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 이재철 목사

이재철 목사님은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사도행전'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초기 저화질 영상 자료를 최신 기술을 통해 고화질(Full HD)로 화질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상 속 이재철 목사님의 모습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Curated by: 100주년기념교회 (472 videos)


Currently Playing: [ 다시보기 | 사도행전 강해 | 2018.3.18 ] 〈사도행전 28:11-14〉 이와 같이 로마로(III) | 설교 이재철

이재철 목사님은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사도행전' 설교를 전하셨습니다. 초기 저화질 영상 자료를 최신 기술을 통해 고화질(Full HD)로 화질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성경 구절 ===================== 사도행전 28:11-14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 100주년기념교회 예배시간 ──────── • 주일예배 : 1부 08:30 / 2부 11:00 / 3부 13:30 /4부 16:00 • 수요성경공부 : 수 19:30 • 새벽기도 : 월~토 05:30 • 금요기도 : 금 21:30 ──────── 저 작 권 ──────── ▪︎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 모든 저작권은 100주년기념교회에 있으며, 무단 다운로드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본 교회는 CCLI로부터 교회 저작권 라이선스와 스트리밍 라이선스를 취득하였습니다. ▪︎ 본 교회는 CCLI 교회 저작권 라이선스 및 스트리밍 라이선스 규정에 따라 비영리 예배 목적으로 이용합니다. ▪︎ 본 영상에 광고가 재생될 경우, 본 교회가 아닌 노래의 저작권자가 결정한 것으로 수익은 교회가 아닌 노래의 저작권자에게 분배됩니다. -100주년기념교회 CCLI License -CCLI License #562470 -CCLI Streaming License #12188 ──────── 100주년기념교회 예배시간 ──────── • 주일예배 : 1부_08:30 / 2부_11:00 / 3부_13:30 /4부_16:00 • 수요성경공부 : 수 19:30 • 새벽기도 : 월~토 05:30 • 금요기도 : 금 21:30 ──────── 저 작 권 ──────── ▪︎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 모든 저작권은 100주년기념교회에 있으며, 무단 다운로드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 본 교회는 CCLI로부터 교회 저작권 라이선스와 스트리밍 라이선스를 취득하였습니다. ▪︎ 본 교회는 CCLI 교회 저작권 라이선스 및 스트리밍 라이선스 규정에 따라 비영리 예배 목적으로 이용합니다. ▪︎ 본 영상에 광고가 재생될 경우, 본 교회가 아닌 노래의 저작권자가 결정한 것으로 수익은 교회가 아닌 노래의 저작권자에게 분배됩니다. ◉ 100주년기념교회 CCLI License CCLI License #562470 CCLI Streaming License #12188

Video Transcript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28장 11절에서 14절입니다. 석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 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를 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 이튿날 보디올 이러 거기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이를 함께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아멘. 멜리데 소에서 석달 동안 겨울을 지낸 바울은 이듬의 봄이 되어서 지중의 항해 금지 조치가 해제되자 마침내 로마를 향해서 멜리데섬을 출발했습니다. 그 이후 바울의 요정을 밝혀주는 본문 14절 하반절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이 구절에서 부사 이와 같이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부사 이와 같이 가치를 바울의 전 생애에 적용시켜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떻게 로마로 향하게 하셨는지 지도를 보면서 바울의 전생애를 복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 머리가 지도를 비추는 스크린을 가리지 않도록 앉아서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차 전도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안티옥 교회로 되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2차전도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때 방문했던 도시들을 제 방문해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영접했던 초신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출발하기 전에 바울과 바나바가 수행원 문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바나바는 이번에도 자기 사촌동생 마가를 대동하려 한 반면에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도중에서 무책임하게 무단 이탈한 마가를 다시는 대동할 수 없다고 반대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9절은 이때 두 사람이 서로 심하게 다두어 피차 갈라섰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문자를 그대로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원수처럼 다시는 보지 않도록 영영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헬라우 원문을 보면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뜻을 존중하면서 각자 자기 소명의 길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먼저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구부로 섬으로 출발했습니다. 자기 사촌 동생 마가를 대동하고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한 마가 마 바나바의 첫 번째 전도지 역시 1차 전도 여행 때처럼 자기 고향 구부로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사가 늘 자기 고향 혈족에게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바나바와 결한 바울은 바나바가 구부로 섬으로 갔기 때문에 반대방향 북쪽으로 올라가서 1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행손지인 더배를 찾아갑니다. 