가정이, 지금 어디 있느냐?" 가톨릭교회교리서 2427항입니다.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서로 함께,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땅을 지배함으로써 창조 사업을 계속하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들이 직접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은 하나의 의무이다." 같은 항은 이어서, 나자렛의 목수이시며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일치하여 노동의 수고를 견디는 사람은 하느님 아들의 구속 사업의 협력자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성 베네딕도는 규칙서 48장을 "게으름은 영혼의 원수이다"로 열고 제 손으로 일하여 사는 이가 참수도승이라 했으며,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이것을 '노동의 복음'이라 불렀습니다. 1981년 하버드의 정신과 의사 조지 베일런트 부부는 1940년부터 추적해 온 보스턴 노동자 가정 소년 456명의 자료를 분석해 발표했습니다. 어른이 된 뒤의 정신 건강과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한 것은 지능도, 집안 형편도, 부모의 결혼 안정도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일을 맡아 하고 제 몫의 과제를 해낸 '일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요셉이 다섯 살 아이에게 작은 톱을 쥐여 준 까닭을 심리학이 이천 년 뒤에 확인한 셈입니다. 오늘 미루어 둔 손일 하나를 끝까지 해내고 그 끝난 자리에서 저녁의 쉼을 맛보십시오. 자녀가 있다면 집안일 하나를 그 아이의 몫으로 맡기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고, 사랑은 창조하며, 창조는 일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지 않은 것이고, 일을 마친 사람에게만 안식일이 행복합니다. 다음 회차 제38장 '예수님과 유다와 야고보의 스승이 되신 마리아'에서는 나자렛 뜰에서 어린 예수님과 사촌 유다와 야고보가 '이집트 탈출 놀이'를 하다 성모님께 성경을 묻는 장면을 읽으며, 앞선 회차들의 알패오 집안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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