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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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세례자 요한의 설교와 예수님의 세례. 신성이 드러나다 씻긴 눈, 먼저 삼구(三仇)를 버린 이만이 사랑 자체이신 분을 알아본다 수백 명이 요르단 강가에 서 있었고, 그 사이로 한 사람이 소리 없이 다가왔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낙타 털옷의 사람이 문득 몸을 돌려 그 한 사람을 짚어 냈습니다. 비둘기가 내려오기 전이었습니다. 요한의 눈은 무엇이 달랐습니까. 뱀은 세속과 육신과 마귀, 곧 돈과 쾌락과 교만으로 사람의 눈을 가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랑의 희생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요한은 그 셋을 광야에 버렸기에 그 반대의 욕구, 곧 사랑을 향한 목마름을 얻었고, 그래서 사랑 자체이신 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씻긴 눈을 성경으로 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45장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장 전체입니다. 고을도 초목도 없는 유다 광야 곁, 너비 스무 걸음쯤의 요르단 강이 느리게 흐르고 기슭에는 짙은 초록 띠가 둘려 있습니다. 서민과 부자와 바리사이가 뒤섞인 무리 한복판, 바위 위의 세례자가 벼락 같은 목소리로 외칩니다. 그 등 뒤로 예수님이 오솔길을 따라 홀로 다가오시는데 "그 어떤 하느님의 표징도 그분을 무리와 갈라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무언가 특별한 영의 기운이 번져 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돌려 그 근원을 대번에 짚어 냅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어찌하여 제 주님께서 저에게 오십니까?" 예수님이 물에 드시고 요한이 무리에게 증언합니다. 이어 예수님이 이르십니다. 요한은 표징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어머니의 태에서 미리 거룩해진 그 영은 "아담의 죄가 없었더라면 모든 사람이 누렸을 그 초자연적 지성의 통찰력"을 지녔고, 죄가 오자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볼 줄 모르게 되었다고. 핵심은 하나입니다. 눈을 가리는 것은 죄, 곧 뱀이 건넨 세 가지 욕망이고, 눈을 씻는 것은 그 셋을 버려 얻는 사랑의 목마름입니다. 사랑하는 이만이 사랑 자체이신 분을 알아봅니다. 강가의 무리부터 봅니다. 바리사이도 부자도 서민도 그분이 지나가시는데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이 가려져서입니다. 지혜서 2장 21절입니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무엇이 그 눈을 가렸는지 요한 사도가 셋으로 세었습니다. 38회차에서 들은 요한 1서 2장 16절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쾌락과 돈과 교만, 교회가 육신과 세속과 마귀라 부르는 삼구입니다. 뱀이 에덴에서 연 학교의 세 과목이고, 그 과목을 배운 눈은 정확히 그 반대편, 곧 자기를 내주는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마태오 복음 6장 22절부터 23절입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다음은 낙타 털옷의 요한입니다. 세 욕망을 어떻게 버렸는지 성경이 하나씩 적었습니다. 육신입니다. 마태오 복음 3장 4절입니다.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루카 복음 1장 15절입니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세속입니다. 예수님이 군중에게 물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1장 8절입니다.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마귀, 곧 교만입니다. 그는 서슴지 않았습니다. 요한 복음 1장 20절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요한 복음 3장 30절입니다. "그분께서는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쾌락을 버린 몸, 돈을 버린 옷, 교만을 버린 입. 그 세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습니까. 그 반대의 욕구, 사랑을 향한 목마름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표징 없이 알아보았습니다. 요한 1서 4장 7절부터 8절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사랑이고, 사랑은 세 욕망을 비운 자리에만 들어옵니다. 다음은 몸을 돌리는 요한입니다. 그는 눈도 뜨기 전에 이미 한 번 알아보았습니다. 루카 복음 1장 44절입니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죄의 딱지가 제 영혼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아기가 느꼈다 하십니다. 씻긴 영은 태 안에서도 알아보고, 가려진 눈은 강가에서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그 약속을 손수 주셨습니다. 요한 복음 14장 21절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드러내 보이시는 대상은 아는 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입니다. 다음은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요한이 알아본 것이 무엇인지 그 말에 다 있습니다. 어린양, 곧 희생입니다. 세 욕망은 제 몸과 제 돈과 제 자리를 지키는 눈이고, 사랑은 제 몸을 내주는 희생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이사야 53장 7절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43회차의 모리야에서 이사악이 물었습니다.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요한이 손가락으로 그 답을 가리킵니다. 다음은 물에 잠기심입니다. 세례가 필요 없는 분이 죄인들의 줄에 서시자 하늘이 열립니다. 마태오 복음 3장 16절부터 17절입니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은 이 표징이 요한이 아니라 무딘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십니다. 그런데 이 물이 우리의 눈을 씻는 물이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 9장 7절입니다.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눈먼 이가 씻고 본 것처럼, 요르단의 물이 세례의 물이 되어 우리 눈을 씻습니다. 요한 복음 3장 3절입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세례는 눈을 새로 받는 일입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갈라티아서 5장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마지막은 되풀이되는 드러내심입니다. 예수님은 동방 박사에게, 성전에서, 요르단에서 당신을 드러내셨고 지금도 되풀이하신다 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35절과 40절입니다.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십자가 위의 마지막 말씀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요한 복음 19장 28절입니다. "목마르다." 그분은 지금도 가장 작은 이들 안에서 목마르다 하시는데, 세 욕망에 가려진 눈은 거기서 냄새와 짐만 보고, 씻긴 눈은 어린양을 봅니다. 미사 때마다 사제가 성체를 들어 요한의 말을 되풀이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그때 우리 눈은 어느 눈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은 입술이요, 나는 말씀이다." "너에게는 보는 위로를 준다. 모두에게는 나를 알고자 하는 길을 준다." 교회의 판단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536항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담의 죄로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과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물이 거룩하게 되었다." 2519항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뵙는 것이 약속되었고 마음의 순결은 하느님의 관점에 따라 보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1946년 9월 10일, 캘커타에서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마더 데레사가 부르심 안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목마르다 하시는 예수님의 목마름을 풀어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그가 세운 모든 수도원 경당의 십자가 곁에는 같은 두 낱말이 적혀 있습니다. 목마르다. 1952년 칼리가트 곁에 임종자의 집을 열고 구더기 슨 상처를 씻으며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처참한 변장을 하신 예수님"이라고. 사리 두 벌과 양동이 하나로 살며 돈과 안락과 명예를 비운 자리에 사랑의 목마름이 들어왔고, 그 목마름이 죽어 가는 이의 몸에서 어린양을 알아보았습니다. 요르단 강가의 요한이 가진 그 눈이었습니다. 오늘 세 욕망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작게 끊으십시오. 군것질 한 끼, 쓸데없는 지출 한 번, 자기 자랑 한 번. 그리고 오늘 만나는 가장 초라한 사람의 얼굴에서 "목마르다" 하시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뱀은 쾌락과 돈과 교만으로 눈을 가려 사랑의 희생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 셋을 버린 자리에 들어오는 사랑의 목마름만이 사랑 자체이신 분을 알아봅니다. 다음 회차 제46장 '광야에서 사탄에게 유혹받으신 예수님'에서는 하늘이 열린 강가에서 곧장 광야로 드신 예수님이 사십 일 뒤 바로 그 세 욕망을 들고 온 뱀의 교사를 만나시는 장면을 읽으며, 38회차의 두 나무를 되찾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