사도행전 15장 41절은 이때 바울이 예루살렘 출신의 신라를 대동하고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교회들을 견고하게 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수리 수리아는 안티옥과 예루살렘이 속해 있는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이고 길리기아는 바울의 고향 다소가 속해 있는 로마 제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당시 교회는 모두 가정 교회였습니다. 수리아와 길리기아에도 흩어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가정 교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신라는 가는 길에 그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바울이 안티옥에서 출발해서 길리기아를 거쳐서 더배로 갔기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은 이때 바울이을 그거의 고향 다소를 들린 것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의 전도 여정을 마치 일기창처럼 세밀하게 기록한 누가가 반드시 그 사실을 사도행전의 기록으로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때 바울의 고향 다소에 대해서는 1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직접 쓴 그 많은 서신서들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전도 여행 중에 고향을 재방문했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제고향인 부산은 행정적으로는 광역시이지만 지리적으로는 경상남도 땅에 속해 있습니다. 제가 경상남도에 다녀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제 고향인 부산까지 갔다 왔다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울이 길리기아를 거쳐서 더배로 갔다고 누가가 기록한 것은 그러므로 바울이 길리기아 땅을 거치면서도 고향 다소는 들르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 사실을 통해서 누가는 굳이 사촌동생 마가를 대동하고 자기 고향을 2차 전도 여행 때 첫 번째로 다시 찾아간 바나바와 고향을 지나친 바울을 우리에게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1차 전도 여행 때에도 고향을 지척에 둔 더배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고향 다소를 거쳐서 안티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최단코스를 포기하고 자기로부터 복음을 영접한 초신자들의 믿음을 다져 주기 위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바울은 안티옥에서 길리기아 땅을 거쳐가면서도 고향을 지나치고 더배의 초신자들을 찾아간 것입니다. 바나바와는 달리 바울은 자기 고향, 집안, 혈족을 초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기 혈족은 아란곳하지도 않은 비정한 인간이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고향에서 무려 13년 동안이나 치거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이 고향에서 13년 동안 집거했다는 것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지 고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13년 동안에 바울이 고향의 가족들에게 만나는 고향 친척들에게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면 두 말할 나이가 없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바울이 한 도시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기 삶으로 주님을 증언한 도시가 바로 자기 고향에서의 13년 다소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확신한 것입니다. 자기가 고향을 지나쳐도 주님께서 자기 가족들을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향을 들르는 대신 시간을 절략해서 더배의 초신자들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일평생토록 내 집안, 내 가족, 내 혈족, 내 사업의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바울은 큰 경종을 올려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안티옥에서 더배로 가기 위해서 생의네 번째로 아마노스산을 또 넘었습니다. 바울이 평생에 걸쳐서 여러 차례 아마노스 산을 넘었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더배를 찾아간 바울은 그 더배에서 초신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루스드라를 찾아갔습니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얼마나 심한 돌팔매지를 당했든지 실신당한 바울을 사람들이 죽었다고 단정하고 성박 쓰레기장으로 내버렸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곳은 몰라도 루스드라마는 피해야만 했습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곳 초신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다시 루스트라로 들어갔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후에 바울의 영적 아들이자 신실한 동력자가 된 디모데를 붙여 주셨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죽음의 돌팔매질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루스트라를 피해 갔더라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곳 이온과 안티옥도 일일히 찾아가서 자기로부터 복음을 전해받았던 초신자들을 다시 만나 그들의 믿음을 북도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날의 터키 대륙의 충부 지역에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성령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허락하시지 않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 여기서는 성령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터키 대륙의 서북쪽 무시아 땅으로 올라가서 동쪽 비두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길도 가로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80도 방향을 돌려서 서쪽으로 가다가 드로아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그 드로아에서 바울은 누가를 만났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2,년 전에도 의사는 부유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누가는 부유한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가난한 전도자 바울의 동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을 때까지 곁해서 바울의 건강을 지켜 주었습니다. 