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ly Playing: 6.25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된 이유(악재가 겹친다..?) ㅣ그날을 보다 EP.36
오늘은 MC 허준님과 군사 전문 이세환 기자님, 유럽 사학자 윤영휘 교수님을 모시고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00:00 오프닝
01:32 [D-60] 예견되어 있던 북한의 남침 준비
11:41 [D-1]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6.25 미스터리
14:26 [D-day] 탱크를 앞세운 북한의 남침, 6.25 전쟁
22:25 [D+3] 국군장병들의 희생에도 3일만에 무너진 서울
26:35 [D+10] 오만했던 미군을 정신 차리게 한 전투
33:30 [IF] 북한의 침략을 미리 대비했다면?
궁금하신 부분들을 댓글에 달아주세요!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연 및 제휴 문의 : boooda.kr@gmail.com
BODA 인스타 : / boda_channel
#보다#전쟁#한국#북한#6.25#미국
Video Transcript
전쟁 전날 이상 지후가 너무 많았습니다. 하루에이 하루에 경계제, 주말 외출, 지의관 파티, 미고문단 핵심 인원 부제, 전방부대 재배치, 북한의 기갑 직결 같은게 24시간에 다 일어났습니다. >> 아, 정말 그냥 맨몸으로 탱크 받겠다고 목숨 걸고 덤비신 분들 정말 많았어요. >> 많았죠. 대한민국에 당시에 존재했던 무기로는 이거를 뚫을 수가 없었어요. >> 나 총알 떨어졌고 포탄 떨어졌고 전선 끊겼고 옆초 날아갔고 적 전차가 도로 위에 올라왔는데 저 망할놈의 전차는 우리가 쏴도 멈추질 않네. 그리고 우리 뒤엔 뭐예요? 서울이 있네. >> 세상을 뒤은든 그날. 그날이 없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그날을보다 진행을 맡은 허준입니다. 오늘도 그날로 저희를 이끌어 주실 이세환 기자님 나오셨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그날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실 윤영희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 625 전쟁이 터진 6월 25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년 이야기를 해도요. 그날만큼 잊지 말아야 된다라는 생각에 항상 새롭고 항상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625 전쟁이 세계 전쟁사에도 어떤 영향을 좀 끼쳤을까요? 사실 세계 2차대전 이후 유일하진 않지만 가장 큰 규모의 전쟁 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G2라고 하는 두 나라가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으로 직접 싸웠던 그런 전쟁이었고요. 두 한국이 싸운 내전을 넘어서서 국제전의 성격이 아주 강했고요. >> 아마 30대 이상 40대 이상은 확실하고요. 30대 이상 분들도이 가사들은 바로 나올 걸요. 아 이리 어찌 우리 그날을 >> 그 잊을 수 없는 그날 오늘의 그날은 6월 25일입니다. 언제로 돌아가 볼까요? - 60일 62의 본질은 제가 생각하기에 북한은 분명히 전쟁을 준비했고 대한민국과 미국은 소요도발 정치 공작으로 이걸 해석했다는 얘기니다. 이게 뭐냐면은 우리가 정보가 없었던게 아니잖아요. 분명히 정보는 있었는데 문제는 그 정보로 해석하는 지위부의 머릿속이 이미 틀려 있었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하나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625 전쟁했을 때 우리 국군이 초반에 괴멸됐었던 굉장히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북한이 보유했던 T348호 전차라는 얘기가 굉장히 많아요. 그렇다면은 여기서 T34 전체 때문에 우리가 졌다. 이거보다는 도대체 왜 소련은 국지적인 전쟁에이 전차를 북한한테 지원했을까? 이걸 한번 좀 생각해 보시거든요. 저는 스탈린한테 1348호의 북한 제공은 단순한 무기 지원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소련군이 직접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대한민국 남만을 단기간에 무너일 수 있는 결정적 레버리지가 아니었나? 전 그렇게 한번 생각해 봅니다. >> 그럼 이때 당시의 스탈린은 북한에게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스탈린이 상당히 뭐 개인적으로 아주 안 좋은 사람이지만 전략가잖아요. 되게 세계를 크게 보는 사람이고 그래서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가죠. 되게 유명한 사건인데요. 그리고 정식으로 전쟁의 승인을 요청했을 때 거절했었습니다. 49년에는요. 그 이유가 뭐냐면 49년까지 스탈린의 생각은 이제 막 세계 2차전이 끝났는데 미국과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것. 즉 북한이 남아를 침공하면 미국의 개입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국지전이 아니라 국제전이 생겨나는 것에 대해서 스탈린은 상당히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근데이 두려움을 상세할 만한 요소가 49년 말에 생겨나요. 첫 번째가 49년 8월에 소련이 이때 핵무기 개발에 성공을 하죠. 그래서 사실은 소련이 미국을 두려워했던 되게 중요한 이유가 붙었을 때 저쪽은 핵무기가 있고 이쪽은 없는 거잖아요. 그 공포가 되게 심각한 거였는데 그거가 상세됐죠. 두 번째가 뭐냐? 중국에 공산납니다. 이게 49년 10월에 있었던 일이죠. 든든한 동맹국기자 대리전을 치뤄줄 배후가 생겨났던 것이죠. 그리고 이제 결정타가 바로 1950년 1월에 그 유명한 애치 라인의 발표입니다. 그때 이제 미국 공무장과 애치슨이 미국의 극동 방의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했죠. 이게 상당히 공산 세력에게 오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죠. 아, 미국이 여기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겠다. 그래서 내부의 자신감이 커졌을뿐 아니라 또 뒷배가 되는 중국이 공산화되고 또 미국까지 깨어들지 않을 가능성 높아지죠. 