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발토르트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저서를 통하여,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적 신빙성을 밝히고, 더불어 각 챕터마다 연관된 성경 내용을 주해하며 성경공부도 병행한다.

Curated by: 순전한 가톨릭(전삼용 요셉) (87 videos)


Currently Playing: [제3장. 초막절에. 요아킴과 안나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과 함께 하는 성경 공부

제3장. 초막절에. 요아킴과 안나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 희망을 가지시오. 우리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느님을 이깁시다 시월의 밤하늘 아래, 예루살렘 성벽 밖 언덕이 온통 작은 불빛입니다. 수백 개의 초막, 수백 개의 등잔불. 그 가운데 한 초막에서 백발의 아내가 남편에게 속삭입니다. "지난밤 꿈을 꾸었어요. 제 아이를 성전에 봉헌하는 꿈이었어요." 아이가 없는 아내의 꿈 이야기. 예수님의 외조부모가 보낸 초막절 밤입니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나에게 계시된 복음』 1권 제3장으로 들어갑니다. 레위기 23장 42절과 43절에서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서 지내야 한다." 그 까닭도 밝히시지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 초막에서 살게 하였던 일을 너희가 대대로 알게 하려는 것이다." 광야 사십 년, 천막살이하던 조상을 기억하며 온 백성이 일주일 동안 나뭇가지 초막에서 야영하는 축제, 일 년 중 가장 기쁜 명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온 이스라엘의 거룩한 캠핑 주간이지요. 화면의 지도처럼 예루살렘 성벽 밖 감람산 자락이 거대한 야영지가 됩니다. 환시가 열립니다. 양털 천막과 푸른 나뭇가지 초막들, 저녁을 먹는 가족들, 빵 한 조각을 쥔 채 어머니 품에서 잠드는 아이들, 구슬픈 자장가 한 가락. 그리고 하늘. 발토르타는 밤하늘을 검푸른 우단 휘장에 보이지 않는 세공사들이 보석을 박아 넣는 것 같다고 그립니다. 시편 104편 2절이 노래한 그림 그대로입니다. "빛을 겉옷처럼 두르셨습니다. 하늘을 차일처럼 펼치시고." 큰곰자리와 북극성이 빛나고, 어느 사내의 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런 시월은 좀처럼 없었어. 참 아름답구먼!" 안나가 모닥불에서 저녁을 들고 초막으로 갑니다. 여왕답되 겸손한 걸음. 그 발치에 가난한 집 아이 하나가 넘어지자 손수 닦아 달래 주는데, 그 어머니와의 대화가 오늘의 가장 아픈 대목입니다. 아들만 여섯에 일곱째를 가졌다는 여인이 묻습니다. 부인은 아이가 몇이에요? "한 명도 없어요." 한 명도요? 이 아이는요? "마음씨 고운 이웃의 아이예요. 이 아이가 내 위로지요." 잃으신 건가요, 아니면?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가난한 여인의 가엾어하는 눈빛 앞에서 안나는 긴 한숨으로 인사하고 돌아섭니다. 초막에서는 알패오가 아버지의 부름에도 "난 안나하고 있을래" 하고 버티고, 안나는 웃으며 아이를 무릎에 앉혀 생선 가시를 발라 먹입니다. 남편을 먼저 챙기고 자신은 마지막에 먹습니다. 밤이 깊어 등잔불이 하나둘 꺼질 때, 안나가 꿈 이야기를 꺼냅니다. 내년에는 축제 하나가 아니라 둘을 위해 이 도성에 오게 되는 꿈, 그 하나는 제 아이를 성전에 봉헌하는 일이었다고. 그리고 탄식하지요. "누군가 곧바로 제게 이렇게 말해준다면 좋으련만. '평안히 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그대가 청한 은총을 들어주셨소!'" 이 문장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사무엘기 상권 1장 17절, 성전에서 울며 기도하던 한나에게 엘리 사제가 건넨 바로 그 축복입니다.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안나는 지금 자기만의 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도 같고, 서원도 같고, 이제 기다리는 축복의 문장까지 같습니다. 그때 요아킴이 오늘의 핵심 문장을 말합니다. "희망을 가지시오, 희망을, 안나! 우리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느님을 이깁시다." 그리고 예언 같은 한마디를 덧붙이지요. 은총이 온다면 당신 아이가 태중에서 처음으로 몸을 움직여 그 소식을 전할 것이오. "그것은 죄 없는 이의 목소리이니, 곧 하느님의 목소리일 것이오." 훗날 태중의 세례자 요한이 뛰놀며 구세주의 오심을 알린 일을 아는 우리에게는, 마치 그 사건의 복선처럼 들립니다. 환시가 끝나자 예수님의 받아쓰기가 이어집니다. 첫 문장이 오늘의 제목입니다. "의인들은 언제나 지혜로운 이들이다. 하느님의 벗으로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혜서 7장 27절이 지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들어 보십시오. 지혜는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하느님의 벗. 발토르타가 받아 적은 정의와 지혜서의 정의가 낱말까지 일치합니다. 지혜란 똑똑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벗으로 사는 것, 잠언 9장 10절대로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외조모 안나를 잠언 31장의 그 여인이라 부르십니다.