주님께 자기 생을 걸었던 바울은 일평생 가난한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가난한 전도자 바울을 위해서 의사 누가를 그의 주지이자 서기관으로 그의 곁에 심어 주셨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도행전의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드로아에서 또 다른 섭리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들어와여 도착하던 날 밤에 바울이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니아 사람들이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좀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환상이었습니다. 그 환상을 본 드로아는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습니다. 환상 속에 나타난 마게도니아는 유럽 대륙의 로마 제국 행정 구역입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나서 그동안 아시아 대륙에서 살던 바울은 아시아 대륙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에게 유럽 대륙에 살고 있는 마게도니아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주님의 명령으로 이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대륙 출신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유럽 대륙으로 바울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들어와에서 배를 탄 바울은에게 해의 사모드락의 섬을 고쳐서 유럽 대륙 마게도니아의 네볼리 한구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이 유사일에 최초로 유럽 대륙의 첫발을 내디딘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의장대의 팡에도 군중의 박수갈체도 쉬 찬란한 조명도 없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온 가난한 바울 전도자 일행을 거덜떠둬 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보고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손에 이끌려서 애계해를 건너서 유럽 대료까지 찾아온 자신을 주님께서 두 팔을 벌려 환영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울은 네볼리에서 14km 떨어진 빌립보로 갔습니다. 빌리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이세의 본거지였던 곳입니다. 그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습니다. 안식을 안식일을 맞이한 바울은 기도하는 처소가 없을까 생각하고 찾기 위해서 성박 강가까지 찾아 나갔습니다.가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은 발굴되어 있는 빌립보 유적터는 대단한 도시였음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그 여란한 도시 속에서 바울이 기도할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박 강가로 나갔습니다. 아무 연구도 없는 유럽 대륙에 떨어진 바울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주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하러 나간 그 강가에서 바울은 두아디라 출신의 여성 직물 사업가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에들은 루디아가 주님을 용접하고 바울과 그의 일행을 자기 집으로 안내해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 가족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가 2,년 교회 역사상 유럽 대륙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받은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럽 대륙에 살고 있는 그 루디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유럽 사람을 동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루디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시아 대륙 변방의 바울을 당신의 섭리 속에서 신비롭게 빌립보 성박 강가까지 부르셔서 루디아를 구원해 내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이 지난 2,년 동안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심령에 스며들게 하시기 위해서 2,년 동안 세계 도처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시고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사건들을 연출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구원은 결코 싸구려 배급이 아닙니다. 그 신비로운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확인한 루디아는 바울과 그 일행에게 빌립보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자기 집에서 묻기를 간청했습니다. 유럽 대륙의 나그네일뿐인 바울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자기 숙식을 요청해야 마땅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루디아가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 제발 우리 집에서 묵어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루디아는 주님께 진 사랑의 빛을 바울에게 갚았고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한 가난한 전도자 바울의 빌립보 체류를 그렇게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에 귀신 들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고 자신을 고용한 사람들에게 큰 경제적 이득을 안겨 주는 여인이었습니다. 귀신 들린 여자를 고용해서 돈을 버는 그 고용주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성을 상실한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귀신 들린 여인이 매일 바울의 뒤를 쫓아왔습니다. 그 여인을 불쌍하게 여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여인을 귀신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고용주들이 바울과 신라를 붙잡아서 마치 개 끌듯이 시장터 관리에게 끌고 갔습니다. 아울 때문에 그 여인을 이용해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관리들에게 마치 바울과 신라가 몹 범법자인 것처럼 거짓 모함하면서 그 시장터에 모여 있는 군중들을 선동했습니다. 