그러면 빨리 차라리 강력한 여러 가지 무력을 제공해 줘서 빨리 손식간의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는게 나쁘지 않겠다. 그런 판단이 스탈린 섰던 것이죠. >> 모든 행운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구나. 뭐 이런 상황. 근데 그냥 한 가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나중에 애치슨은 이것 때문에 욕을 먹어요. >> 애치슨 라인이 결과론적으로 우리가 에치슨 라인이 비판을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당시 자연스러운 그런 방의선의 그 설정이었어요. 그 무슨 얘기냐면은 미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라인이 바로 일본이었고요. 그리고 대만과 한국은 아직 좀 애매모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나중에 이제 결과론적으로 625 전쟁이 터지면서 우리가 조금 안일했다 생각을 해서 더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게 되었지만 엣지슨이 당시 50년 1월 입장에서 미국이 되게 상식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위선을 그었다라고 보도 뭐 크게 틀리진 않겠죠. 아, 그렇 이때 한국은 준비가 많이 안 돼 있는 그니까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 상황이었어요. >> 그러니까 이제 이거예요. 49년 5월에 북한이 제105 전차 여단이 생겨요. 세계 전차 연대, 1계 기호 연대, 뭐 1 자주포대 체제였는데 이게 50년 4월 말에 추가 장비가 들어오면서이 여단 규모가 거의 만 명 병력에 T34 전차 258대가 됩니다. 그다음에 장갑차 오토바이 트럭을 갖춘 강력한 기계화 부대가 되죠. 반면에 대한민국은 50년 당시 전차가 없었고요. 미군 공식 자료를 봐도 우리 한국군이 보유한 기갑 전력이 37mm 4를 장착한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26대하고 하프트랙 15대 수준이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교수님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하셨습니다. 스탈리는 한반도에서 전차의 수가 아니라 전차의 비대칭성을 본 거 같아요. 나만엔 전차가 없고 대전차 확인도 빈약하다면 북한의 T34를 제공해 줌으로써 굉장히 빨리 전쟁이 끝날 수 있다. 이걸 본 거죠. >> 근데 북한의 T34가 들어왔다라는 소식은 미국도 알 거 아니에요? >> 아, 그러지 않았어요. >> 몰랐어요. >> 네. 한국의 군사 구문단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지금 같은 무기 움직이고 전력 움직이고 다 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잖아요.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전차가 움직이려면 사실 전차는 그냥 논뚜렁으로 가는게 아니라 길로 가잖아요. 한반도는 산악 지형이고 또 당시 인프라가 되게 안 좋았잖아요. 그래서 한반도는 전차를 운영하기 그렇게 좋은 여건이 아니다라고 미국에서 그 K맥이라고 하죠. 한국에 들어와 있는 미국 군사 고무단이 그렇게 한국에 얘기를 합니다. >> 그렇게 얘기는 했지만 한국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전차를 좀 달라고 하지 않았었어요? >> 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셔먼 전차도 달라고 하라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이유 때문에 안 좋었어요. >> 아 거기는 아유 전차 못 다녀. >> 너네 전차 필요 없어. 못 다녀. >> 또 한 가지 청원을 하자면은 사실은 그때 이제 이승만 대통령은 적극적인 북진 통일론자였죠. 근데 괜히 무기를 뒀다가 이승만의 전쟁에 미국이 엮겨들 것 같은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스린이 북한에서 전차를 준 이유가 북한 예뻐서 준게 아니에요. 미국과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쏘렌처 장비를 결합해서 기정 사실로 한반도 적화가 가능했다고 본 거였죠. 그러니까 T34는 이렇게 봐요. 미군이 오기 전에 끝내라는 한마디로 시간표의 핵심으로 봤다. >> 동아시아의 모든 라인이 공산주의와 되는 계획인 거네요. >> 그다음에 이제 또 두 번째로 살펴볼게 미군과 국군 지부가 왜 정보를 무시했나? 굉장히 많은 신호정에도 불하고 이거를 저는 어떻게 단순히 무능했다고만 하면 이게 설명이 좀 안 되는 거 같거든요. >> 실제로 교전도 많이 일어났었다면서요. >> 네. 그러니까 계속해서 국적인 교전이 3팔선 부근에서 일어났었고 CIA의 자료를 보면요. 1950년 6월 내내 북한의 전쟁 준비 징후가 보고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면은 민간인철수 그다음에 수송수단의 군사용 전환 그다음에 굉장히 많은 수의 트럭이 지금 산팔손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병력도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 6월 20일 날 CIA 보가 뭐가 있냐면은 북한이 언제든지 남치말 능력이 있다는 보고서를 6월 20일 날 내요. 아니 그러면 20일이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 뭐 넉넉하진 않지만 5일이나 있었네요.이 >> 보고서가 트루만 대통령한테 가고 애슨 국무장관 그다음에 존수 국방장관한테까지 전달이 됩니다. 그런데 세 후에 북한이 실제 침공을 했고 보통 보고서 나왔을 때 아 [한숨][헉 소리] 이게 언제 할까 이렇게 생각할지 일주일 안에 할까 이런 생각을 잘 안 하잖아요. >> 그니까 정보가 올라가도 그거를 해석하고 결단 단계가 또 남아 있죠. 근데 거기에 대해서 상당히 안 일했어요. 사실 우리 국군에서도 정보 사령부에서 꽤 정확한 보고서를 올립니다. 그리고 대략 가까운 시기에 6월 중순에라도 북한이 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올라가요. 근데 그거는 이제 보고소가 올라가는 거고 그 보고소에 대해서 또 채택하고 또 결단에 나서는 건 또 다른 문제죠. 거기에 대해서 상당히 약했습니다. >> 현장 지위관들은 분명 보고 눈치를 챘는데 윗선에서 그거를 그냥 묵살랑 하는 느낌이네요. >> 그다음에 미군 특유의 아시아 군대에 대한 편마도 무시할 수 없는게 뭐냐면은 이런 얘기를 해요. 미국이 북한은 소련의 위성 국가임으로 독자적으로 전쟁을 못 한다. 