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보다 높다"로 시작해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로 맺는 강한 여인의 노래입니다. 늙은 요아킴에게 안나는 여전히 잠언 5장의 "젊은 시절의 아내", "사랑스러운 암사슴, 우아한 영양"이었다고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잠언의 연가를 당신 외조부모 부부에게 적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두 분에게 모자란 것은 오직 하나, 잠언 17장 6절이 "손자들은 노인의 화관"이라 부른 그 자녀의 화관뿐이었습니다. 여기에 혈통의 열쇠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받아쓰기는 안나를 아론 가문, 요아킴을 다윗 임금의 혈통이라 밝힙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 1장 5절은 엘리사벳을 "아론의 자손"이라 하고, 1장 36절에서 천사는 그를 마리아의 "친척"이라 부릅니다. 다윗 가문의 마리아가 아론 가문의 여인과 친척이 되려면, 어머니 쪽에 사제 가문의 피가 흘러야 계산이 맞지요. 발토르타의 설정은 루카복음의 두 구절을 정확히 이어 주는 다리입니다. 그리고 그 딸 안에서 왕가와 사제 가문이 만나, 임금이시며 대사제이신 분께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부부 정결에 대한 받아쓰기도 교회의 가르침 그대로입니다. "정결하기 위하여 반드시 동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은, 가톨릭교회교리서 2348항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신분에 알맞게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가르침과 한 문장처럼 포개집니다. "자녀의 화관"이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652항은 선언하지요. "자녀들은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이며 부모 자신의 행복에 크게 이바지한다." 그리고 아이를 기다리며 아파하는 부부들을 위해 교리서 2379항은 출산의 어려움이 결코 절대적 악이 아니며 그 고통이 주님의 십자가와 결합될 때 영적 열매를 맺는다고 위로합니다. 요아킴의 "하느님을 이깁시다"라는 대담한 말도 성경의 언어입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얍복 강 가에 밤새 하느님과 씨름한 야곱이 받은 이름 이스라엘이 바로 '하느님과 겨루어 이긴 이'라는 뜻이니까요. 매달리는 사랑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져 주십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습니다. 이 부부 영성을 우리 시대에 다시 세운 분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입니다. 1920년에 태어나 2005년에 선종하고 2014년에 시성된 이 교황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백스물아홉 차례의 수요 교리를 통해 이른바 몸의 신학을 가르치며 부부의 몸과 사랑이 거룩하다는 것을 교회 전체에 선포했고,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에서는 인류의 미래가 가정을 거쳐 온다고 선언했습니다. "정결한 부부의 잠자리는 천사들을 그 수호자로 둔다"는 1944년 병상의 받아쓰기와, 반세기 뒤 교황의 가르침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초막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봅니다. 요한 복음 1장 14절, 우리가 삼종기도 때마다 바치는 그 구절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런데 이 '사셨다'의 그리스말 원어가 문자 그대로는 '천막을 치셨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당신 초막을 치셨다는 것이지요. 보십시오. 초막절 야영지에서 한 아이가 청원되었고, 그 응답으로 태어난 마리아는 하느님을 모신 살아 있는 초막이 되었으며, 그 태에서 나신 말씀은 우리 가운데 영원한 초막을 치셨습니다. 초막절 밤의 이 장면은 강생의 신비를 미리 그린 밑그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가정을 초막으로 만드십시오. 화려한 집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나뭇가지 초막이면 됩니다. 배우자에게, 가족에게 한결같은 사랑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요아킴의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랑에 지시는 분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희망을 가지십시오. 우리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느님을 이깁시다. 그 방법은 바로 내가 초막, 마굿간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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