간단하게 선동당한 빌립보 군중들은 영문도 잘 알지 못하고 소리소리 쳐 바울과 신라를 고발했습니다. 부자들을 대변하던 관리들은 바울에게 해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신라에게 매질을 하게 한 다음에 아예 감옥에 투억시켜 버렸습니다. 그것도 모자아서 바울과 신라의 발에 착고까지 채웠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서도 억울하고 억울하게 매맞고 토혹당했지만 바울은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도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치밀하게 섭리하고 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감옥 속에서 한밤 중에 신라와 함께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고 한 목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옥터가 움직이면서 감옥과 간방의 문들이 열렸습니다. 감옥과 간방의 문들이 열렸지만 바울과 신라는 나가지 않고 그대로 간방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깜짝 놀라 깨어난 간수가 간방과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재수가 도망쳤다고 생각하고 칼을 빼워서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바울이 간방 안에서 소리 쳐서 간수의 자살을 제지했습니다. 감옥과 간방문이 열려 있는데도 도망치지 않고 간방 안에 그대로 앉아 있는 바울에게 큰 감동을 받은 감옥 간수가 바울 앞에 엎드려서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그 유명한 답변을 주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께서는 그 한 사람을 통로로 삼아 그 주의 가족들도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바울은 갈라디아를 갈라디아를 길리기아를 지나치면서도 고향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더배로 갔던 것입니다. 바울로부터 그 답변을 전해들은 간수는 즉각 그 한밤 중에 바울을 감옥 내에 있는 자기 관사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들과 함께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간수와 간수의 집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억울하게 매맞고 투옥당한 대가가 간수와 그 집의 구원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함으로 누군가에게 주님의 구원이 임하는 것 이것이 구원의 신비요 욕설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바울과 신라를 투시켰던 관리들이 사람을 감옥에 보내어서 바울과 신라를 석방시켜 주게 했습니다. 그 사실을 전에들은 바울에게 갑자기 잊고 있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자기가 유태인이지만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 시민인 나를 정식 재판도 거치지 않고 매질과 투시켰다가 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렇게 석방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보고를 받은 관리들이 깜짝 놀라서 감옥으로 달려왔습니다. 로마 시민을 재판 없이 매질하거나 구금하는 것은 법에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바울을 부당하게 대한 관리들은 문책을 당하거나 형벌을 받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정중히 사과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제발 문제 삼지 말고 조용히 떠나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바울은 그동안 세상에서 자랑거리로 삼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미련없이 포기하고 버렸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얻은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귀한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빌립보에서 감옥에서의 그 경험을 통해 바울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자신이 배설물처럼 포기하고 버렸던 로마 시민권이 주님의 복음을 전도하는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습니다만는 그 이후에 바울의 로마 시민권은 그가 로마로 가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도 모함, 고발, 매질, 투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함으로 인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감옥 간수와 그의 집이 구원받았을뿐만 아니라 바울은이 세상의 배설물도 주님의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보배 같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도 지금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 눈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한 눈으로는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또 한 눈으로는 그 너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치밀하게 섭리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주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고 극복하고 포용하게 해주는 힘이요 능력이 있습니다. 빌립보를 출발한 바울은 안 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카로 갔습니다. 마게도니아 로마 제국 행정 구역 마게도니아의 행정 수도인 데살로니카는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였습니다. 대도시답게 그곳에는 유대인 회당이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안식일을 맞아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카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도 복음을 용접했습니다. 그러자 데살로니카의 유대 교인들도 바울을 시기해서 시내의 불량배들을 동원해서 바울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습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영접한 데살로니카의 신자들이 밤중에 바울을 베레아로 피신시켰습니다. 