소련이 전쟁을 시키려면 세계 대전의 전조가 있어야 된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그런 전조가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소련이 만약에 세계 대전으로 가려고 하면 유럽을 쳐야 되는데 성동 격속격으로 이렇게 북한한테 이렇게 할 거다. 그런데 유럽에서 전쟁 조짐이 없다. 근데 여기서 왜 전쟁이 나냐?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은 없다라고 판단을 해요. >> 그러니까 한반도를 하나의 종석 변수로 보지 이걸 되게 중요한 한 전장으로 보지 않았어요. 사실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건 일본이죠. >> 크게 봤을 때 일본을 비롯한 동북 아시아에 대해서 지금 소련이 진격을 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가? 그거가 중요했던 거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위성 국가에 불과한 북한이 소련의 허락도 없이 소련이 그런 움직임도 없는데 독자적 전쟁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미국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봤던 거죠. >> 그 교수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만약에 이승만 정부한테 155mm 포하고 전차를 지원해 주면 북진 통일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 전쟁이 미국이 말려 된다. 한마디로 뭐냐면은 미국은 북한의 공격 의지는 낮게 본 반면에 나만의 공격 충동은 굉장히 과대 평가했어. >> 아 오히려 나만이 또 공격 의지가 있다. >> 이게 비극의 핵심이에요. 제가 봤을 때. 그니까 진짜 칼을 갈고 있었던 건 북한인데 미국은 남만한테 칼을 주여주면 사고 칠까 봐 걱정했던 거죠. >> 하지만 현장의 지위관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방어도 하고 훈련도 하고 특히나 6사단 같은 경우는 훈련의 수준도 굉장히 높았고 그런데 계속해서 그렇게 국지적인 전투를 버리다가 이때쯤 돼서 사실 휴가도 그렇고 사단이나 현장 지위관들의 교체가 상당히 많았죠. >> 평시 행전 논리면은 그냥 인사순환이죠. 하지만 이게 전쟁 직전 상황에서선 굉장히 치명적이었습니다. 국가 기로원 자료에 따르면요. 유교 직전 제38선 경계는요. 제1 768 보병용사단이 맡았고요. 여기 이제 17년대도 같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육군본부 작정 명령 제 38호는 북한 공격시 3단계 방어선을 설정해서 지연 주저항 최후저항을 수행하도록 이제 계획이 돼 있었어요. 근데 이게 전쟁 불과 3개월 전에 수립됐습니다. 그러니까 각 사단의 자체방 계획은 전쟁 한 달 전쯤해야 만들어졌고 예하부대에 대한 훈련이나 평가는 전혀 없었던 상태죠. 그러니까 이런 상태에서 사단장을 바꾼다는 건 단순 인사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면 방어선을 기억하고 예화 연대장과의 호흡도 중요하고 예비대 위치나 포병 운영이나 여러 가지 뭐 현지 지형 감각 이거는 원래 있었던 사단장이 그래도 좀 익숙할 거 아니에요. 근데 이거를 통째로 흔들어 버린 일이 되어 버리니까 >> 그죠. 물론 장기 계획이라고 한다면 좀 이해가 가는데 현재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굉장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하기에는 좀 애매한 사 >> 네. 그러니까 이게 전방네 개 사단 중에 7사당 8사당의 사단장이 교체가 된 상태였고 >> 최전방사단 >> 네. 그다음에 1사단의 백선역 사단장도 참모학 교육 중이라서 빠져 있었죠.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음모론이 나올 수 있죠. 전반 차단장 교체를 간첩 행위로 볼 수 있네요. >> 근데 음모론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 전쟁 징후가 고조된 상태에서 방어 지휘 체계를 흔드는 중대한 실패라고는 볼 수 있지만 이거를 음모론으로 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은 이런 무능과 오판 관료적 아니란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참혹해요. 제가 봤을 때. >> 근데 사실 굉장히 비상 상태가 꽤나 오래 지속되 있던 상황이라 이걸 뭐 이제 2년이고 3년이고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 뭐 요런 상황이다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또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을 합니다. 6월 24일로 가보죠. 그죠? 마1인데 제가 요번에 이걸 준비하면서 어떤 표현을 어떻게 할까 굉장히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니까이 미스터리의 핵심이 도대체 뭘까? 이거부터 봤는데 대한민국은 당했다고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보고도 못 믿었고 믿어도 움직이지 않았고 왜 움직일 채도 없었는가 이거를 한번 봐야 된다.이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서는 그럼 이게 미스테리인가 아닌가? 저 이걸 구조적 참사라고 좀 보거든요. 왜냐면 전쟁 전날 이상 지후가 너무 많았습니다. >> 국가 기록원도 6월 24일군본부 정보이 대규모 북한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고 보고합니다. 보고하는데 군순혜보는 바로 그날 비상 경계령을 해제합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육본 장교 클럽의 낙성식이 있었대요. 그래서 전방 사단장들까지 초청해서 여기서 파티합니다. 그리고 주말이라서 거의 절반에 병력이 외출 상태였죠. 그거에 대해서 제가 정말 절반일까 그 생각이 들어 가지고 군사 편천 연구소에서 나온 기록들을 봤어요. 그런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휴가 비율에 관한 기록은 잘 없어요. 근데 이제 군사 편찬 연구소는 이게 대략 1 정도 휴가 또는 외출을 나간 상태였다라고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 흔히 우리가 얘기를 할 때 한 완편 사단에서 1 정도의 피해를 교적 수준의 피해라고 하잖아요. 근데 3일 정도가 없었다라는 상황은 이제 맞는 거고 결국은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도대체 스탈린은 왜 히틀러가 계속해서 공격하려는 징를 듣고 듣고 들어도 판단을 안 했을까라는 이야기도 업무론이 굉장히 많잖아요. >> 그러니까 이게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게 뭐냐면은 하루에이 하루에 경계제, 주말 외출, 지의관 파티, 미고문단 핵심 인원 부제, 전방부대 재배치, 북한의 기갑 직결 같은게 24시간에 다 일어났어. [한숨] >> 그러니까 하나하나는 변명을 할 수 있죠. 하나하나는 변명을 할 수 있는데 이게 다 합쳐 버리면 이게 뭐예요? 방어책의 전변적인 붕괴 뵙게 될 수 없는 그니까 이러니까 음원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거죠. 미스터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거죠. >> 그렇죠. 물론 이제 그냥이 상황을 나중에 방어를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하더라도 이때 당시의 전력 차이가 워낙 심했기 때문에 지연 강한 저하 하면서 이제 미국의 참전 이건 같은 스토리지만 초반에 와르 무너지는 일은 사실 없을 수도 있었다라는 것이 아마이 안타까움 때문에 그런 음모론이 있지 않나? >> 근데 반대로도 볼 수 있어요. 왜이 날에이 모든게 겹쳤을까? >> 상대편은 아주 치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죠. 음. >> 당한 사람들은 전혀 대비가 안 됐으니까 그 치밀한 계획에 하나하나 다 놓쳐버린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근데 제가 제일 이해가 안 되는게 교수님 이거예요. 쟤네가 기습을 해서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이 말을 굉장히 싫어하거든. >> 아 그럼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여건들이 있었는데. 근데 그렇잖아요. 우리 지난번 회에서 미드웨이에서 그 40분 동안에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가지고 5분 만에 한국만 세척이 >> 완전히 추격돼 버리잖아요. 그것도 사실은 수많은 그 역 나올 수밖에 없지만 결과론 쪽으로 보면 상대편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달려들어서 상대편 준비 안 됐으면이 모든 것이 겹칠 수도 있습니다. >> 맞습니다. >> 왜냐면 이유를 찾게 되니까요. 예. 자, 그러면 너무나도 가슴 아팠던 6월 25일 그날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6월 25일 당일의 핵심은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북한의 전차가 무적이었다. 이게 아니라 우리 국군이 전차를 잡을 수 없는 전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거예요. 그렇다면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게 T34는 정말 무적에 때려 볼 수 없는 전차였냐? 절대 그런 건 아니잖아요. 사실 2차대전 때 보면 T34파로 무수하게 파괴됩니다. 이로 헤아릴 수 없이 독일군한테 뚫르게 맞아 가지고 T34를 타고 나서 평균 수명의 3개월이었다는 얘기 도였어요.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뭐냐면 1950년 6월 25일 우리 국군에게는 이게 괴물이었단. >> 굉장한 괴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병사도 있었고. 그리고 예전에 일본군에 복무했던 몇몇 지휘관들은 소련 전선에서 이걸 봤었을 거예요. 관동군이었던 사람들. 그러니까 그 무서움을 알고 있죠. 자, 그렇다면 당시 우리 육군한테 전차가 없었잖아요. 근데 당시 우리 육군한테 놀랍게도 기가부대가 있었습니다. >> 탱크가 없는데요. >> 제가 말씀드렸죠. 아까 M8 그레이하운드 요게 26대가 있었다고 그레이하운드가 어떻게 생겼냐면 장갑차인데 탱크처럼 생겼죠. >> 그래도 탱크는 아니잖아요. >> 아니 포탑이 달려 있고 이렇게 하니까 탱크인 줄 알았어요. 다들 >> 아 >> 다 탱크인 줄 알았어요. 그다음에 요런 하프 트랙이 좀 있었고 >> 네 >> 하운드의 주포가 >> 37mm포였습니다. >> T34를 뚫어요? 아니요. 이빨도 안 먹혔. >> 안 되잖아요. 아 >> 이빨도 안 먹혔고 그다음에 이제 대전 차위가 2.36in 바축화가 있었고 57mm 대전차포가 있었고 일부 무반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T348호를 정면으로 격파하기 굉장히 힘들었어요. >> 그러니까 미군도 비슷한 실수를 초전에 이제 반복을 했죠.이 이 이후에 이제 뭐 슈퍼 바추가 나오고 미국에서 전차도 오고 항공지원이 투입되면서 T34가 이제 무력화가 됐는데 그런데 당시에는 개전 초만 봤을 때는이 T34가 국군한테는 거의 불사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대전차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고 그다음에 전차는 무엇보다도이 물리적 공포보다도 심리적 공포가 더 큰 거 같아요. >> 왜냐면 내가 쏘는 소총탄, 기관 총탄, 수류탄이 아무런 효과도 없을다. 이때부터 뭐예요? 멘탈이 나가거든. 우리 전래 동화 중에 무서운 이야기 불가살이라고 죽일 수 없는 적이잖아요. T34가 우리 국군에게는 불가살이었을 거예요. 아마. >> 그런데 방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우리 기갑부대 316 부대였는데 그 그레이하운드.이 그레이하운드가이 T34를 상대로 처절하는 전투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개전 당시에 이제 4시에 공격을 했잖아요. 육군 본부가 전군의 비상령을 발령한게 2두시간 후인 6시입니다. >> 왜 그렇게 늦게 발령을 했어요? 바로바로 5분 만에 5분도 필요 없지. 첫 공격학 비상 사태. 우리가 그때 뚫린 이유 중 하나가 뭐냐면 북한도 성동격 서식으로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수도 없이 많이 6월 25일 전으로 한 1년 사이에 정말 많은 100회 이상의 소요를 일으켜요. >> 그리고 대규모 훈련도 되게 많이 해요. 그러니까 육군 본부 입장에서는 이제 딱 지금 생각을 해야 되는게 뭐냐면 이게 그렇게 수없이 많이 있었던 훈련이나 아니면 도발의 하나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야 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5시 15분 경에 호천 쪽에서 보고가 오는데 바로 보병 포병 그리고 전차가 같이 움직인다라는 보고가 와요. 