데살로니카에서 80km 떨어져 있는 베레아에서도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베레아에 나타나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데살로니카의 유대 교인들이 바울을 제거하기 위해서 갑자기 베레아까지 찾아와서 돕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던지 베레아의 신자들이 바울을 급히 베레아의 외향 한구로 빼돌려서 지금 막 추랑하려고 하는 배 위에 바울을 태웠습니다. 바울이 배를 타고 보니 그 배는 아테네로 가는 배였습니다. 아테네는 마게도니아 땅이 아니라 로마 제국 행정 구역상 아가야 땅이었습니다. 바울이 드루아에서 배를 타고 유럽대로 마게도니아로 건너갔던 것은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데살로니카의 유대인들이 베레아까지 찾아와서 바울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자기가 본 환상대로 마게도니아의 베레아에서 복음 정 증언을 끝내고 안티옥으로 퇴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카의 유대 교인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바울을 제거하려 하기 때문에 바울이 응접결에 배를 타고 보니 그 배는 아가야 땅의 아테네로 가는 배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바울은 전혀 계획개도 없던 아가야 땅 아테네까지 전도자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신비스러운 섬리였습니다. 아테네는 헬라 신하의 지혜와 전쟁의 여신으로 등장하는 아테나에서 유한 지명입니다. 아테나 아테네에는 그 아테나 여신을 위한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을 포함해서 크고 작은 많은 신전들 이외에도 3만 개의 신상들이 온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적한 바울이 인간의 어리석음에 격분했습니다. 아테네를 찾아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은 아테네에는 아레오바고라고 불리는 바위 언덕이 있습니다. RS신의 언덕이라는 말인데 RS신은 헬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전쟁의 남신입니다. 그 아래오바고 언덕에 소면 아테나 여신을 위한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올려다 보입니다. 옛날 고대 귀족들의 해의 장소로 쓰였던 바로 그 아래오바구에 바울이 서서 그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을 가리키면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제이심으로 사람이 손으로 만든 전 속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과감하게 설파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아테네에서는 다른 도시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5절을 보면 이때 아테네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영접했던 첫 번째 사람은 아테네 사람이 아니라 고린도 사람 스데바나였습니다. 고린도 사람 스테바나라는 사람이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테네를 방문하였다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해서이 아가야 땅에서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는 고린도는 당시 타락의 도시의 대명사였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영접한 스데반나로부터 고린도의 타락상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덴데에서 90km 떨어져 있는 고린도를 찾아갔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받은 몇 사람이 아테네 사람뿐만이었다면 바울은 아테네에서 안티옥 교회로 귀한거나 아니면 1차 전도 여행 때처럼 왔던 길을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비스러운 섭리 속에서 고린도 사람 스데바나와의 만남으로 인해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고린도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후에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 써보낸 편지가 신약 성경의 고린도전서, 고린도 후서가 되어서 2,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심령까지 새롭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짐작조차 불가능한 섭리입니다. 주님의 섭리는 그것으로 거치지 않았습니다. 행정 구역 아가야의 행정 수도인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레포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지업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는 동서 양쪽에 두 개의 한구가 있었습니다. 동쪽으로 향하는 깽그레아 한구와 서쪽으로 향하는 레카이온 한구였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렉하이온 한구에서 아드리아 바다만 건너면 곧장 로마로 연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구 75만 명으로 로마 제국 사대 도시였던 고린도에는 매일 로마와 고린도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과 물자들을 실어나는 나르는 배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한 바울의 심령 속에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가 뿌이 내리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만는 바울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에 자기 생의 마지막 종착지가 제국의 수도 로마라고 천명했던 동기는 바로 이때 고린도에서 싹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고린도를 찾아올 바울을 위해서 오래 전부터 천막 제조 업자인 브리스킬라와 아굴라 부부를 고린도에 예비시켜 두고 계셨습니다. 천막 제조 기술자인 바울을 만난 그 부부는 바울의 신실한 동력자가 되었습니다. 그 부부의 헌신적인 조력으로 바울은 타락의 도시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2차 전도 여행을 매듭 지은 바울은 갱그리아 한구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를 거쳐서 안티옥 교회로 귀한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와 같이 로마로 간이라는 오늘의 본문을 놓고 바울이 대체 어떻게 로마로 가게 되었는지 바울의 전 생애를 복귀해 보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 저 편방에서 태어났던 아시아 대륙의 바울 그것도 유태인으로 태어났던 바울이 대체 어떻게 로마 제륙의 주류 사력들이 모인 중심지 수도 로마로 향하게 되었습니까?