이걸 듣고 이제 육군 본부에서 이건 전면 침공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어 6시에 비상형이 내려지게 되죠. 근데 이제 우리가 시작부터 전방 주입가 많이 괴멸됐잖아요. 그러니까 통신이 안 되니까 아 어떻게든 상황을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때 육군본부 한 참모가 묘한을 냅니다. 그레이 하운드에 무전기가 있으니 이걸로 통신 중계를 하자. 왜냐면 예전에 장계석 총통이 속초를 방문했을 때 그레이하운드가 속초부터 서울까지 쭉 해서 통신 중계를 한 적 있었어. >> 아 통신 거리를 이렇게 맞춰서 >> 네. 통신 중계를 한 적이 있었죠. 그래서 얘네를 전방으로 가서 얘네가 통신 중계를 하게 하자라고 해서 그레이하운드를 전방으로 보냈죠. 막상 전방에 있던 부대들한테 그레이하운드가 오니까 어떤 생각들었겠어요? >> 우리 탱크가 T34를 이제 부시러 왔다. >> 우리 전차가 왔다. 이렇게 된 거야. 그리고 당시 그레이하운드를 몰고 갔던 대부분의 전차장 얘기를 들어보면 이래요. 도착했는데 우리 병사들 얼굴이 다 하해했대요. 공포에 질려서 애들이 하해 있는 거야. 그런데 야 나는 지금 통신 중기하기 위해서 온 거야. T34 적 탱크는 상대가 안 되라고 했는데 너네 전차 맞잖아. 다 여기 달라붙어서 막 흔들었대요. 그러니까 장갑차 지간 입장에서는 못 돌아갈 거 아니에요. 그래서 결국에 74단에 배속된 장갑대 이제 박용실 대위가 열대의 그레이하운드로 매복을 시켜서 T34 교전을 합니다. 빠빠방 쐈어요. 먼저 매복해서. 근데 콩 튀듯이 픽 튕겨 나갔더래요. 그리고 북한군의 T34가 반격을 하는데 박대희가 탔던 장갑차가 맞으니까 타이어 두 개가 허공을 가르면서 전복이 돼 버리더래요. 94일생으로 박대인는 살아납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대의 장갑차가 불덩어리로 변합니다. 그래서 나머지네 대가 겨우겨우 철소를 해요. 그리고 8사단을 지원 나갔던 또 다른 장가 소대는 소대장이 빨갱이로 몰려서 직결 체포를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이문상사가 지휘했던 장갑차 소대가 북한군하고 조를 하는데 이때 북한군이 가지고 있던 건 뭐냐면은 전차가 아니라 SU76 자주포였어요. >> 사실이 자주포는 장갑이 얇아서 해 볼만 했었어요. 그런데 뭐냐? 장갑차로 대전차 전투를 해 본 적이 없잖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어 어 하다가 당해요. >> 대전차 전투의 개념이 없었어요. 왜냐면 탱크가 없어 봤으니까. 그래서 사실 대전차 전투는 심플하거든요. 상대편의 장갑을 뚫을 수 있을 무기가 있으면이기는 거고 잡을 수 있는 거고 없으면 해보나 만화인 건데 그냥 뭐 이거밖에 없으니까 갖고 나간 거 자체가 실책이고요. 또 T34가 무적으로 여겨졌던 이유 중 하나가 잘 아시겠지만이 경사장 구조입니다. 각도가 있어요. 그래서 정면에서 쏘면은 많은 경우 이게 우리가 도탄된다 그러잖아요. 이렇게 휘어져 튕겨져 나가 버리는 거죠. 그리고 이제 각도가 휘어져 있으니까 어떤 효과가 있냐면 철갑이 45mm인데 휘어져 있으니까 정면으로 맞았을 때 이게 90mm의 효과가 나는 거 두껍게 만든 효과 >> 두껍게 만든 효과가 나는 거죠.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당시에 존재했던 무기로는 이거를 뚫을 수가 없었어요.이 무기는 사실 이미 2차대전 때는 나왔죠. 이미 2차대전에 사용된 전차였으니까 이미 2차대전에이 대전차 무기가 나왔지만 불행위도 한국에는 그게 없어서 정말 전방에는 우리 장명들한테는 닉게 빠뜨리는 괴물로 여겨졌던 겁니다. >> 더군다나 이제 북한군은 45mm 야포하고 14.5mm 머물이 대전차 소총 있었거든요. 이걸로 그레이 하운드로 쏘니까 종이장 뚫리듯이 >> 아 사실 그레이하운드는 장갑이 워낙 얇아서네 >> 그래도 대전에서는 아주 상징적인 전가가 있었어요. T34가 조정석이 문을 앞으로 열어요. 앞으로 열었을 때 그 순간에 거기를 쏴서 격파한 사례가 한 번 있긴 합니다. >> 아 근데 그건 정말 사실 >> 예. 운이 좋았었고. 음 >> 아무튼 전차는 이만 우리 국한테 공포였어요.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료 병사들한이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 그레이하운드 부대의 부대원들 저는 이들의 감투 정신은 그래도 한번 재평가를 해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요. 그리고 이들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이나 이때 당시에 사관학교들이나 경찰분들이나 사실은 참 너무 안 좋은 이야기를 625 초반에 많이들 하셨었는데 정말 그냥 맨몸으로 탱크겠다고 목숨 걸고 덤비신 분들 정말 많았어요. >> 많았죠. 육탄 공격한 병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신 분들이 많는데 전 솔직하게 당시 개전 초기에 한국군의 무너진 지위체계와 빈약한 장비 속에서도 국가가 준비하지 못한 시간을 자기 목숨을 받쳐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 근데 사실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50년 6월 20일 새벽에 일선 병사들은 전략 같은 거 알았겠어요? 그런 거 몰라요.이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뭐 스탈린이 뭘 승인했고 김일성이 어떤 작전 계획 세웠고 미군의 판단처원 이런 거 알까요? 모를 거란 말이죠.이 이 사람들 눈에 굉장히 단순한 거예요. 뭐예요? 나 총알 떨어졌고 포탄 떨어졌고 전화 끊겼고 옆초 날아갔고 적 전차가 도로 위에 올라왔는데 저 망할놈의 전차는 우리가 쏴도 멈추질 않네. 그리고 우리 뒤엔 뭐예요? 서울이 있네. 이거죠. 이때 병사들 마음을 오늘날 언어로 쉽게 재단해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요. 또 이제 궁함은 통한다고 해야 되나요? 그러니까 T3를 어떻게 깨뜨릴까 짧은 시기지만이 고민을 되게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모든 뭐 탱크가 그런 경향이 있지만 정면 말고 측면과 후면이 상당히 약하잖아요. 그래서 거기로 측면에서 사격을 하거나 아니면 밝은 말씀하신 것처럼 수류탄 들고가 가지고 뭐 뚜껑 열고 던지거나 아니면은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 근접 폭탄을 터트리거나 하는 예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수고 때문에 그분들의 목숨 헌신 때문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 수가 있었죠. >> 하지만 속절 없이 방어선는 무너졌죠. D플러스 3일로가 볼까요? D플 3일 서울이 함락됩니다. 근데이 수도 합락이라는게 전쟁에서 어떤 의미인가 제가 한번 생각해 봤어요. 이게 단순한 도시 상실이 아니잖아요. 전쟁에서 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정치의 심장, 지의 중추, 그다음에 뭐예요? 국민의 심리의 마지막 마진노선이거든. >> 근데 하필히면 우리의 수도는 너무 적과 가까웠죠. 공격한지 3일 만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도를 방하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이 함락됐다. 북한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선전 도구가 없었을 겁니다. >> 근데 본인들은 그렇게 선전을 할 순 있겠지만 북한의 계획은 사실은 이거보다 더 빨리였잖아요. >> 더 빨랐었죠. 근데 저는 여기서 중요한게 뭐냐면은 서울이 비록 함락됐지만 서울 함락이 대한민국의 패망은 아니었다. 전 이건 좀 강조하고 싶어. 아니 대한민국이 지금 전 세계 경제력을 열 국가 안에서 저주지하고 있고 전 세계 국방역에 지금 뭐 최상위 전선에 있습니다. >> 역사를 보면 수도가 함락당했는데도 나라가 안 망하는 경우가 몇 번 있어요. 예를 들어서 몽골이 개성을 점령했지만 우리 강화도로 가가지고 40년간 버티잖아요. 또 임진혜한테 한성이 상남당하지만 우리 또 끝까지 가가지고 결국 싸워서 이기잖아요. 토양으로 가면 나폴레옹이 그 모습과 점령하죠. 그 어떤 경우에 나라가 안 망하는가? 수도는 뺏겼지만 정부가 권제하고 군대가 개멸되지 않았을 때 이게 되게 중요한 조건이에요. 우리도 보면은 물론 수도 베긴 건 뼈 아프죠. 3일 말 베긴 거는 뭐 사실 큰 실책이죠.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가 어쨌든 대전을 거쳐서 대구를 거쳐서 부산까지 순차적으로 가면서 정부가 계속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줬고 국군 주력보대가 끝까지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후퇴를 했잖아요. 그거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 와 근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지휘부가 부박살고 정부가 괴멸되고 군대가 다 괴멸됐는데도 버틴 사례가 있네요. 북한군이네요. >> 정말 본인들은 다 날아갔는데 중공군 개입으로 정말 >> 그렇죠. 근데 저는이 서울을 또 이렇게 한번 보고 싶습니다. 서울을 잃었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게 어떻게 잃었느냐 >> 계획된 지연전 끝에 수도를 포기한게 아니에요. >> 전이 점을 좀 지적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뼈 아프지만 왜 지위부가 허동됐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그다음에 장비도 버려졌고 병력은 아직 한강을 넘어오지 않았는데 한강을 끊어 버렸단 말이죠. >> 한강 폭파 작전이 있었죠. 사실 한강의 균형폭파 작전이 참후대도 많이 얘기가 오는데 그래서 이것 때문에 북한군이 좀 징격이 늦어지긴 했나요? >> 그렇죠. 상당히 논란이 되는 작전이잖아요. 지금까지도 냉정하게 전술적인 면만 보면은 한강교 폭파가 북한이 속전 속결로 수도 덤령하고 그다음에 또 두 번째 목적의 국근의 개멸이었는데 그거를 막는 데는 브레이크를 근입니다. >> 그죠? 그러니까 군사 공학적으로 봤을 땐 맞는 얘기죠. >> 예. 그런데 이제 좀 더 우리가 허동되지 않고 체계적으로 지연 작전을 펴면서 넘어갔으면 이렇게 빨리 교량을 폭파하진 않았을 거예요. 교량이 너무나 빨리 폭파됨으로써 서울 시민이 90%가 그때 탈출을 못 했고 두군도 4만 명 정도가 발이 묶여 버렸죠. 맞아요. >> 조금 더 세계적으로 훗날를 도모하면서 수도를 내줘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건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 그러니까 이게 비극의 본질인데 다리 끊는 결정 자체는 전쟁에서 허다해요. 하지만 자기들 병력과 민간인이 아직 건너고 있는데 다리를 끊으면 이거는 방어 적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보면 이게 자해갔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 아 그니까 사실 앞으로 싸워야 되는 국군을 놔두고 왔다는게 사실 말이 되나 이게 >> 그니까 국군도 퇴로를 끊어 버린 거거든요. 더군다나 국금뿐만 아니라 중장비 차량 보급품 통신 장비도 굉장히 많았었어요. 이게 전 너무 뼈 아파요. 왜냐하면 이미 충격을 받은 상태지만 이게 넘어와서 뒤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과 다시 섞여서 준비를 한다면 저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을 거라고 보거든요. 근데 이게 없었단 말이야. 4만 명 어마어마한 병력이에요. >> 근데 놀랍게도이 3만 명이 알아서들 다시 해쳐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너무이 3만 명이 알아서 헤쳐 보이잖아요. 사실 >> 전 그게 더 가슴이 아픈 거죠. >> 너무 대단한 분들이에요. >> 네. 대단하기도 대단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자칫하면 이게 국민들하고 국군 장병들한테 무슨 느낌을 줄 수 있냐면 국가가 자신들을 버렸다라는 >>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요? 솔직히 분명히 지연 효과는 있었고 작전적으로 퇴각하는 것도 맞는데 >> 그런 전술적인 계산과 여러 가지 고려가 거기 서울에서 막상 정말 공상권을 맞이해야 했던 시민들은 전달이 됐을까? 그건 상당히 우그심이 들 수밖에 없죠. 자, 이렇게 파죽세로 몰아붙인 북한군. 정말 뭐 일주일 이내에 어마어마한 정과를 거두면서 내려옵니다. 자, 디플러스 11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제 미국이 나서죠. 드디어. 미국도 625를 드디어 이제 전쟁으로 인식을 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중요한 건 미군은요. 