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바울과 바나바가 만약에 절별하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지를 재방문하는 것으로 2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나바와 결한 바울이 더배를 찾아가서 이고니온과 루스트라 안티옥을 방문한 다음에 터키 대륙 중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면 저 북쪽 비두니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가로막지 않으셨다면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터키 대륙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을 들어와로 끌어가셨다고 할지라도 아시아 대륙 출신으로 아시아 대륙에 갇혀 살던 바울에게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여 주시지 않았더라면 바울의 전도 계획에 유럽 대륙 마게도리아는 결코 포함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이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도 억울하고 억울하게 매맞고 투억 당하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자신이 배설물처럼 버렸던 로마 시민권이 자기의 로마 행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었을 있습니다. 데살로니카 유대 교인들이 바울을 제거하기 위해서 삽시간에 벼리아를 덮치지 않았더라면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마게도네에서 끝을 내고 수리아 안티옥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데살로니카 유대인들이 베레아를 톱썼을 때 베레아의 형제들이 급이 바울을 빼돌려서 막 추랑하는 배에 바울을 태웠을 때 그 배가 만약에 아시아 대륙으로 가는 배였으면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아가야 땅으로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을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이 고린도 사람 스데바나가 아니었더라면 바울은 아테네에서 돌아갔을 것입니다. 바로 그 고린도 사람 스테바나로 인해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고린도까지 확장되었을뿐만 아니라 그 고린도에서 수도 로마를 향한 바울의 소명감이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어요. 어떻습니까? 바울이 로마로 향하기 위해 향해가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바울의 뜻이나 계획대로 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울의 뜻이나 계획은 다 어그러졌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주님께서 바울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주님의 신비한 섭리 속에서 시간과 날들이 지나갈수록 주님께서는 바울을 점점 점점 점점 더 로마로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 가셨습니다. 바울이 위대했던 점이 있다면 바울은 억울한 순간에서조차 그 주님의 이끄심에 자기 삶으로 온전히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의 치도 역시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바울을 당신의 히페레테스와 마르티스로 심어 주신 신묘척한 은혜의지도 불가사이한 섭리의 지도가 되었습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의를 맞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바울의 삶 속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심어 주신이 지도를 보여 주시면서 너희들도 이렇게 살지 않을래? 지금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재물로 죽임 당하셨다가 3일 만에 죽임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까닭기 도대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바울처럼 저 신비로운 지도를 새롭게 엮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우리 머리속 생각으로만 묵상하고 기리는 어리석음을 범지 마십시다. 바울처럼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우리의 삶으로 기리고 실행하십시다. 우리의 계획이 무산되고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서도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더더욱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십시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찢어지지도 색이 바라지도 사가 없어지지도 않는 심척한 은혜의지도 불과 사이한 섭리의 지도로 엮어 주실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궁극적인 승부는 결코 세상의 것으로 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세상의 것들은 배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코끝에서 호흡이 먼 순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승부는 우리가 누구 안에서 어떤 지도를 엮어 왔느냐로 판가음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이 시간에도 주님께서 바울의 삶 속에 엮어 주신 지도를 보여 주시고 우리를 그지도 속으로 초청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우리를 위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머릿속 생각으로만 묵상하고 기리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치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십자가의 빛값으로 사신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우리의 삶으로 기리고 실행하게 해 주십시오.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고서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도리어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주님의 이끄심에 순종하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신묘한 은혜의 지도, 불가사이한 섭리의 지도로 엮어 주실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의 심령 속에 구원의 복음이 스며들며 황량하게 무너진이 세상의 한 부분이 소생되게 해 주십시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Tracks in this Play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