아직까지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2차대전 이후에 망가져 있는지를 몰랐어요. >> 아, 오게 나와 있는 부대가 아직도 훌륭한 참군인이다. >> 근데이 중미령 전투가 그걸 깨닫게 하는 전투였습니다. >> 중미령이 어디니까? 이게 오산에 있는 건데요. 예. 이게 스미스 특수 임무부대를 보내죠. 타스코스를 보냈는데 분명 미군도 북한군에게 T34 갖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기갑 병력이 아니라 그냥 특수 임무부대를 보냈단 말이에요. 대대병력 정도 됐었죠. 예. 그런데 알고도 보냈어요. 알고도 보냈는데 전 이렇게 사람들 이게 T34를 막을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기보다는 일단 미군이 나타나면 북한군의 속도가 확 꺾일 거다. 이렇게 생각했던 거. >> 아직도 많이 얕잡아 보고 있는 거죠. >> 네. 이게 미국군 공식사에 뭐라고 써 있냐면 당시 일본 주도 미군이 4개 사단이 있었는데 포병하고 보병은 1분가량이 정원이 부족하고요. 기갑부대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병사들이 전투 훈련을 받은게 아니라 현지 통제 훈련이나 그런 훈련을 받았던 상태예요. >> 아 그러면 옥와 있던 미군 부대는 전시 상황을 대비한다기보다는 그냥 그 지역에서 우리는 일본 지역을 이렇게 관하는 거야라는 >> 네. 인정감시 부대였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 그러니까이 사람들은 전투부대가 아니라 일종의 그 지역을 안정화시키는 점령군에 가까웠죠. >> 근데 느닷없이 지금 이제 진짜 전투부대로서의 역할을 하러 간 거네요. >> 그러니까 이제 사실은이 목적 자체도요. 뭐 북한군을 지금 만나서 선멸하겠다가 아니라 지연시키겠다. 근데 지연시키는 방법도 사실은 미군의 존재 자체가 되게 중요하게 봤어요. 그러니까 되게 어떻게 보면 아직도 상황을 깨닫지 못한 거죠. 지금 국제 정세가 이미 UN에서는 아시다시피 막 그 안보리 이게 올라가고 트로만 대통령도 전투부대 보내겠던 공원을 이미 6월 27일 날 하잖아요. 그런데 일선에 있는 일본에 있었던 미군들한테는 극박함이 전달도 안 되고 여전히 옛날의 그 사고 방식에 서로잡혀서 북한군을 만났을 때 아시다시피 결과는 아주 안 좋았습니다. >> 이게 슈퍼 바추카도 없었고요. 2.36인 바추카를 줬고 그다음에 105mm 곡사포 여섯 문을 줘요.이 특수 임무부대한테. 근데 분명히 T34가 올 거니까 105mm 곡사포를 수평으로도 사격할 수 있거든요. 철갑탄도 있어요. 철갑탄이 근데 숫자가 없으니까 1번 저녁을 뒤져보니까 여섯 발이 나온 거예. >> 아이고 >> 여섯 발만 줘요. >> 5일키를 해도 여섯 대네. >> 근데 7월 5일 날 딱 마주쳤는데 T가 33세대가 있는 거야. >> 아이고. 아 포탄 대부분이 튕겨나갑니다. 심지어 T34 후방에다 되고 바축화를 날렸는데 결정적인 타격도 못 줘요. 그리고 간 여섯 발이었던 105mm 철갑탄 T34 두 대를 주저 안치고 나서 보니까 다 쓴 거예요. >> 없지. 그것도 잘한 거지. 그때부터 일방적으로 들게 맞습니다. >> 아니, 근데 분명히 T4가 있다는 건 이미 이제 당연히 전투가 시작된지 열흘이 지났으니까 알고 있고 우리가 가진 무기로 이걸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데 우리가 가면어야 미국 참전했다. 잠깐만 멈추고 우리 회의하자 이럴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 그러니까이 페이퍼상의 그 정보 보고가 우리가 몇 번 얘기했듯이 그거를 얼마만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는 결단을 내리는가의 문제로 갔을 때 여전히 아니랬던 거예요. >> 음. 그리고 사실이 패배가 북한군한테 꽤 자신감했어. 엄청난 자신감을 줬는데 일단 국군을 밀어붙인 거는 북한군의 예상 범위에 있었던 거죠. 하지만 첫 번째 미군을 만났을 때 어떻게 싸우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여기서 뭐예요? 확사를 해 놨잖아요. >> 그리고 여기에 또 꽤나 전방 최종의 부대 중에 팔로건 출신들도 있었잖아요. >> 그렇죠. 실전 경험 많은 부대가 있었습니다. >> 중공이 미국을 너무너무 두려워했잖아요. >> 네. 맞아요. >> 근데 보고가 올라가니까어야 [웃음] 미국 할 만한데 이런 사실 마음도 좀 중국 정부가 >> 아니 붙어봤는데 우리 크게 피해가 없었다. 그리고 미군 부대를 완전 패퇴시켰다라고. 그러니까 이게 북한군 입장에서는 이군도 밀어냈다라는 이런 어떤 자신감을 줬죠.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오히려 미국의 개입 의지를 확정시키는 그런 사건이 됐습니다. 왜냐면 미군한테 이게 어떤 신호를 줬냐? 아, 이거 경찰 작전 아니구나. 한국군을 단순히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 미군이 직접 전차, 대전차기, 항공기, 해군까지 총동원에서 가야지만 막을 수 있다. >> 총력전 결심을 하는군요. >> 이거를 깨닫게 한게 바로이 전투. 아, 근데 정말 약간 방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섬짓한게 뺄 수 있다라는 이야기도 나왔었나요? 이때 당시에 >> 한반도를 포기한다. >> 야, 이거 너무 지금 북한이 잘 준비해서 왔는데 일단 일본으로 갔다가 나중에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런 이야기도 혹시 오왔을까라는 >> 아,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 못 하는게 만약에 한반도를 내주잖아요. 일본도 위험한 거예요. 일본도 위험하고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리고 거기서 밀려왔는데 다시 들어가 상륙 작전을 또 한다고 노르만지 상장권 여기서 할 거야. 그때는 인천 상처 생각도 못 할 때예요. 그러니까 [웃음] 야, 여기서 이렇게 됐다 큰일 난다는 얘기가 나오겠죠. >> 그렇죠. >> 그리고 이제 이미 미국 정부의 방향은 섰어요. 트르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6월 27일 날 육군 그리고 항공부대 그리고 전투부대까지 보내기로 결정에 섰거든요. 근데 이제이 중민형 오산 전투에서 의는 뭐냐면 현지에 있는 미국 군인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정신 차리게 된 계기였죠. 음메가도 이전면전으로 태를 전환하고 무기의 전면 교체를 명을 내리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미국 약간 각 본부의 방향을 섰는데 일선 부대가 각자구 한반도에 들어와서 전쟁을 수행하게 되는 그런 하나의 작은 전환점이었습니다. >> 이때부터는 이제 정말 지연 방어 지원 방어 지원 방어 하다가 우리가 상륙할 부산을 지켜야 한다. 낙동강 라인까지 가게 되는 그리고 사실 이때이 오산 전투에서의 미국이 각 잡고 시작을 했다라는 것이이 낙동강 그리고 부산까지도 이어져 가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상륙을 하게 되는 거 >> 그렇죠. 근데 여기서 이제 북한도 실수를 하는 거죠. 무슨 실수 있었냐면 이게 원래 전차는 막 싸우고 난 다음에 전차가 계속해서 전차로 가면 안 돼. >> 안 돼. 그럼 금방 고정하잖아요. 열차로 옮기고 북한 그걸 안 했어요. >> 근데 이때 당시 아무리 한반도가 낙후돼 있어도 궤도가 있지 않았어요. >> 철도는 좀 깔려 있었죠. 철도는 깔려 있었는데 >> 왜 궤도를 이용 안 했을까요? >> 아 이제 전선이 퍼지잖아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그냥 우리 밀고 가자. 그리고 북한이 전차를 받는만 신경썼지. 이거를 야전에서 어떻게 수리하? 여기까지는 잘 못했어요. >> 야이 불가살은 절대 망가지지 않을 거야. 뭐 이런 생각이었는데. >> 그런데 이게 7월이 넘어가니까 곳곳에서 퍼집니다. >> 그렇죠? >> 그리고 그때부터 미국이 항공 전력을 존격적으로 투입해서 항공기로 때리니까 답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이 이제 급하게 전차를 끌었는데 얼마나 미국이 급했냐면 전차 학교나 박물관에 있었던 전차까지 끌어내. >> 어. 하긴 뭐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다고 해도 전쟁 생산 라인을 돌려야 되는데 아직은 없으니까. 그리고 T34를 충분히 파괴할 수 있는 3.5인 슈퍼 바추카가 이제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 이러면서 초기의 T34 충격 효과가 깨지게 되죠. >> 어떻게 보면은 빨리 전쟁 초기에 정신 차리게 된 것도 별론 쪽은 나쁘지 않죠. >> 그이 오산 전투의 어떤이 각성이 예방 주사 같은 느낌도 사실은 조금 있을 수 있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드는데 >> 사실 낙동간 방어선 구상도 이때 나타났다고 얘기를 하죠. 왜냐면 이제 본국에서도 대량에 단순히 뭐 무기뿐 아니라 전면전에 해당되는 물자가 들어와야 되는데 그때까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전략적으로 후퇴를 해서 방어선을 구축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미국에 하게 됩니다. >> 만약에 물론 여기까지 가면 안 되죠. 뭐 탱크도 받고 막 공부 전력도 받고 막이 상태로 우리가 전이 얘기 말고 전방 부대에서 부대는 완편 부대, 지위부는 기존 지위부 그리고 보고 체계도 살아 있고 우리의 힘만으로 정말 딱 맞닥들렸을 때 남침이 시작되었더라면 상황이 좀 많이 달랐을까요? >> 그니까 남침 정보를 제대로 믿고 대비했다고 하더라도 서울 함락을 완전히 맡기는 전 어려웠을 거라고 저는 솔직히 봅니다. 하지만 사흘 만에 붕괴 그다음에 한강 북쪽에서 모든 뭐 중장비 날려버리고 한강국 폭퍼 참사 같은 거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시간을 좀 지연하면서 물러나는 거와 3일 만에 뺏겨 버리는 건 하늘과 땅 차이에요. >> 3일 만에 뺏겨 버리면 군의 체계가 사실 무너지잖아요. 나중에 뒤에 와서 어떻게 긁어 먹어서 회복을 하게 되지만 사실 그래서 만약에 모든 조건이 잘 갖춰져서 우리가 결국 T34 전력을 막을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서울을 내줬겠지만 한 2주라도 끌면서 천천히 전반적으로 이렇게 내려왔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전선이 낙동강까지도 안 갔겠죠. 그죠? 아마한 대전에서 전선을 이렇게 성립을 했다면 첫 번째로는 한반도 중부 이하에서 정말 거기서 엄청난 민간인 피해 아니면 국군의 피해가 있었는데 그거가 아마 상당히 상세가 됐을 거고요. 그리고 우리가 방금 말이던 여러 가지 초기에 아쉬운 점들 예를 들어서 한강 철규를 너무나 빨리 하게 버려서 국군이 4만 명이 뭐 내려오지 못하고 하는 그런 소개 전략상의 실수가 만해됨으로써 아마 북한도 다시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 전쟁의 양상이 상당히 달라졌을 거고요. 그런 점에서 결국 미국이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전쟁기이긴 건 맞지만 사실은 어느 지점에서 그 전선을 성립해서 막았냐로 봤을 때 상당히 아쉽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 맞습니다. 그래서 전 625 초기의 진짜 실패는 수도를 뺏긴게 이런게 아니라 수도와 함께 시간 장비, 지위 체계 그리고 병력까지 너무나 많이 잃어버렸던 거 >> 안 그럴 수 있었는데 >> 안 그럴 수 있었었는데 >> 그냥 짧은 식견으로 T34를 막을 무기가 없잖아요. 근데 아무리 방어 태세를 갖추고 지위부가 있었다라고 해도 이게 그냥 뚫리지 않았을까요? >> 전쟁을 탱크만으로 하는 건 아닙니까요. >> 그렇죠. >> 그리고 이제 약간의 우리가 희망적인 설례가 있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제 같이 T34가 내려왔는데 물론 이제 전략적 호텔이했지만 춘천 지역에서는 우리 육사단이 아주 성공적으로 막아낸 케이스가 있잖아요. 그런게 만약 전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전쟁의 양상은 아주 잘라졌을 것. >> 맞습니다. 정신 차리고 있었냐 안 하냐의 문제. 뭐 육사단의 이야기는 저희가 나중에 어떻게 할 얘기해가 있으면 하겠지만 정말 훌륭하게 방어를 했던 그리고 정말 목숨을 받쳐 끝까지 적의 전진을 막았던 그런 부대도 분명 존재했었습니다. 오늘은 625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 봤는데요. 매년이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라는 말 평생을 우리가 달고 살잖아요. 근데 한 번은 이런 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건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날 계속해서 이어가야 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그날로 저희를 이끌어 주신 이상 기자님 그리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신 윤정희 교수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